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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Jul 21. 2022

주머니엔 먼지만...

파타고니아, 뜻밖의 무전여행

단순하게 생각하, 이런저런 사고는 결국엔 지나가는 헤프닝일뿐이다. 이게 다 여행의 묘미라며 정신승리할 수 밖에. (하지만 다시 간다면 돈 많이 싸들고 가야지...)



잠깐 머물렀던 아르헨티나 이야기.

칠레의 남부는 대부분이 섬이라 도로로 이동이 불가능해서, 이쯤 내려오면 반드시 아르헨티나의 국도로 건너가야 칠레 끝까지 이동할 수 있다. 칠레의 칠레 치꼬 chile chico에서 아르헨티나의 안티구오 antiguo 마을로 넘어와서, 아르헨티나 사막을 내질러 칠레의 최남단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 신용카드들이 아르헨티나에서 먹히지 않는다. IC카드는 사용불가라는 메시지만 되풀이되었다. 카드를 긁을 수도 없고, ATM에서 돈을 뽑을 수도 없는 상황. 칠레에서 넘어온 여행자 중에는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 ATM마다 너 돈 뽑아지니? 내가 네 돈을 달러로 살게... 하는 흥정이 이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행이 보일 때마다 들러서 긴 줄을 서야 했다.


결국 아르헨티나 돈 뽑기에 실패한 나는 가지고 있는 칠레 돈 (우리 돈 약 19만 원)을 환전해 아르헨티나에서 이틀을 버티기로 한다. 일단, 호스텔 1박 2.5만 원, 그리고 12+@ 시간 타는 버스의 표값은 13만 원, 2.5만 원은 국립공원 입장료. 끝. 남은 만원으로 밥을 사 먹으면 되겠군.


아주 탈탈 털렸다. 아르헨티나의 물가는 배낭여행자에게 정말 자비 없이 비싸다. 동전 몇 개로 길거리 만두를 사 먹거나 집에서 싸온 누룽지 버티고 다음날 바로 칠레로 넘어가야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며칠 지내려고 했던 내 계획이 이렇게 통째로 날아가버렸다!





Wednesday, January 20, 2016

안티구오 antiguo라는 작은 마을에서 엘챨튼 El charten(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로고, 피츠로이 산으로 유명한 도시)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1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버스회사 두세 군데가 루트 하나를 독점하고 있고 하루 한 대씩밖에 없어 시간 확인을 잘해야 한다. 어차피 1박할 계획이 없기 때문에, 터미널에 일찍부터 와서 밤 버스를 기다렸다.

 

지루한 반나절을 기다려 출발한 버스는 시간을 달리다가 고장이 났다. 한참을 길에 서 있더니,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버스 수리를 4시간 기다렸다. 시간이 점점 늦어지자 45인승 버스 대신 15인승 밴이 왔다. 기사 두 명이 맨 앞에 탔고 그들이 여행객의 몸채 만한 백팩이나 캐리어를 그 뒷좌석에 욱여넣었다. 나는 내 백팩이 옮겨지는 걸 보고 다른 여행객 두 명과 함께 바로 매표소로 가 따졌다. 옥씬각씬 끝에 2만 원 정도를 겨우 환불받고, 씩씩하게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탔다. 수중에 2만 원이 생겨서, 그리고 엘 찰튼 El charten에 새벽에 도착하기보다 어느 정도 해가 뜨고 도착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배터리를 아끼느라 휴대폰을 꺼두었는데, 마침 운전자인 두 사람들이 틀어놓은 음악이 사막과 꽤 어울려서 다행이었다. 두 운전자는 아르헨티노의 아이덴티티인 마테 가방에 마테차와 아주 큰 보온병 가득 뜨거운 물이 있었다. 그들의 간식과 마테를 얻어먹는 이 시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버스는 빰빠라고 부르는 마른땅에 쓸쓸히 깔린 도로를 오랜 시간 달렸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건조한 지역엔 뾰족한 잎을 가진 풀과 거친 바위만 나뒹군다. 밤에는 여기가 지구인지 우주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많은 별이 사막을 지킨다. 새벽녘, 거친 사막에 가끔 야생 사슴이 보였다. 푸른 산이 가까워지고 있다.



도로, 빰빠, 바다, 화산이 한 컷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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