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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Aug 05. 2022

고용주가 되다 - 안드레아1

파타고니아 트래킹 2/5

(이야기를 역순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둘째날.


고개를 숙이고 걸어도 찬 빗방울이 얼굴을 탁탁 때렸다. 길이 질퍽해지고 바위는 미끄러워서 속도를 내지못하고 한 걸음씩 더디게 걸었다. 우중산행이라니, 상상도 못했다. 비올때마다 산행을 취소했기에, 비오는 산행은 처음이다. 이걸 왜 굳이 지구반대편에서 처음 하고 있지 나는?!


마주오는 사람들과 "하이 Hi"하고 짧게 끄덕이며 인사하며 지나치는데, 양손에 등산봉을 들고 일렬로 걷는 그들의 코에 긴 쌍콧물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모두 빗바람에 처참히 굴복중이군.


숙소인 프란세스 포인트까지 2시간이면 간다고 되어있었으니 일단 가보기로 한다. 힘들게 한걸음씩 옮기면서 이러다 미끄러지면 혼자 죽는 것인가? 왜 나는 혼자인가, 왜 비가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나 자책했다. 하지만 예약한 숙소가 있으니 선택권이 없었다. 한걸음씩 앞으로 옮기는 수밖에. 


 , 빨간 점퍼를 입은 청년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길을 막더니, 영어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헤이, 내가, 너의, 가방을, 들어 줄게”

그는 모든 단어에 제스춰를 넣었다.


내 가방을? 니가 왜?....아,  얼마에?”


“20불.”

 달러가 없어"

“그럼 칠레안페소로 10000페소”(2만원)


 그를 위아래로 재빨리 훑고는 알았다고 가방을 넘긴다. 이곳은 입장료가 비싼 국립공원이고... (부디 미친놈은 아니기를!) 비바람에 고생하느니 돈을 좀 쓰더라도 허리를 지켜보기로 한다. (제발 가방들고 튀지만 말아주라)


그는 내 가방을 받아 매고, 조잘조잘 자기소개를 하며 내 속도에 맞추어 걸었다. 

비바람이 멈추자, 그는 다람쥐처럼 재빨리 내달렸다가 기다렸다를 반복했다.


여기보다 더 남쪽의 칠레에서 태어난 안드레아는 비를 맞으며 손님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는 무료 캠핑장인 ‘이탈리아노 캠핑장’ 에서 20일째 야영중인 스무살의 칠레노다. 방학 동안 '또레스델빠이네에서 한달살기'중이란다. 얼마 전 남은 돈을 몽땅 털어(!) 한 여행자로부터 통기타를 샀고, 그래서 집에 돌아갈 차비가 없었다. 그는 고민 끝에, 자기의 체력을 이용해서 여행자의 짐을 들어주고 돈을 벌어보기로 했다. 마침 날씨도 맑고 친구도 사귀고 싶었으니 좋은 생각이라고 기뻐하면서.


그는 새벽에 일어나 3시간을 서쪽으로 걸어와서 두 캠핑장의 중간쯤에 도착했다. 일을 시작한 첫 날, 비가 무자비하게 내렸고 2시간을 기다리면서 지나가는 모든이에게 짐을 들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아무도 그에게 가방을 내주지 않았다. 갈수록 비에 젖어 처량해지고 돈도 못벌고 돌아가게 생겼는데,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물어본 동양인 여자애가 그에게 선뜻 가방을 맡겼다고 한다. 그게 바로  입니다!


게다가 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는 동양인 친구가 자기 생에 처음이어서 신기한 것도 잔뜩인데 얘는 영어와 스페인어도 하는데다, 가방도 평균치의 반도 안되는 7키로 안팍이었다. 횡재다!


나도 마찬가지로,  힘들어 죽겠는데 가방을 들어주겠다니 하늘이 보낸 천사인가? 생각했었는데. 이런 윈-윈이 또 있을까!


나는 안드레아를 따라 빗속을 조심스레, 빠르게 걸었다. 등짝에 거북이등 같던 묵직한 짐이 없으니 날 것 같았다. 보통 3시간 걸린다는 구역인데, 우린 1시간 40분 만에 주파해 이탈리아노 캠핑장에 도착했다. 무료 캠핑장이다보니 장기 투숙객(?)이 많았고, 매일 관리되는 곳이 아니다보니 지저분했다.

안드레아의 텐트 안은 넓었는데, 먹고 난 통조림이나 1회용 그릇들, 옷가지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텐트 한 가운데에는 기타와 악보가 떡하니 있었다. 너구나? 안드레스를 파산시킨 게. 고맙다!


내가 예약한 프란세스 캠핑장까지는 또 1시간을 가야한다. 일단 너무 춥고 배고프니 여기서 쉬었다가기로 했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서 시간도 넉넉했다. 나는 가방에서 3분 북어국 큐브와 누룽지를 꺼냈다. 누군가 캠핑장에 남기고 간 캠핑용 가스버너를 가져다가 물을 끓였다.

불어난 누룽지를 안드레아와 반 나누어 먹었다. 그는 이게 첫 끼니라고 했다. 식은 몸에 따뜻한 국물이 넘어가니 안도감이 퍼진다. 옆에 있던 여행자가 커피를 끓여 나눠 주었다.


우리는 안드레아의 텐트로 가서 기타를 잡았다. 그가 기타로 자작곡을 들려주었다. 어설프지만 좋았다. 나는 내가 가져간 악보를 꺼내 보여주었는데, 그는 악보를 볼 줄 모른다고 했다. 나는 반주없이 노래를 부르며 코드 잡을 수 있겠어? 했더니 안드레아가 헤 웃으며 말했다.

"전혀 모르겠어"


하... 그냥 멋으로 산 거구나 기타는! 너는 낭만주의자네. 내가 웃었더니 안드레아가 머쓱해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안드레아가 남은 여비와 바꿔 먹은 기타

건강히 살아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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