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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기 Nov 27. 2024

고서화(古書畵) 한 장

- 오래된 기억

고서화(古書畵) 한 장


- 김용기



오늘처럼 소복소복

눈 내리는 날

일찍 해 진 초가집에는

등잔불 밝힌 건넛방 이불속으로

나한(癩悍)이 기어 들어왔다

동화책 중간쯤 험상궂은 얼굴

그런 무서움은 끝내

침 꿀꺽 삼킨 어린 명치끝에

똬리를 틀었다


그 밤 사단이 났다

짠지와 동치미의 이른 저녁밥

물킬 수 밖에

요강은 이미 형제들이 선수를 쳤고

잘람잘람

불 없는 뒷간은 멀었다

그걸 밤새 참았으니

나한이 쫓아오는 꿈을  

벗어날 재간이 없었던 것


눈길을 걸어

이웃집에 도착한 이른 아침

둘러 쓴 키 위에 소금이 촤르르르

뿌려졌던 아픈 기억

강물처럼 멀어져 갔다


오늘처럼 눈이 내리면

흐릿해진 나한이

내 왼 가슴을 파고 든

밤길 쇠기러기가 무서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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