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배야'
또 시작이다. 과민성 대장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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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나의 예민함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곤 한다.
이것은 과연 유전인가, 나의 본성인가.
예민함의 극치를 따지면 가히 최고점을 찍을 수 있다고 단언할 만큼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이다.
조금만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두통부터 시작해 뱃속까지 파고드는 고통. 나 자신의 몸도 나의 예민함을 감당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고통으로 신호를 보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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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계산할 때 반말하는 사람.
카드를 던지는 사람.
길거리에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고 담배를 피우면서 침을 뱉는 사람.
신호를 위반하는 차와 사람.
이런 상황들을 볼 때면 문득 화가 치밀어 오른다.
괜스레 못 본척하고 지나가거나 뒤돌아 금방 잊을 수 있지만, 어쩐지 나는 그들에 의해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곱씹고 곱씹어보면서 그들의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한숨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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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나 자신에 더욱 엄격한 나다.
한 가지 액션을 취할 땐 수십 번, 수백 번, 수천만 번을 생각한다. 정작, 그들은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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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의 꼬리를 무는 생각을 금방 잘라내 버리고, 자극에 둔감하지 않는, 크게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을 항상 부러워했다.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그 마음가짐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SNS를 하다 문득 이런 사진을 하나 보았다.
"밤 12시 잘 시간, 부끄럽고 민망스러웠던 옛 기억이 생각나면서 이불킥을 날리는 나의 모습." 댓글에는 온통 웃음과 공감의 제스처, 혹은 왜 저러나 하는 등 여러 가지 의견들이 갈렸지만, 나는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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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영화, 가족영화 등 긴 여운이 남는 영화를 싫어한다. 싫어한다기보단, 보기 전 마음가짐을 단단히 먹는다. 깊은 여운과 슬프고 아련한 감정이 쉴 틈 없이 몰려와 나를 감싸고 그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만드라마 "상견니"를 보고, 주인공의 이름, OST가 나올 때면 눈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감정이 너무 벅차올라하고 있던 일을 멈출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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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혹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 얘기가 들려오는 걸 극도로 꺼려한다. 주목받는 것도 싫지만, 나와 관련되어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나 혼자 우둑허니 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결국, 예민함에 이기지 못해, 숨이 막힐 때면 자연을 찾아 나선다. 바람을 온 힘을 다해 콧구멍으로 들이마시고,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자연스레 놓아준다. 어렸을 때부터, 왜 그렇게 자연을 좋아했는지 또 집착했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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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는 지독히도 괴롭혔던 내 예민함을 조금 보듬어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선, 예민함이 좋은 영향을 끼쳤던 부분을 찾으려 노력했다.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난 눈치와 센스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풍부한 감수성은 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으며, 끝없는 생각은 사색의 시간으로 바뀌며 나 자신의 내면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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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레놀을 먹으며 눈물을 흘린 적이 참 많았다.
왜 이렇게 머리가 자주 아프고 배도 아프며 생각의 끈을 놓지 못할까. 지난날의 나를 미워했다면, 이제는 나는 남들보다 예민할 뿐이라고. 애써 부정하지 않는다. 이것도 나를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일 뿐.
이를 장점으로 소화해 나를 발전시키는 최적의 연료로 사용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