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말
차라투스트라가 산을 내려오는 도중 노인 하나를 마주칩니다. 산에 칩거하며 자신의 신성한 오두막을 짓고 살던 이 노인은 차라투스트라가 변했음을 알아차립니다. 노인이 기억하는 차라투스트라는 깨달음을 위해 사람을 떠나 산을 오르던 모습입니다. 과연 차라투스트라가 산을 오르던 10년 전과 산을 내려가는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때 그대는 그대의 재를 산으로 날랐었지. 그대 오늘은 그대의 불덩이를 골짜기 아래로 나르려는가? 불을 지르고 다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벌이 무섭지도 않은가?
차라투스트라가 산을 오르던 때 그는 '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불덩이'를 가지고 내려갑니다. '재'는 소진된 차라투스트라의 의지를 말합니다. '허무주의(nihilism)'에 빠진 그는 의지를 회복하기 위해 산을 올랐고, 이때 그는 사람들에 대한 역겨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반면 '불덩이'는 사람들을 향한 그의 '의지'를 뜻합니다. 허무주의를 딛고 일어나 새로운 의지로 시도하려는 차라투스트라에게 노인은 '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의지를 전하려는 이 벌은 어떤 것일까요?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만든 신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끼는 인간에게 불을 주었습니다. 불은 얻은 인간들은 제우스를 숭배하지 않기 시작했고, 제우스는 인간들에게서 불을 회수했습니다. 불을 잃은 인간들은 다시 불행해졌고, 프로메테우스는 불꽃을 훔쳐 다시 인간에게 주었습니다. 제우스의 뜻을 거역한 프로메테우스는 코카서스 산에 묶여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 먹히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니체는 프로메테우스의 선지자적 성격을 차라투스트라에게 부여했습니다. 자신이 얻은 지혜를 다른 인간들에게 나누어주려는 마음은 인간에 대한 궁극적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이 사랑의 불꽃은 기존의 권력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영원한 형벌을 받았고, 노인은 차라투스트라에게 그의 불꽃이 재앙을 불러올 것을 경고합니다. 프로메테우스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형벌뿐 아니라, 인간들의 재앙도 유발합니다. 제우스는 자신에 대한 숭배를 게을리한 인간에게도 형벌을 내립니다.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제우스가 보낸 판도라와 사랑에 빠집니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상자를 하나 주며, 절대로 열어보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판도라는 상자를 열고, 상자에서는 온갖 악덕과 불행이 새어나가기 시작합니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기 전 세상에는 질병, 고통, 죽음이 없었으나 이제 세상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합니다. 판도라는 얼른 상자를 닫았고, 상자에는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희망입니다. 제우스는 인간들이 희망을 가지고 고통을 영원히 감내하는 벌을 내렸습니다.
차라투스트라가 지혜를 나누기 위해 산을 내려가는 선한 행위는 프로메테우스의 그것과 같이 인간들에게 재앙과 불행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위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을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하지만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감히 알려고 하라(sapere aude)'라고 말한 것과 같이 니체 역시 무지에 의한 행복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행과 재앙이 다가오더라도 그것에 눈감지 않고,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니체의 철학이 지향하는 바입니다. 니체는 이것을 '아모르파티/ 운명에 대한 사랑(amor fati)'이라고 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신의 미움을 받을 각오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혜를 나누어주기 위해 산을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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