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야기
'설 연휴에 문 열어요?'
'아! 문 열지요. 근데 공판장이 내일까지만 문을 열어 아마 연휴 동안 과일이 덜 싱싱할 지도 몰라요.'
가게 사장님 말씀에 일단 마음이 놓였다. 아직 아이들에게 줄 과일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가게 앞에 놓여 있는 설 선물세트와 가격들을 보면서 그런대로 착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동네에 이사 왔을 때 빈 가게가 둘 있었다.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지 15년이 지났으니 그전에 어떤 가게들이 상가건물에 있었는지, 또 어떤 가게들이 문을 닫고 다시 열었는지 그 내력을 알 수는 없다. 지금은 학원 4-5 개 정도, 커피점 3-4개, 빵집과 편의점, 병원, 운동시설 그리고 중형 마트가 있다. 물론 작은 교회도 있다. 서민 살기에는 좋은 동네다. 단지 병원인프라가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젊은 사람들에게는 별로 불편한 일이 아니기도 하다. 어린이치과와 소아청소년과 병원은 있으니 말이다. 단지 내 나이에 자주 가는 병원 아이템인 정형외과와 안과가 없는 점은 조금 아쉽다.
근 6개월 이상 비어있던 자리에 24시간 무인점포 과일가게가 들어선다고 했다.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무슨 가게가 들어올까, 어떤 가게가 들어오면 좋을까 나름 상상하며 지나던 자리다. 과일가게도 무인이 가능한가 의아해하며 오픈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과일가게 오픈날 사장님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픈 기념으로 만 원짜리 귤 상자를 5천 원에, 그리고 무엇이라도 사면 타이귤을 한 팩 주신다고 했다. 나는 그만 그 시간을 놓쳐 그것도 얻어오지 못했지만, 사람들로 붐비는 것에 마음이 놓였다. 오랫동안 빈자리에 사람이 든다는 것은 삶을 활기차게 한다. 왠지 모르게 설레게 한다. 역시 사람이 답이다.
위치와 가격은 그런대로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 가까이에 A마트가 있긴 하나 지하에 위치해 있고, 과일 야채도 신선도가 별로다. 매장 안은 깔끔하고 진열도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편이다. 파출소 옆이라 무인가게라도 안심은 될 것 같다. 더구나 건물 끝 편에 위치하고 있어 답답하지 않은 것도 이점이라면 이점이다. 가격도 일반 마트에 비하면 싼 편이다. 설 명절 과일 박스가 5만 원대라면 요즘 과일값에 놀란 주부들에게는 조금 위안이 된다. 과일의 생명은 신선도다. 당일 판매되지 못한 것은 자연히 신선도가 떨어지고, 그래서 조금 싸게 팔다 보면 소비자들은 가격이 싸더라도 품질이 좋지 않으면 발길이 닿지 않는다. 그러다 손님이 점점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날 이 점포가 문을 닫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 아닌 걱정이 앞선다. 사장님은 아직은 동네 추세를 좀 보고 있는 듯했다. 손님이 많아지면 작업 및 저장공간을 줄이고 매대를 더 놓지 않으실까 싶다.
지하철을 내려 집으로 오는 길목에 있는 과일가게-상큼 달콤. 나는 살 것이 없을 때도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오늘은 어떤 친구들이 나와 있을까 궁금해한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는 몇 가지 야채도 진열해 두었다. 애호박, 감자, 양파, 알배기배추를 소량으로 포장해 두셨다.
24시 무인이라 해도 사장님은 멀리 가지 못하시는 것 같다. 동네 주변에서 왔다 갔다 하시며 불편한 것은 없는지 손이 필요한 손님은 없는지 둘러보고 다니신다. 아직 키오스키에 익숙지 않은 손님이 오면 직접 계산을 해주시곤 한다. 오다가다 사장님을 만나면 내가 먼저 반가워서 '어떠세요?' 묻거나 '손님 좀 늘었어요?' 라며 오지랖을 떨어본다. 사장님은 웃기만 하신다.
오래 비어있던 자리에 울긋불긋 자리하고 있는 과일들. 가끔 밤길 나서는 나에게는 의지가 된다. 올여름쯤이면 마실 다니다 이것도 집고 저것도 집으면서 여름밤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빈자리는 그렇게 사람들로 채워지고 사람들은 제각각 소박한 상상들로 행복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