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주 Aug 06. 2022

여름 나기

오늘 더위도 역시 만만치가 않다. 내일이면 이제 24절기 중 13번째 절기인 입추라는데 이번 여름 더위는 어째 점점 더 기승을 부리며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봄에 가뭄이 극심했을 때는 비가 그리도 그리웠는데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로 인해 너무 습하다 보니 이젠 비가 그만 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한여름의 뜨거운 온도도 물론 힘들게 하지만 무엇보다 이 끈적거림을 유발하는 높은 습도는 불쾌지수를 더 높이는 듯하여 어서 빨리 청량감을 주는 가을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동네에서 조금 떨어져 비교적 외딴곳에 있었는데, 뒤로는 야트막한 작은 산이 있었고 집 앞으로는 작은 냇가가 있었다. 사실 냇가라기보다는 우리 동네에서는 '개울'이라고 불렀기에 우리 집은 자연스럽게 '개울가 집'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오빠들을 쫓아다니며 산으로 들로 다니며 진달래꽃이나 딸기, 오디 같은 온갖 열매들을 따 먹기도 했고, 그런 것에도 싫증이 나면 개울로 풍덩 뛰어 들어가 '멱'을 감다가 수풀을 발로 꾹꾹 쑤셔가며 미꾸라지 같은 물고기를 잡으며 놀기도 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여름이 되면 풍성해진 먹거리에 놀거리도 많아지는 데다가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앞의 개울로 놀러 와서 왁자지껄 떠들고 노는 게 그저 좋아서 덥다는 것은 아랑곳 않고 그저 여름을 좋아했었다.

우리 집 앞의 개울에는 수문을 해 놓은 작은'보'가 있었다.

여름이면 그곳이 늘 동네 놀이터가 되곤 했었는데, 빨래를 하러 오는 아주머니들도 계셨고, 내 또래의 아이들은 '멱'을 감으며 놀기도 했고, 저녁 해가 넘어가 어스름해질 무렵이면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 개울가에서 물놀이를 하시기도 했다. 가끔은 '철렵'이라 불리는 여름행사를 하곤 했는데 개울에서 잡은 물고기를 밭에서 뜯어온 푸성귀와 함께 국처럼 찌개처럼 얼큰하게 끓여 어려웠던 시절 동네 사람들과 같이 맛있게 나누어 먹었던 기억도 있다.

그렇다고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빠들하고만 놀아서인지 인형놀이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도 없었는데, 어느 날 엄마는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딸이 사내아이들 놀이만 하고 노는 게 안타까우셨는지 '바비인형'을 하나 사 주셨다. 그 인형을 개울로 가서 빗질을 하며 씻기며 놀다가 인형과 빗을 모두 물에 흘려보냈는데, 비싸게 사 준 인형을 금방 잃어버렸다고 화가 난 엄마는 부지깽이를 들고 쫓아오셨고 난 그 매를 피하려고 논둑길로 엄청나게 내달렸던 기억도 있다.

이런저런 추억을 갖고 있는 개울이 어렸을 때는 꽤나 넓었다고 생각되었는데, 이젠 그 개울이 다 말라 없어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내 추억도 함께 없어진 거 같아 많이 아쉽기도 했다.


벌써 30여 년 전인 1994년도 여름은 그동안 내가 겪었던 여름 중 제일 더웠던 여름이었다. 60년 만의 더위라며 매스컴에서도 연일 더위에 대한 특보를 다루기도 했는데, 그 뜨거운 여름에 우리 큰아이를 출산했다.

그때는 산후조리원이라는 게 없었기 때문에, 보통은 친정 엄마들이 아이를 출산한 딸을 위해 미역국도 끓여 먹이고 갓 태어난 아기도 돌봐주시면서 산후 관리를 도와주시곤 하던 시절이다.

나도 물론 친정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한 달여간 친정에 머물렀는데, 우리 친정집은 2층의 서향집인 데다가 에어컨도 없었던 터라, 해가 넘어가는 오후 서너 시부터는 낮동안의 복사열과 함께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그대로 받았기에 갓난아기였던 우리 큰아이는 더위에 많이 보채기도 했고 나 또한 유별난 더위와 처음 겪어보는 육아에 대한 두려움으로 몇 배의 더위를 느낀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 해의 여름은 지금보다 젊어서인가 나름 견딜만했었던 것 같다.


3년 전쯤, 그해 여름94년도의  더위만큼이나 만만치 않게 더웠던 여름으로 기억된다.

전남 영암의 월출산 자락의 부대에서 근무하던 둘째의 면회를 핑계 삼아 월출산 등산을 했던 적이 있다.

하필이면, 그날이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그 해 들어 최고로 더웠던 날이기도 했고, 암산(岩山)으로 이루어진 월출산의 특성상, 그늘도 거의 없이 그야말로 땡볕 산행을 하였다. 그러나 여길 언제 와보겠냐는 마음으로 '천황사'를 시작으로 '천황봉'을 거쳐 '구정봉'까지 꼼꼼히 살피며 '도갑사' 쪽으로 하산을 하면서도 물을 구할 수 없는 산이라 목이 말라 힘이 들었을 뿐, 이때의 더위도 그럭저럭 이겨낼 만했다.

그런데, 올 해의 더위는 잦은 비로 인해 습도가 높아서인지 온 몸에 풀칠을 해 놓은 것처럼 끈적끈적한 게 불쾌지수를 엄청나게 높이고 있어 지난 몇 번의 더위보다도 훨씬 견디기 힘들게 하고 있다.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선풍기조차 싫어하는 나였는데 올여름은 선풍기와 에어컨이 없이는 일상생활조차 할 수없게 만든다.


아열대 기후로 사계절이 여름인 동남아에서 온 근로자들조차도 그들의 나라보다 우리나라의 여름 날씨가 훨씬 더 견디기 힘들다고 말한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여러 기후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어 우리나라의 날씨도 그러한 영향을 받아 이제는 사계절의 구별도 희미해졌을뿐더러, 여름 날씨 또한 여타 동남아의 나라들 못지않게 점점 더 더워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때는 따가운 해를 보면 밖에 나갈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듯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오히려 동네의 산도 다니고, 자전거도 타며 애써 이 더위를 이겨 보고 있기는 하다.


이 여름이 아무리 무덥다한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이제 내일이면 가을의 문턱이라는 입추(立秋)다.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찜통 같은 더위에 가을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마음이 저만치 앞서가는 느낌이다. 게다가 열흘여 뒤면은 삼복(三伏)의 더위중 마지막인 말복(末伏)이다. 물론 마지막까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겠지만, 그래도 '모기 입도 삐뚤어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처서(處暑)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 이 더위와의 싸움도 곧 끝이 날 거란 생각이 든다.

추운 겨울이 되면, 다시 또 여름을 기다리겠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은 이 여름이 어서 빨리 가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중 하나인 '가을이 오면'을 들으며, 때 이른 가을을 기다려 본다.








작가의 이전글 차마고도를 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