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 대하여 2>
차라투스트라는 이미 벗이 자기 극복을 위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벗을 어떻게 대해야 하며 벗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너 너의 벗 앞에서 그 어떤 옷도 걸치지 않으려는가? 너의 그대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너의 벗에게 영예가 될까?... 자신을 조금도 감추지 않는 자는 화나게 만든다.... 너희가 신이라도 된다면 걸치고 있는 옷을 부끄러워해도 되겠지만 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벗 앞에서 벌거벗지 않을 것을 권합니다. 우리는 흔히 솔직함이라는 것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태초의 순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신이 아니라면 현재의 단점과 약점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노력은 나의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신과 다른 점이라면 어제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신은 어제와 오늘이 항상 같습니다. 그는 완벽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불완전한 인간은 어제와 오늘이 같을 수 없기에 언제나 그 방향성이 그에 미래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집니다. 니체는 루소가 말하는 '선한 야만인(bon sauvage)'를 비판하고자 벌거벗음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하고 그것을 유지하고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선하다는 루소의 생각은 니체에게는 너무나도 인간에 대한 몰이해라고 판단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이기적이며 자신이 가진 악한 성향을 은근과 끈기라는 수양의 옷을 통해 극복해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벗에게 자기 극복의 성장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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