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회
2022년이 하루 남았다.
올해 사부작사부작 진행한 마지막 음악 여행을 글로 남겨보려 한다.
작년 드림 아티스트가 종료된 후 아쉬움이 많았다.
이렇게 열정 가득한 사람들과 조금 더 함께하면 좋으련만 다른 기회는 없는 걸까?
지역문화재단에서는 매년 일반시민 대상으로 하는 아카데미가 신설되는데 21년도의 뮤지컬 수업과 같은 내용은 없다고 한다. 혹여 있더라도 기 참여자는 해당이 안 된다고 하더라.
지자체 선거 이후 시를 위한 일꾼들도 바뀌고 그에 따라 정책도 프로그램도 진행 속도가 느려졌다.
연초에 지역 내 예술인을 위한 지원사업과 공고가 있었지만, 마음만 예술인인 내가 지원할 분야는 없었다.
생활예술인 동호회도 지원하는 큰 규모 사업에 뮤지컬반이었던 사람들 몇 명을 모아서 지원서를 제출해 보았지만 보기 좋게 낙방했다. 그렇게 포기하려던 찰나 지역사회 소외된 지역 문화지원을 위한 동호회 모집이 4월경 문화재단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소규모 모임을 할 수 있는 작은 동호회실과 세미나실 이용이 무료이며 예술인으로 등록된 강사를 초빙해서 강의하면 강의비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21 드림 아티스트 강사 중 한 분께 강의를 부탁드리고, 같이 수업을 들었던 분들께 일일이 연락하여 함께 동호회를 할 수 있는지 여쭤봤는데 참여 의사를 밝힌 이들은 성인 두 명, 중학생 한 명, 초등학생 세 명뿐이었다. (8월에 성인 한 명, 초등학생 한 명이 추가로 합류하여 회원은 총 여덟 명이 되었다.)
공짜로 보컬 강의 다섯 번을 듣고 작은 무대 공연 두 번 하면 된다는 정보만 그들에게 전달한 채 지원서를 작성하고 생활문화동호회 지원을 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상 아무것도 없는 우리 동호회가 12개의 지원단체 중 하나로 선정이 되었다.
처음엔 정말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집에서 가만히 있기에는 아쉽고 작년에 만났던 사람들과 얼굴도 보고 노래도 배우면서 그렇게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간 즐겁게 지내면 좋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수업은 한 달에 한 번, 세 시간만 들으면 되었고, 학생들 스케줄에 맞추어 토요일로 모임 시간을 정했다. 마침 성인 회원이 성악을 전공하고 여러 무대를 연출해본 능력자라서 우리 동호회 연출자 자리를 부탁드렸다. 같이 동호회 이름도 만들었다. 이것저것 생각해보았는데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단어 앞 글자만 따서 줄임말을 만들어서 장난삼아 랩처럼 뱉어내다 '이드뮤'라는 단어가 나왔다. 언뜻 들으면 외국말 같은데 뜯어보면 너무 멋없는 단어. '이'십일 년 '드'림아티스트 '뮤'지컬반의 줄임말이다. 'IDMU'라고 영자로 적으니 그럴싸해 보였다. 연출자는 거기에 IDentity MUsic을 추가해서 음악의 정체성, 존재의 의의를 확립하자는 의미를 넣었다. 이름을 부르니 꽃이 되었다는 내 브런치 첫 글처럼 '이드뮤'도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5월 첫 수업부터 강사님의 커리큘럼에 맞추어 뮤지컬 곡을 배우고 중반 이후부터는 회원 개인이 원하는 곡들을 선정하여서 수업했다. 회비 하나도 없이 진행되는 고급 강의였다. 나중에 들었는데 강사님께 문화재단이 다른 일자리 제안을 하셨었는데 우리 동호회를 맡으셔서 제안받은 일을 하지 못하셨다고 한다. 너무 죄송했다. 강사님은 사례금이 적은데도 늘 긍정적으로 말해주시고 밝은 모습으로 강의를 해주셨는데 특히 초등, 중학생들 눈높이에 맞추어서 진행해주셔서 나에게는 정말 천사 같은 분이다.
9월에 재능기부공연 (문화가 있는 토요일), 10월에 생활문화동호회 축제 공연 (선정된 12개의 동호회가 전시, 공연을 하는 날)로 두 번의 공연을 진행해야 했는데 강사님의 제안으로 7월에 공연을 하나 더 하게 되었다.
강사님이 공연기획회사를 운영 중이신데 김포시와 함께 공연행사를 진행하시면서 우리 이드뮤에게도 기회를 주신 것이다. 동호회는 함께하지 못하지만 작년에 드림 아티스트 단원이었던 남자분과 이드뮤 연출자, 그리고 내가 함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넘버 중 다섯 곡을 부르게 되었다. 오페라 본 공연 전 개막공연으로 솔로, 남녀듀엣, 여성듀엣 곡들로 이루어진 갈라쇼를 선보였다. 한 달 만에 준비해야 했는데 나는 뮤지컬 곡들도 잘 모르는 상태여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공연날까지 노래도 외모도 공연자로서는 불합격인 상태라고 느껴져서 자신이 없었다. 방구석 가수가 사람들 앞에 서게 되니 참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왔다. 솔로곡 클라이맥스에서 갑자기 목이 막혀서 노래가 1초 정도 끊겼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래도 첫 무대치고는 괜찮았다는 주변의 반응이다. 돌아보니 조금 더 자신 있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7월 가장 습한 날 야외 공연장에서 울려 퍼진 이드뮤란 이름의 첫 공연. 같이 노래한 친구들과는 전우애 비슷한 감정이 생겼다.
<지킬 앤 하이드 갈라 공연곡>
1. Take me as i am
2. 지금 이 순간
3. Once upon a dream
4. In his eyes
5. A new life
9월 초, 월곶문화센터에서 '문화가 있는 토요일' 재능기부 공연을 했다. 매주 토요일 시민 49명 참여 신청을 받아서 공연 관람과 체험수업을 무료로 할 수 있게 하는 문화재단의 프로그램이다.
다섯 번의 정규 수업과는 별개로 공연 연습을 따로 해야 해서 가까운 유료 연습실을 대여하고 모여서 연습했다. 학교, 학원 스케줄이 다 달라서 연습 시간 맞추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회원 모두 열정적으로 공연 준비에 임해주어서 그 또한 즐겁게 진행됐다. 공연 의상을 위해 단체복도 맞춰봤다. 문화재단 결제 시스템이 단순하지 않아서 처음엔 애를 먹었으나 재단 담당자께서 도움을 많이 주셔서 예쁜 티셔츠를 입고 공연을 하게 되었다. 나름 뮤지컬 무대에 맞게 핀마이크도 따로 대여했는데 음향관리도 동호회 내에서 다 해야 했기에 회원 가족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서 공연을 치러냈다. (음향과 촬영 담당을 해 줬던 회원의 가족분들께는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문화가 있는 토요일' 공연곡>
1. 맘마미아 (뮤지컬 맘마미아)
2. 살다 보면 (뮤지컬 서편제)
3. 그의 눈에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4. 내 인생 언제 달라질까 (영화 라푼젤)
5. 황금별 (뮤지컬 모차르트)
6.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악동뮤지션 ver.)
7. 신호등 (이무진)
10월 중순, 월곶 생활문화축제가 진행되었다.
이전 '문화가 있는 토요일' 공연에는 단체 곡들을 주로 했는데 이번엔 개인 솔로곡 위주였다. 대다수가 학생들이라 다 같이 모여서 하는 연습이 어렵기도 했거니와 다섯 달 동안 수업을 받으면서 배운 것들로 자신만의 곡을 완성하자는 취지로 연출자가 기획했다. 의상도 연기도 모두 자신이 책임지고 완성해 보라고 했다. 똘똘하고 당찬 우리 어린이, 청소년 회원들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해내었고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드뮤와 함께한 공연이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경험으로 작용하길 바라고 있다.
이드뮤가 축제 공연의 첫 단추를 끼웠고 그 후로 줄줄이 여러 공연팀이 이어지며 전문공연단도 와서 볼거리가 풍성했다. 건물 안팎에서 체험행사도 진행되었는데 우리는 오전부터 리허설이다 뭐다 준비해서 다들 지쳐서 일찌감치 해산했다. 조만간 다시 만나서 공연 얘기도 하고 즐겁게 식사도 하기로 했지만 이래저래 사정들이 생겨서 결국 올해 안에는 못 보고 내년을 기약하게 되었다.
<월곶생활문화축제 공연곡>
1. Seasons of love (뮤지컬 렌트)
2. 온 세상 내 것이었을 때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3. 나 언젠간 떠날 거야 (영화 모아나)
4. 어른이 된다는 건 (영화 겨울왕국 2)
5. 내 인생 언제 달라질까 (영화 라푼젤)
6. 기억의 강 (영화 겨울왕국 2)
7. Popluar (뮤지컬 위키드)
8. 살다 보면 (뮤지컬 서편제)
9. 댄싱퀸 (뮤지컬 맘마미아)
단순히 몇 자의 글로 정리될만한 내용은 아닌데 글을 쓰다 보면 자꾸 회원들의 개인정보가 섞이게 되어서 자중하게 된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일반인들이라 함부로 알릴 수가 없으니 말이다. 아쉽지만 이 정도에서 이야기를 마쳐야겠다.
매번 공연할 때마다 꼭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처리하게 되어버릴 줄은 나도 몰랐다. 역시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한 해다. 공연마다 최선을 다했었나 자문하게 되고 마음도 외향도 더 가꾸었으면 좋았을 걸 후회도 하게 된다. 마음만은 청춘이라지만 해가 갈수록 쇠약해지는 나를 느끼게 된다. 이렇게 또 한 살 먹게 되면 언젠가는 내 꿈이 정말 꿈으로만 남아 사라지게 되는 걸까.
지난 10년간 수도 없이 고민해 왔다. 실용음악과에 지원해 볼까? 오디션을 볼까? 자비로 디지털싱글 앨범을 내버릴까? 기획사 문을 두드릴까? 비영리단체를 조직해 볼까? 그런 생각만 하다가 올해 마음 맞는 사람들과 공연이란 것을 해봤는데 비로소 내 상태를 제대로 마주한 듯하다. 방에서 혼자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던 나는 세계 제일의 엔터테이너였는데 실제 사람들 앞에 서니 많이 떨고 긴장하더라. 내 호흡과 발성은 아직 연습이 많이 필요해 보이고 시선 처리는 물론 근육도 한참 모자라 보인다. 공연예술인들이 얼마나 자기 관리를 하고 부단한 연습을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삶이란 사람들을 만나서 이리저리 부딪히고 생각하고 경험하고 그렇게 자신의 반경을 넓혀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난 그동안 직장인이라는 핑계로 늘 제자리에만 있었다. 내 자의가 아닌 기회로 자유가 왔지만 이제야 준비해야 하니 늘 아기 걸음마뿐이다. 그렇다고 조급할 필요는 없다. 아직은 나의 보살핌이 필요한 가족들과 반려동물들이 가득해서 물리적으로 무리하게 이 자리를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home을 지키면서 나의 house에서 느리지만 구체적인 음악 활동을 하는 것이 23년 목표다.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이드뮤 회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내년엔 어떤 일들을 벌일지 고민해 봐야겠다.
2025년엔 예술인이 되어있길 고대하며.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