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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니체 87일 차 - 변덕스러운 지혜?

<춤에 부친 노래 2>

by Homo ludens

[사나운 지혜와 변덕스러운 지혜]

차라투스트라는 춤이 가진 생명력과 영혼이 가진 지혜라는 두 여인 사이에서 갈등하고 유혹당하는 인간의 실존적 투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오, 생명이여, 최근에 나 너의 눈을 들여다본 적이 있지! 그때 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것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듯싶었지. 그러자 너는 황금 낚싯바늘을 던져 나를 끌어올렸지.

차라투스트라는 태양이 주는 밝은 빛의 지혜에 대비하여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과 같은 생명을 탐구합니다. 플라톤 이후 '이데아'나 '불변의 진리'를 쫓는데 몰두한 서양 철학이 직면한 허무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외부 세계나 우주가 아니라 내 안의 심연에서 찾고자 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생명이 가진 힘은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것이 아니며, 생명을 직시한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이성의 질서가 무너지는 공포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은 우리가 태어났음에도 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죽음과 허무의 공포에 빠지게 되지만, 동시에 '살고자 하는 의지'라는 강력한 황금 낚싯바늘의 유혹에 의해 고통마저 감내하며 삶을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내가 너의 사나운 지혜와 은밀하게 말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지혜가 화가 나서 내게 말했다. "너는 의욕하고 갈망하며 사랑한다. 단지 그 때문에 너 생명을 찬미하고 있는 것이다!"... 나 진심으로 생명만을 사랑한다. 진정, 어느 때보다도 그것을 미워할 때!

차라투스트라가 대화를 나눈 사나운 지혜는 진리를 향한 지혜, 즉 차갑고 객관적인 이성적인 비판자입니다. 영원불멸의 진리의 입장에서 인간의 변덕스러움은 의욕하고, 갈망하며 사랑하는데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우리 인간이 부여하는 모든 가치는 의욕과 갈망, 사랑에서 비롯되며, 이것은 충족되면 사그라지고 결핍되면 다시 강하게 불타오릅니다. 이러한 생명의 특징은 '단지'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느끼고 겪는 삶 그 자체입니다. 생명의 아이러니는 생명이 위협받을 때 그것을 강하게 원하게 된다는데 있습니다. 즉 고통이 커질수록 살고자 하는 갈망이 강해지는 것은 고통까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긍정할 때, 비로소 생명과 삶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시작됨(amor fati)을 의미합니다.

지혜는 변덕이 심한 데다 고집이 세다. 나는 그가 입술을 깨무는 것을, 그리고 머리카락을 반대 방향으로 빗고 있는 것을 자주 보았다. 어쩌면 지혜는 버릇없고 정직하지 못하며 어디를 보나 여인일 것이다. 아무튼 지혜는 자신에 대해 좋지 않게 이야기할 때가 가장 매혹적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또 다른 지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불변하지도 고정되어있지도 않은 지혜입니다. 입술을 깨물거나 머리카락을 반대 방향으로 빗는 것은 철저한 목적이 있는 행위가 아닙니다. 모든 행위를 인과로 엮고, 합리적 판단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사나운 지혜와 달리 또 다른 지혜는 유혹하고 사라지며, 끊임없이 자신을 수정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자기중심적이고 경직된 가부장적 철학의 태도에 대비하기 위해 이러한 지혜를 '여인'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이 지혜의 매혹적인 부분은 자기부정에 의한 자기 극복에 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정지된 진리보다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고귀한 투쟁 자체를 찬미합니다.


si-5675.jpg_ihcm-18.50_iwcm-25.50_fls-880229L.tif_fts-880229T.tif_mc-_fwcm-1.60_maxdim-1000_en_easyart__.jpg <기억의 지속>, 살바도르 달리, 1931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는 고정된 우주 질서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붕괴되고 시공간의 상대성을 무의식적으로 상징화하여 드러내고자 시도했습니다. 당시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 제시한 세계관을 반영한 달리는 의도적으로 정신병적 환각을 유발하는 '편집증적 비판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림의 중앙 아래쪽에 보이는 왜곡된 사람의 얼굴은 달리 자신의 얼굴을 투영했으며, 눈을 감고 잠에 들어 꿈을 꾸는 듯한 모습의 얼굴은 형체를 불분명히 하며 사라지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시간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근원적 불안과 무력감은 동시에 고정된 자아를 넘어선 새로운 생명력의 가능성으로 이어집니다. 왼쪽 하단의 붉은 회중시계 위의 개미 떼는 이성과 질서를 상징하는 차가운 금속의 시계조차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패하고 사라진다는 변화의 진리를 상징합니다. 딱딱한 금속성의 시계가 치즈처럼 흘러내리는 모습은 절대적이고 객관적이며 계산 가능한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시각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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