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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Feb 09. 2024

상큼 달콤

우리 동네 이야기

 

'설 연휴에 문 열어요?'

'아! 문 열지요. 근데 공판장이 내일까지만 문을 열어 아마 연휴 동안 과일이 덜 싱싱할 지도 몰라요.'

가게 사장님 말씀에 일단 마음이 놓였다. 아직 아이들에게 줄 과일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가게 앞에 놓여 있는 설 선물세트와 가격들을 보면서 그런대로 착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동네에 이사 왔을 때 비어있던 가게가 둘 있었다.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지 15년이 지났으니 그전에 어떤 가게들이 상가건물에 있었는지, 또 어떤 가게들이 문을 닫고 다시 열었는지 그 내력을 알 수는 없다. 지금은 학원 4-5 개 정도, 커피점 3-4개, 빵집과 편의점, 병원, 운동시설 그리고 중형 마트가 있다. 물론 작은 교회도 있다. 서민 살기에는 좋은 동네다. 단지 병원인프라가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젊은 사람들에게는 별로 불편한 일이 아니기도 하다. 어린이치과와 소아청소년과 병원은 있으니 말이다. 단지 내 나이에 자주 가는 병원 아이템인 정형외과와 안과가 없는 점은 조금 아쉽다.           

 비어있던 두 번째가 드디어 문을 열었다. 24시간 무인점포인 과일가게였다. 과일가게도 무인이 가능한가 의아해하며 오픈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더 먼저 문을 연 가게는 정육점이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본 일이 거의 없기에 어떤 고기가 있는지 무엇이 색다른지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 과일가게는 근 6개월 이상 비어있었다.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무슨 가게가 들어올까, 어떤 가게가 들어오면 좋을까 나름 상상하며 지나던 자리다. 치킨집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 동네에 보이지 않는다. 치킨은 한국민의 최애 음식이 아닌가. 어쩌면 있었는데 문을 닫았는지도 모르겠다. 

 과일가게 오픈날 사장님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픈 기념으로 만 원짜리 귤 상자를 5천 원에, 그리고 무엇이라도 사면 타이귤을 한 팩 주신다고 했다. 나는 그만 그 시간을 놓쳐 그것도 얻어오지 못했지만, 사람들로 붐비는 것에 마음이 놓였다. 오랫동안 빈자리에 사람이 든다는 것은 삶을 활기차게 한다. 왠지 모르게 설레게 한다. 역시 사람이 답이다.     


 지하철을 내려 집으로 오는 길목에 있는 과일가게-상큼 달콤. 나는 살 것이 없을 때도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오늘은 어떤 친구들이 나와 있을까 궁금해한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는 몇 가지 야채도 진열해 두었다. 애호박, 감자, 양파, 알배기배추등 소량으로 포장해 두셨다. 24시 무인이라 해도 사장님은 멀리 가지 못하시는 것 같다. 아직 키오스키에 익숙지 않은 손님이 오면 직접 계산을 해주시곤 한다. 

 과일가게를 무인으로 하면 과연 잘 살아낼까. 과일의 생명은 신선도다. 당일 판매되지 못한 것은 자연히 신선도가 떨어지고, 그래서 조금 싸게 팔다 보면 소비자들은 가격이 싸더라도 품질이 좋지 않으면 발길이 닿지 않는다. 그러다 손님이 점점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날 이 점포가 문을 닫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 아닌 걱정이 앞선다. 24시 과일 무인점포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위치와 가격은 그런대로 경쟁이 안될 것 같다. 가까이에 A마트가 있긴 하나 지하에 위치해 있고 내 경우 공산품은 아쉬운 대로 구입하지만 과일 야채는 신선도가 별로라 거의 사지 않는 편이다. 매장 안은 깔끔하고 파출소 옆이라 무인가게라도 안심은 될 것 같다. 더구나 건물 끝 편에 위치하고 있어 답답하지 않은 것도 이점이라면 이점이다. 진열은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편이다. 사장님은 아직은 동네 추세를 좀 보고 있는 듯했다. 손님이 많아지면 작업 및 저장공간을 줄이고 매대를 더 놓지 않으실까. 가격은 일반 마트에 비하면 싼 편이다. 설 명절 과일 박스가 5만 원대라면 요즘 과일값에 놀란 주부들에게는 조금 위안이 된다. 과일이니 아무래도 선도 부분은 신경 써야 될 것 같다. 


 무인 과일가게도 창업프랜차이즈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과다한 창업비와 본사주문배달 시 배달료 부담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으로 무인가게를 하려면 우선 과일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과일 유통에도 밝아야 할 것 같다. 손님 입장에서 무인보다는 유인이 좀 더 매출이 높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까지 사장님은 멀리 못 가시고 동네 주변에서 왔다 갔다 하시며 불편한 것은 없는지 손이 필요한 손님은 없는지 둘러보고 다니신다. 오다가다 사장님을 만나면 내가 먼저 반가워서 '어떠세요?' 묻거나  '손님 좀 늘었어요?' 라며 그의 표정을 살핀다.    

 오래 비어있던 자리에 울긋불긋 과일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나는 반갑다. 가끔 밤길 나서는 나에게는 의지가 된다. 올여름쯤이면 마실 다니다 이것도 집고 저것도 집으면서 여름밤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빈자리는 그렇게 사람들로 채워지고 사람들은 작은 동네를 상상에 젖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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