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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5장 적용 1

자유와 노예화

by Homo ludens

[자유와 노예화]

밀은 자유론의 마지막 장에서 자신의 이론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논한다. 4장까지 다루었던 원칙들이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들과 맞닥뜨릴 때,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개입의 균형을 잡는데 필요한 두 가지 명제가 제시된다.


1. 개인의 행위가 자기 자신 이외의 누구의 이익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그 개인은 사회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2. 타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회적 혹은 법적 처벌이 정당화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명제는 4장에서 '자기 관련적 행위'와 '타인 관련적 행위'로 구분된 바 있다. 이는 밀의 논리에 따르면 멸시와 비난이라는 각기 다른 사회적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명백히 '타인 관련적 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 '자기 관련적 행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자유를 포기할 자유는 없다]

독약과 매춘, 그리고 도박장과 같은 예시들은 그것이 개인의 자유의 영역에 있는 듯하지만 직간접적으로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해도 그것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 그것을 제한하는 방법은 타인의 충고와 도덕적 불인정 이외에는 없다고 밀은 주장한다. 밀은 개인에 대한 소극적 개입만을 허락하고, 개인의 선택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해악의 원칙’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그 정당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자기를 파괴하는 독약과 매춘, 도박의 경우는 ‘자기 관련적 행위’로 보아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할까?


밀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첫째로 독약과 매춘, 도박 등 개인의 행위는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약은 누군가에게 공급하거니 구입해야 한다. 독약을 공급하는 사람은 그것을 사용할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타인을 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 매춘 또한 자신의 육체를 성적도구로 거래하는 것이기에 형식적 공정함("자유로운 상거래의 원칙")을 유지하더라도 타인의 신체에 대한 자유를 포기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임은 자명하다. 도박에 대해서 밀은 개인의 도박은 어리석은 행위로 멸시할 수 있으나, 사회적 강제를 띨 성격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도박장의 경우는 개인의 경제적 곤궁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개인을 유혹하여 그들의 자유를 영구적으로 양도하도록 만드는 함정의 역할을 한다.


밀의 지적은 현대법과 '자기 소유권(self-ownership)의 제한'이라는 점에서 그 궤를 같이 한다. '자유'는 일회적 선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할 수 있다. 오늘의 선택으로 인해 내일의 선택이 영구히 소멸한다면, 그것은 구시대의 노예 계약과 다를 바가 없다. 노예는 주인에게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양도하고, 자신을 자원으로 써주는 대가로 의식주를 해결하여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으나 그 계약의 파기의 권한도 함께 상실했다. 심지어 계약의 성격은 종신이며, 세습되기까지 하여 그 자유의 제한이 과도하다. 오늘의 나의 자유로 맺은 계약에 대해 내일의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일정한 책임을 진 후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되돌릴 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을 노예로 판다는 것은 자신의 자유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단 한 번의 행위는 그 개인으로 하여금 그 이후로는 자신의 자유를 향유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가 자기 자신을 자신의 뜻대로 처분하는 것을 정당화해 주는 바로 그 근거를 파괴해 버리는 행위다. 그 행위로 인해서 그는 자유롭지 않게 되기 때문에, 비록 그가 그러한 상태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할지라도, 그에게는 자유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자유를 포기할 수 있는 자유는 개인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 - <자유론> 5장中 -

밀이 예로 든 바와 같이, 어떤 사람이 위험한 줄 모르고 부서진 다리를 건너려 할 때, 그를 강제로 붙잡는 것은 자유의 침해가 아니다. 그 사람이 바라는 것은 강물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건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위험의 정도가 확실하지 않거나 본인이 그 위험을 인지하고 있다면, 국가는 오직 '경고'만을 할 수 있을 뿐 강제로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밀의 주장이다. 여기서 정치적 견해가 나뉘게 된다.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개인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정치적 입장은 많은 개인을 보호할 수는 있지만, 개인이 가진 잠재성을 축소시킬 가능성이 있고 나아가 개인에 대한 사회의 통제를 정당화하여 전체주의로 빠질 수 있다. 반면, 모든 개인의 결정을 각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정치적 입장은 개인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무한한 잠재성을 보장할 수 있지만, 개인이 성장과정 혹은 처한 상황에서 모든 유혹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일탈이 불러올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대해 국가는 마찬가지로 어떠한 방책도 마련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존중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혹 앞에서 흔들리고, 지나치게 몰두하며, 무책임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에 처할 수 있다. 개인의 선택과 사회적 보호는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 상태에 있고, 국가는 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함과 동시에 줄 아래에 최소한의 안전매트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AI시대의 디지털 노예]

위에서 다룬 '자기 노예화'와 '유혹의 시스템'의 문제는 현대 기술 환경에서 교묘히 작동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플랫폼들은 가입 시 부지불식간에 동의한 데이터 제공에 의해 우리의 많은 정보를 자신에게 귀속시킨다. 한 번의 동의는 우리의 잊힐 권리를 위협하기도 하고, 기업은 미래의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어제와 오늘의 데이터를 이용한다. AI의 추천 시스템은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옵션을 제공해 주는 편리성을 담보한다. 하지만 우리의 실패의 가능성을 앗아간 시스템은 겉보기에는 '보호'처럼 보이는 부드러운 독재를 수행하고 있다. 이 부드러운 보호 속에서 개인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여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낼 기회를 박탈당한다. 이로써 개인은 디지털 주권을 상실하고, 플랫폼 기업들 혹은 AI가 제공하는 옵션이 전부인양 여기게 된다. 빅테크 플랫폼은 인간의 심리적 취약성을 이용해 즉각적 보상의 유혹으로 사용자를 길들인다. 사용자는 자발적으로 무한 스크롤을 선택한 듯 보이지만, 실상 그들은 자율적 제어를 상실하고 있다. 이제 사회는 개인을 알고리즘의 지배로부터 구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윤리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디지털 노예화에 저항할 수 있는 힘, 즉 비판적 리터러시는 디지털 주권을 지키고 개인의 노예화를 막는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중요한 교육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Pieter_Bruegel_d._Ä._(1525-1569)_-_Das_Schlaraffenland_-_8940_-_Bavarian_State_Painting_Collections.jpg <게으름뱅이의 나라>, 피터르 브뤼헐, 1567

네덜란드의 화가 피터르 브뤼헐은 <게으름뱅이의 나라>에서 실패와 고통이 제거된 완벽한 안락함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가운데 나무를 둘러싼 병사와 농부 그리고 학자는 무력, 노동, 지식을 상징한다. 이들은 일할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듯 보인다. 나무 아래에서 가만히 누워있기만 해도 주변에 먹을 것이 넘쳐난다. 구운 돼지는 칼을 꽃은 채 돌아다니고, 다리 달린 삶은 달걀이 걸어오며, 빵으로 만든 선인장이 자라고 있다. 밀이 말하는 '부서진 다리'를 건널 필요가 없는 이 완벽한 풍요로운 세상에는 새로움에 대한 의욕과 도전에 대한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 사육되는 존재로 전락한 인간은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정보만 소비하는 현대인의 인지적 퇴행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밀이 주장하는 "어리석음으로 남을 권리"는 가장 합리적인 듯 여겨지는 세상에 대한 적응에서 벗어나 자신의 주권을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게으름뱅이의 나라에서 우리는 '자유를 포기할 자유'를 허락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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