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녹아내렸다.'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난히 지독하게도 더웠고 뜨거웠다. 땀도 많고 더위에 최약체인 나는 올여름 쥐 죽은 듯 방에서 콕 박혀 지냈고,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선크림, 손수건, 양산, 데오드란트 등 여름과 맞서 싸우고자 나만의 무기들을 가방에 욱여넣은 채 여름에 대응했다. 이에 코웃음 치듯 밖에 나온 지 5분도 안돼 온몸이 땀으로 물들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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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싫은 수천 가지의 이유 중에서 꽤나 상위권에 위치해 있는 순번을 뽑아 보자면 바로 '모기'다.
달콤한 잠에 빠져있을 때쯤, 경보음 마냥 귀에서 소리치는 모기소리와 무의식 중 팔이나 다리를 긁어서야만 발견되는 모기의 진한 자국까지. 모기의 '모'자만 들어도 진저리가 났는데, 어쩐지 올해는 모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더웠던 여름이 자신의 친구 모기까지 질리게 만들었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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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장렬하게 내리 째던 태양이 아침과 밤에는 자신의 성질을 조금 죽이는 8월 말을 지나 이제 곧 나뭇잎들의 축제인 9월 초까지, 시간은 가을을 향해 빠르게 달아나고 있다. 며칠만 낮의 더위를 버티다 보면 가을바람이 내 몸을 감싸주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 찰나, 무의식적으로 지하철에서 내가 팔을 긁고 있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볼 수 있었다.
'아뿔싸, 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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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은 점점 빨갛고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여름은 이제 끝났다는 안일한 생각이었을까?
늦깎이 모기가 어디선가 나타나 내 손목에 진한 정체성을 남기고 사라졌다. 자신을 잊지 말라는 경고였을까, 아우성이었을까, 발버둥이었을까. 유별나게 모기에 물리지 않았던 올여름이었기에 내 머릿속에서 모기라는 존재가 흐릿해져 갈 때쯤 그는 귀신같이 나를 찾아와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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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지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결국 잊혀짐인 걸까.
친구를 위해 사소한 선물이라도 챙겨주려는 것.
엄마의 힘듦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설거지와 청소 그리고 동생을 돌보는 것.
할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
아빠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장학금을 타는 것.
어쩌면 내가 했던 이 모든 행동이,
칭찬이 굶주려있었던 나의 아우성이,
그들이 느끼는 고마움으로서 나 자신을 각인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곁에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상처로 자신을 나타내는 모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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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흘러가는 시간, 지루한 일상, 자고 일어나서 밥 먹는 벌거 없는 하루. 어느새 익숙해져 갈 때쯤 별 탈 없는 인생이 허무해지고 당연해지는 요즘이다.
한 번은 엄마에게 이런 말 건넸다.
"엄마, 요즘 인생이 너무 지루해, 맨날 똑같은 일상에 탈출하고 싶어."
이내 엄마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네가 누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 별 탈 없는 오늘에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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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에 물린 상처를 심하게 긁은 탓일까.
살성이 좋은 내가 금방 낫지를 않는 걸 보니 올해 여름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늦깎이 모기에게 물린 지독히도 더운 여름. 모기 없다는 말 취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