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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Jul 14. 2022

¡Dios mío!

안녕 까밀로 EP 3/5

January 12, 2016


아침 일찍부터 히치하이킹으로 시내로 갔다. 다음 도시로 가는 버스표가 선착순이라니 별 수 없이 부지런하게 발품을 팔았다. 버스회사 옆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어서, 내 루트 중 볼만한 곳이 있는지 물어보러 갔다.


센터의 직원이 리오 뜨랑낄로 Río Tranquilo 의 마블동굴을 추천해 주었다. 설명을 들으며 사진을 보는데, 까밀로가 2년동안 이동네 살면서 얘기만 듣고 사진도 오늘 처음 본다며 놀란다. 원래 자기가 사는 곳이 가장 여행하기 힘든 법이지. 그가 오후에 직장에 가봐서 밀린 월급을 좀 받을 수 있으면 같이 가도 되냐고 물었다.


까밀로의 일터에 잠시 들렀다. 차를 도색하고 정비하는 곳이었다. 휴가기간동안 쌓인 일인지 차들이 밀려있었다. 까밀로가 사장과 이야기하는 동안 동료들이 힐끗거리며 나를 구경한다. 그는 밀린 월급을 받는 데 실패했다. 우리는 수퍼에 들러 저녁거리와 과일만 잔뜩 사서 집으로 왔다.

까밀로는 스트레스 때문에 먹는 약의 부작용으로 눈썹이 절반 빠져 있다. 늘 하품을 하고 두통을 호소했다. 그의 삶이 몹시 고단해 보인다.


동행하는 일정이 없을 때, 그는 방에서 낮잠을 자고 나는 혼자 마을의 풀어진 개들과 주변을 산책하거나 1층에서 그림에 채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림에 색을 입히고 있는데, 누군가 벽과 창문을 발로 쾅쾅쾅 차며 요란하게 군다. 밖을 보니 첫날 만났던 릴리였다. 문을 열어주고 ‘까밀로는 윗층에 있어’라고 하자, 릴리는 내가 미처 몸을 비켜 설 새도 없이 나를 지나쳐 갔다. 릴리가 까밀로 방으로 가더니 문을 쾅 닫았다.


윗층에서 릴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릴리가 우당탕탕 계단을 내려와서, 바가지에 물을 받더니 티비에 쏟으려는걸 까밀로가 쫒아와 말려 낸다. 냉장고와 부엌찬장에 있는 자기 것들을 꺼내서 가방에 싸거나 바닥에 던진다. 까밀로가 두손바닥을 들어보이고 손을 탁탁 턴다.

“그래 다 가져가, 니꺼면 다 가져가고, 내 집에서 나가. 챠오 chao


나는 3미터쯤 떨어진 창가 식탁에 앉아 얌전히 이 드라마를 구경한다. 릴리는 까밀로의 전여친일까, 마약을 했을까, 나를 오해한걸까, 나한테 헤코지하면 어쩌지, 처음 터미널에서 만났을때도 그녀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었다.


릴리가 내쪽으로 척 척 걸어와서 말 같이 큰 눈을 부릅뜨고 물을 들이키며 나를 위아래로 쳐다본다. 나에게 2마디 말을 했는데 2 단어 알아들었다. 이 집, 미친 여자! 까밀로가 릴리를 당겨서 집밖으로 밀어냈다. 뒷마당에서 또 한바탕 깨부수는 소리가 나더니 요거트로 범벅이 된 까밀로가 돌어왔다


"갔어. 우와. 진짜 미쳤네."


릴리가 가고 집은 다시 고요하다.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림을 마저 그리고 까밀로는 난장판이 된 거실을 응시한 채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나는 먼저 말을 꺼내지 않고 잠자코 기다렸다.


릴리는 어려서부터 노숙을 했다. 어쩌다 까밀로의 아내와 친구가 되었고, 그 인연으로 까밀로네 식구가 3주 집을 비우는 동안 빈 집에 살면서 개와 거북이를 보살펴 주기로 하고 작은 방에서 지냈다고 한다. 까밀로는 계속 실마리를 찾으려 노력한다.


정말 나랑은 아무것도 없어, 아내의 친구일뿐이고 내 타입도 아니고. 뭘까,


30분쯤 후, 경찰 두 명이 도착했다. 까밀로가 릴리를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중년의 남자경찰과 까밀로가 진술서를 작성하는동안 그보다 좀  어린 남자경찰은 거실 벽에 붙은 사진들을 구경한다. 흥분한 까밀로가 상황을 재연하며 거실을 왔다갔다 한다. 그들은 릴리에 대한 인상착의나 또 찾아올 위험성도 이야기 한다. 진술서 작성이 끝나자, 어린 경찰이 어떤 축구선수 사진앞에서 들뜬 표정으로 묻는다.

“이거 00 잖아요.”

“네 맞아요, 우리아버지가 이 축구팀 코치라서 축구 선수는 많이 만났죠”

경찰 둘과 까밀로가 벽에 있는 여러장의 사진을 보며 축구선수 이야기에 한참 열을 올렸다. 그들은 큰소리로 웃기도 했다.


나이 많은 경찰이 릴리에 대한 신상을 서에 보고하는 동안, 어린 경찰은 이번엔 내 여행에 대해 물었다. 어찌저찌 잘 마무리되는 모양새라, 내가 혹시 같이 사진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경찰 둘과 나는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고, 그들은 인사를 하고 떠났다.


“이제 릴리는 이 집에 못올거야 이제 친구도 뭣도 아냐”

까밀로는 여전히 씩씩거리는 한편 나와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원래는 오늘 강으로 연어낚시를 가기로 했는데, 이 일 때문에 갈 기분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내심 아쉽지만 보챌 수는 없었다. 그는 슬픈 표정으로 하니 앉아 있었다.


전화벨이 울려 까밀로가 좀 이야기를 하더니 낄낄거리며 옆으로 왔다.

“아까 그 경찰이야?”

“응”

“뭐래? 릴리를 봤대?”

“아니,...”


“너랑 찍은 사진 좀 보내달래. 페이스북에 올리고 싶다고."


“….” (정적)


“¡하느님 맙소사 Dios mío!!!!!!!!!!!!!!!!!!! 이 미친 세상!!!!!!!!!!!!”

까밀로는 두 팔을 올리더니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 상황과 그의 오버액션에 굴러다니며 웃었다.


"이상해 여기!"



그런데 까밀로가 갑자기 눈물을 터뜨린다. 왜 자기한테만 이런 이상한 일들이 있는 거냐고, 그의 감정선이 톡, 끊어진다. 그는 서러움을 쏟아냈다. 자기 아이들이 너무 보고싶다고, 아이들을 아내가 다 데려가버리고 이혼을 요구하던, 아이들을 다 자기에게 줘버리던 다 문제라면서 엉엉 운다.


눈물이 좀 멎었을 때, 바람을 쐬러 가자고 밖으로 나왔다. 10분거리의 작은 구멍가게에 와인을 사러 가기로 했다. 까밀로는 그의 예쁘고 똑똑한 갈색 개와 함께 무성한 갈대와 들꽃이 핀 들판을 앞서 걸어 간다. 나는 한참 뒤로 쳐져서 걸어가며 갈대가 내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저녁을 먹으며 까밀로가 말한다.

-사장이 밀린 월급을 지금 줄 형편이 안된대. 그래서 리오뜨랑낄라엔 같이 못 가.

-가고싶어?

-가고싶지

-그럼 가자

-돈이 정말 하나도 없어. 산티아고 가서 다 쓰고, 남은 건 애들엄마 다 주고 오고..

-내가 내줄게 그럼. 진짜 가고 싶다면.


내 주머니 사정도 넉넉하지 않지만 서울에서 술 두 번 마실 돈 아끼면 얘에게 꿀 같은 휴가를 줄 수 있겠지.


-진짜지. 확실하지. 말 안바꿀거지. 확실한거지.


묻고 또 묻더니 굳은 결의를 하듯 오케이를 날린다. 저녁 설거지를 하자마자 옷, 신발, 모자까지 빨고 이제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텐트를 빌릴 수 있는지 신이나서 알아본다.


아까 우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나는 이제 갈 길 갈게 안녕-’하고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 뭐 까짓거 내주지 뭐. 같이 가보는거다.


<사진> 히치하이킹 기다리기... 차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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