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주 Jun 24. 2022

부모님에 대한 소회

  어릴 적 우리 집은 넉넉하지 못했다는 표현도 사치스러울 만큼 지독히도 가난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많이 아프셨고, 엄마가 구멍가게라고 하기도 우스울 정도의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논 세 마지기에서

수확되는 쌀 몇 섬을 가지고 겨우겨우 우리 다섯 식구의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왔던 듯싶다.

물론 나는 너무 어려 희미한 기억만이 남아 있지만 말이다.


  나보다 두 살, 네 살이 많은 오빠들과 딸 하나로 막내딸이자 고명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인지, 집안 형편은 가난했지만, 나름 그래도 부모님의 사랑은 많이 받았던 듯싶다.

우리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면 날아갈까, 쥐면 으스러질까'키우셨다고 하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시골 중의 상 시골인 우리 동네에서 그래도 나는 원피스를 입었었고, 다른 아이들이 검정 고무신을 신고 고무줄을 할 때, 그래도 나는 운동화를 신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우리 엄마가 구멍가게라 하기도 민망했던 작은 가게를 운영하시면서 그래도 푼돈이나마 만질 수 있었기에 엄마 나름대로의 딸을 위한 만족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내가 고무줄을 못하는 이유는 운동화를 신어서라며 '난 왜 고무신 안 사주냐'며 떼를 썼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기도 한다.


   어찌어찌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내 가정을 이루었다.

옛날 부모님들은 왜 그러는지 자식들이 혼사를 치른 후에는 아들과 딸의 구분을 명확히 지으신 듯하다.

딸도 똑같은 자식으로 생각하며 금지옥엽 키우셨을 텐데, 왜 결혼이란 이유로 구별을 지으셨는지...?

지금은 텔레비전 보는걸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아주 오래전 '아들과 딸'이라는 TV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부모님의 지나친 아들 사랑으로 딸과의 관계가 어색해지는 그런 설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부모님 또한 내가 결혼을 한 후 어느 순간부터는 아들인 오빠들과 딸인 나와의 선을 너무나도 명확히

그어 주셨다.

아들들인 오빠들에게 무언가를 줄 때는 그저 단지 옮겨놓을 뿐이라는 생각이신 것처럼 하셨고, 딸인 나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은 빼앗기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아들과 딸의 차별에 대해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서운했던 일은 오빠들에게는 쌀을 한 가마니씩 주실 때, 나만 딸이라는 이유로 반가마니를 주실 때였다.

이 일이 처음 겪는 아들과 딸의 차별의 시작이기도 했거니와, 먹을 것조차 차별을 두시는 것에 대해 해가 거듭될수록 솔직히 치사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결혼 전에는 '우리 딸, 우리 딸' 하시다가 성이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자식도 아니고 친척도 아닌 어정쩡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어떤 고립감마저 들게 했다.

물론, 부모님은 늘 사랑하는 딸이라고 생각하셨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런 동질감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동성의 언니나 여동생이 있었더라면 그런 쓸쓸한 마음이 조금은 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부모님께 그동안의 차별에 대해 따지거나 속내를 드러낸 적도 별로 없었다.

그냥 속으로 삼키며 체념을 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렇게 쌓인 감정들이 부모님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나의 이런 감정을 모르신 채, 데면데면한 아들들보다는 그래도 살가운 딸이라는 생각으로 아버지 또한 그동안의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을 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동안의 내 마음속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부모님께서는 아들과 딸을 차별해서 아들들한테만 다 해 주시고, 나는 늘 곁 식구처럼 대했으면서, 왜 서운한 것에 대해서는 나까지 포함시키냐?"며 대들었다.

아버지는 많이 당황하셨고, 나는 엄마가 붙잡는 것조차 뿌리치고 울면서 집으로 와 버렸다.

이 날은 너무 눈물이 나서 집으로 돌아올 수 조차 없어 집 근처 공원에서 엄청나게 배회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부모님에 대해 오래도록 느껴왔던 나의 감정들을 표출해 내면 내 마음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늙고 힘 빠진 부모님의 모습에서 내가 마치 어떤 가해자가 된 듯한 죄책감마저 들게 했다.

그러나, 그날의 사건이 또 나쁜 것만은 아닌 것도 같다.

부모님께서는 '네가 그런 감정을 갖고 있는지 몰랐다'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옛날 사람들이라 그렇게 밖에 못했다, 그동안 네가 섭섭했을 수도 있었겠다. 미안하다"라고 말씀을 해 주시기도 했다.

물론, 내가 딱히 부모님의 사과를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사건처럼 그날은 나도 내 감정이 불쑥 튀어나온 것뿐이지만, 그래도 부모님께서 이제라도 나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보듬어 주신 것 같아 마음 한편은 한결 편안해지긴 했다.


  이젠 나도 나이를 먹어 성인이 된 또 다른 나의 자식들을 보듬고 있다.

우리 부모님도 분명 나를 사랑으로 보듬고 키우셨을 테고, 데면데면한 아들들보단 말 한마디라도 더 섞어주는 딸에 대한 편안함으로 나를 더 그렇게 대해셨을 거란 생각 또한 물론 있다.

이제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나 서운함 그런 감정들보다는 늙어가는 두 분을 뵙고 돌아설 때면 그저 안쓰럽고 무언지 모를 짠한 마음이 많이 든다.


어제는 아버지가 감자 한 박스를 사 주셨다.

"아들 몰래 너만 사 주는 거야" 하신다.

비싼 돈을 들인 건 아니지만, 부모님의 나에 대한 여러 가지 마음을 담아 사 주시는 것임을 알기에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는 부모 특유의 마음으로 내가 아직도 '우물 둔덕에 내놓은 아이 같다'며 감자 쪄 먹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알려 주셨다.

부모님에게 나는 그저 늘 어린 막내딸의 모습인가 보다.

이젠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는, 나도 늙어가는 딸인데도 말이다.

"감자, 맛있게 잘 먹을게요~ 끝까지 한 알도 안 버리고 다 먹을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