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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Shin Dec 29. 2022

신기루처럼 찾아왔던 그 날들

코러스

올해 경험했던 음악 관련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다.

크게 세 가지 정도 되는데 하나는 이전 글인 버스커이고, 오늘은 코러스다.


5월 어느 날,  드림아티스트 함께 했던 분께서 연락을 주셨다.

SNS에서 자우림 25주년 앨범을 위한 팬 코러스를 모집하는 광고를 보았다며 지원해보라고 하셨다.

지원 마감일이 며칠 안 남은 상황이었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찾아서 듣지는 않는 이상한 성격인데 한참 대중가요는 거의 접하지 못했던 기간도 있어서

잘 모르는 노래가 오디션 곡이라면 지원이 불가능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공지를 천천히 정독했다.

'hey hey hey', '매직 카펫 라이드', '밀랍천사'

자우림의 25년 음악사에 주옥같은 곡들이 수없이 발매가 되었는데

떼창코러스 지원 음원은 다행히 나도 알고 너도 아는 메가히트 곡들을 선정해 줘서

부담 없이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솔직히 그때 마음은 되면 좋고 안 돼도 상관없고.. 그런 마음이었다.

회사도 그만두고 문화재단 프로그램도 끝나고 무료한 날들이었기에 작은 이벤트들로 카페인 흡수한 듯 반짝 생기가 돌게 되는 그런 차원이었다.  

5월 15일 지원 마감이 되고 21일 합격통보를 받았다.

나중에 기사를 보니 6:1의 경쟁 속에 117명이 팬코러스로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 117명은 5월 29일  용산에 위치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스투디오'에서 25주년 기념앨범 코러스 녹음 작업을 '진짜로' 하였다.

자우림 멤버들도 만나고 티셔츠, 슬로건 등의 기념품도 받아왔다. 멤버들의 사인이 담긴 이름표까지.

솔직히 117명의 떼창이니 내 목소리는 찾아들을 수도 없지만 전문코러스단원처럼 열과 성을 다해서 녹음을 하고 왔다. 집에 와서 보니 목도 쉬어있고 손뼉 치고 발 구르느라 온몸에 근육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많이 내성+내향적인 인간이라 낯선 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만은 않았는데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날 잠이 든 기억이 난다.

7월에 발매된다는 25주년 앨범이 너무 기대되었다.




신기루 같은 하루를 보내고 며칠 뒤인 6월 2일. 갑자기 인터파크 엔터에서 또 문자가 왔다.

자우림 7월 단독 콘서트 예매한 사람들의 일정을 조사한단다.

어라? 분명히 뭔가가 있다.. 혹시 무대에 같이 오르나?

백수에게 콘서트 비용은 상당히 큰 액수이다. 또한 육아를 하는 사람에게는 자녀를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더 어려운 난이도의 임무이기도 하다.

이미 콘서트 예매가 한참 진행 된 후라서 좋은 자리는 다 매진이 되고 무대에서 먼 자리만 남았지만

결단을 하고야 만다. 또 언제 이런 일이 있겠어. 별거 없으면 콘서트 알차게 즐기고 오면 되지.

엔터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콘서트 때 팬코러스로 무대에 선다는 것과 공연 전까지 비밀로 하라는 것.

공연곡 중에 하나를 자우림밴드와 함께 하는 건가?라는 상상을 콘서트 전날까지 했는데 그건 아니고,

자우림 멤버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오프닝으로 생일축하노래를 부르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7월 3일. 자우림 콘서트 총 3일의 공연 중 마지막 날. 관객들에게는 뒷모습만 보이면서 (등에 자우림 25주년이라고 분홍색 반짝이 프린팅이 크게 있는 티셔츠를 입고) 역시나 목청 터져라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내려왔다.

몇십 초 안 되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자우림 싸인이 담긴 앨범을 받게 되는 영광을 얻었다. 그 앨범 뒷장에는 팬코러스 117명의 이름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올라가 있었고 그 안에 동명이인도 없이 내 이름이 잘 박혀있었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내 소중한 참여 앨범 1호인 것이다.

 지인의 sns 링크 전달로 시작되어 무려 25주년 기념앨범 참여자가 되고 심지어 콘서트 무대에도 올랐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한 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지며 이렇게 이야기가 마무리가 된다.




마무리되었었는데 갑자기 또 연장이 되어버렸다.

25주년 기념콘서트가 끝나고 3개월이 지난 10월 7일. 뜬금없이 인터파크 엔터에서 또 문자가 왔다.

11월 시상식 공연에 함께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이번엔 조건이 더 어려워졌다.

11월 7일 리허설과 8일 본공연에 모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장소는 인천 남동체육관이다.

평일 이틀의 시간을 들이며 교통도 편하지는 않은 힘든 여정이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정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갈 수 있다. 반은 포기하고 가족에게 물어보니 선뜻 가라고 한다. 맘 바뀌기 전에 엔터사에 신청 의사를 보냈다. 신청자가 많아서 추첨을 통해 최종 참여자를 추린다는 연락이 왔다. 솔직히 떨어지는 게 맘 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참여자 확정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11월을 기다린다. GMA_지니뮤직어워드에 자우림이 나온단다. 그리고 나도 나오고.


11월 7일 리허설 날. 낮 2시부터 6시 정도까지 모여있었다. 한 45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자우림 노래를 함께 불렀다. 이번에는 진짜 관객을 정면으로 보고 코러스를 하는 것이다. 리허설이라 관계자밖에 없었지만, 오합지졸, 중구난방인 코러스들의 모습이 약간은 창피하긴 했다. 그러나 자우림 멤버들과 매니저분들이 응원해주시고 또 팬 코러스 중 한 분이 약간의 안무를 맞추자고 제안하셔서 학예회 같은 느낌이지만 그래서 더 일반인 코러스의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듯한 무대가 연출이 되었다.

11월 8일 본 공연 날. 아침 11시까지 집합. 출근 차량들이 많아서 늦지 않게 아침 8시부터 준비하고 나갔다.

한번 가봤다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운전하여 공연장에 도착했다. 본 공연은 저녁 7시이기 때문에  대기실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분들에게 마음을 굳게 먹고 말을 걸어보았다. 다들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어서 오랜 대기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자우림의 점심 도시락 선물도 받고 짧은 리허설 뒤에 또 오랜 기다림을 유지한 후 무대에 올랐다. 전날과는 달리 꽉 찬 관객석을 보며 열심히 노래했다. 내가 서 있는 쪽은 무대 중앙과는 거리가 멀어서 조명도 비치지 않았다. 정말 어둠 속에서 날 봐주는 이 없어도 열심히 했다. 자우림 멤버들은 25년 전과같이 여전히 또 늘 그렇듯이 최고의 무대를 선보였고 우리의 팬 코러스가 무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었다. 시상식이 생방송으로 송출이 될 예정이었으나 10월 마지막 주말 발생한 안타까운 핼러윈 참사로 인천시 애도 기간에는 공연방송이 모두 취소가 되었다. 정말 나만 기억하는 신기루 같은 경험으로 무대는 끝이 났다. 녹화 열흘 후에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이 되어서 시청했는데 정말 나는 실루엣만 보이고 끝이었다. 가족들, 친구들 아무에게도 나의 출연을 알리지 않았다. 봐도 알아볼 수가 없으니까. 하하하하하. 아쉽지만.... 시상식 코러스 참여를 통해서 자우림의 선물 (핸드크림, 립밤, 후드티, 사인, 기념사진)을 또 받았고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 팬들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정말 다들 부지런히 멋지게 살고 있었다. 1년 동안 자우림과 다양한 팬들을 만나게 되어 자극도 많이 받고 내년에도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다짐하게 되었다.




그리고 12월 9~11일 자우림 단독콘서트가 열렸다. [ MERRY SPOOKY X-MAS ]

늘 혼자 다니던 콘서트 관람이었는데  가족이랑 10일 공연을 보고왔다.

늘 내 꿈을 지지해 주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보니 더 행복했다.


별것이 아니기도 하고 또 별것이기도 한 자우림과 함께한 이벤트들이 이제 정말 끝이 났다.

5월부터 12월까지 친척들보다 자우림을 더 자주 만난 것 같다.

또 연락이 오지는 않겠지. 하하하 하하하

25년 동안 밴드를 유지하면서 음악을 하고 멤버들은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는 자우림이 너무 부러웠다.

그리고 계속 지치지 않고 음악을 하는 모습들이 너무 멋있었다.

사실 올해는 내가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우울했는데

작은 도전이라도 꾸준히 하고 뭐라도 하면서 그냥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나의 미션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자꾸 말도 안 되는 큰 꿈만 꾸지 말고 작아도 매일 결과물을 남기는 것이 좋겠다.

그러다 보면 미래에 지금과는 다른 내가 서 있을 것이다.




팬 코러스가 아닌 진짜 코러스를 제의 받은 적이 있었다.

대학 때 공연동아리 언니가 전문코러스인으로 활동하고 계셨는데

대형가수 콘서트 전국투어 콘서트에 코러스로 함께 해보겠냐고 물으셨었다.

난 돈도 없고 백도 없어서 대학을 제때 온전히 잘 졸업해야 했는데

음악의 길을 살짝이라도 밟으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슬픈 생각이 들어서

제안은 너무나 감사하지만 거절하였다.

그 후 몇 년 후에 다른 가수 콘서트로도 한 번 더 제의하셨는데 그때도 정중히 거절하였다.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난 참 여유가 없었다.


가끔 생각해 본다.

그때 언니 따라서 공연을 해봤으면 어땠을까.

나 대신 코러스로 참여했다는 다른 언니도 콘서트 후에 다시 학업으로 돌아와서 졸업 잘했던데.

나는 꼭 그 길로 간다는 보장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겁을 냈을까.

경험해야 했던 때를 지나고 나중에 억지로 기회를 만들려니 나만 괴롭다.

취미로라도 꾸준히 음악을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GMA에서 만났던 팬들을 보니 학교에서 직장에서 밴드를 하면서 꾸준히 직접 하는 음악을 경험하고 있었더라.

난 방구석 망상만 하는 베짱이일 뿐이었는데.......

 


며칠 있으면 23년 새해가 온다.

브런치에 올해를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이런 초라한 글을 만들어버렸다.

좀 더 읽고 좀 더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하는데...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말고 정진하자.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내가 되어야겠다.

22년 음악 활동 글감. 이제 하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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