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극복에 대하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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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생명체가 자기 극복을 통해 걸어온 길에서 지혜로운 자들이 찾아낸 진리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세계의 진리를 탐구하는 현자나 철학자들은 자신들이 숲 속에서 길을 찾고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깨달음에 이른 자여, 너 또한 나의 의지가 가는 오솔길이요 발자국일 뿐이다. 진정, 나의 힘에의 의지는 진리를 향한 네 의지조차도 발로 삼아 거닌다!
차라투스트라는 진리를 찾고자 하는 행위를 순수한 탐구심만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계를 자신의 틀 안에 가두고 지배하려는 '힘의 의지'의 형태라고 바라봅니다. 따라서 개인의 진리 추구행위는 현재 자신의 주변을 밝혀줄 수는 있지만, 그의 위치와 방향을 알려주지는 못합니다. 인류가 찾아낸 수많은 발명품들의 쓰임새를 창조자인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곤 합니다.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위험물질을 보관하기 위해 충전재로 규조토를 넣은 우연의 결과로 다이너마이트라는 취급이 용이한 폭발물이 발명되었고, 터널 공사를 위한 평화적 목적으로 사용되던 다이너마이트가 개발자인 노벨의 동생 에밀의 목숨을 앗아가는 등 우리의 지혜는 그 파급효과를 예상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진리를 도구삼아 자신의 대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은 의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찌 새삼스럽게 존재하기를 의욕할 수 있겠는가! 생명이 있는 곳, 거기에만 의지가 있다. 그러나 나 가르치노라. 그것은 생명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힘에의 의지라는 것을!
지혜로운 자들은 세상을 이해하는 고정된 법칙을 찾아내고 전하려 합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체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의지의 방향은 욕망에 따라 늘 바뀔 수밖에 없고, 죽은 자가 아닌 이상 무언가를 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이미 가진 생명에 대한 의지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좀 더 편한 곳, 좀 더 풍족한 곳, 좀 더 안전한 곳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갖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생명을 걸어 다른 것을 얻거나 지키기 위해 모험을 무릅쓰기도 합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생에 대한 의지'를 넘어선 '힘에의 의지'가 생명의 본질이라고 바라봅니다.
더없이 지혜롭다는 자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 고약한 일이라 하더라도 오직 이것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도록 하자. 더 고약한 것은 침묵이다. 억압된 진리는 모두 독이 되니 말이다. 우리의 진리를 견뎌내지 못하고 부서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남김없이 부숴지기를! 지어야 할 집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니!
차라투스트라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위선을 꼬집으려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진리를 찾기 위해 긴 침묵을 이겨냈습니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이들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업적 역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입을 열어야 합니다. 누가 옳냐 그르냐의 싸움이 목적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쌓은 모래성을 부수고 함께 더 큰 모래성을 쌓아 올려야 합니다. 더 많은 진리가 모여 더 많은 이들이 수긍할 수 있는 견교한 탑이 만들어져야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그들은 스스로를 남김없이 부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작은 가치를 지키는 주인이 되기보다 가치를 만드는 힘의 주인이 되기를 차라투스트라는 가르칩니다.
독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는 풍경과 종교를 결합한 주제와 모티브를 주로 외로움, 죽음, 사후 세계에 대한 개념, 구원에 대한 희망 등의 알레고리로 표현합니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며, 때로는 다양한 해석 간의 충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부서진 얼음바다 사이로 난파된 범선의 모습은 궁극적인 실패를 묘사한 듯 보입니다. 이 작품은 1965년까지 다른 작가의 작품과 혼동되어 '실패한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프리드리히는 1815년 빈 회의 이후의 복잡한 정치 상황에서의 여러 실패로 인해 독일이 전반적으로 침체하여 희망이 파괴된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듯합니다. 난파된 배가 얼음판에 갇혀 꼼짝할 수 없는 상황과 단 하나의 생존자도 보이지 않는 현실, 그리고 솟아오른 얼음은 인간의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압도적 힘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페터 라우트만(Peter Rautmann)이 2001년에 주장하듯, 실패한 현실을 맞이한 이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인정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정착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들은 전혀 다른 사회에서 살기 위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들은 더 많은 얼음을 깰 범선을 띄워야 하며, 무수한 실패가 얼음바다에서 생명의 땅을 열 것입니다. 생명은 가혹한 환경에서 축적된 지식과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통해 새로운 땅(terra nova)을 개척해야 합니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한 주먹 때려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책을 읽는단 말이냐?... 책이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 한다. - 프란츠 카프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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