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골집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시골집은 둘레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며, 그 일부가 되는 것에 만족한다.... 그늘진 골짜기에 아늑하게 자리잡기를 좋아한다. 나무가 집 가까이에 다정하게 자라고 있으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면 동그랗게 피어오르는 연기만이 그곳에 집이 있음을 알려준다.
헬렌, 스코트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에서 발췌.
넷째 날.
숙소는 산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등급이 수직 낙하한다.산 초입에 위치한 호텔은 쉐프가 조리하는 레스토랑과 고급 리조트 몇 개 동인데,산 중턱부터는 단출한 2층 집, 그리고 여기칠레노 산장은 통나무집이다. (돼지 삼 형제 이야기 같다.)
가파른 절벽에 좁게 난 길을 지나 계곡에 자리 잡은 통나무집이다. 이곳은작은 골목에 숨은작고화기애애한 로컬 바같아! 나는 낭만주의자여서 혹은 노동계층라서, 이곳이 내자리같이편안하다.
W 트랙을 마치는 여행자와 시작하는 여행자가 만나는 이곳엔 먹을 것도, 정보교류도 차고 넘친다. 그들은 지나온 길의 이정표를 몸에 지니고 있다. 코와 손등이 벌겋게 달아오른 사람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는 중이고, 목 뒤가 까맣게 탄 사람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사람이다. 나는 다행히 후자인데, 콧잔등에 표피가 벗겨진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가 해를 등진 루트를 선택한 걸 다행으로 여겼다.
칠레노 산장의 주방에선 가방의 무게를 덜기위해 풍족하게 먹는 사람들이 많다.그들은 통조림을 털어 데운 다음 선심껏 퍼주었다.때론 팩에 담긴 와인도 등장했다.오랜만의 따뜻한 식사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이곳이 맨 마지막 밤인 여행자들이 많아서인지, 식당에는 '나눔 선반'마다식료품이 가득 있었다. 안드레아와 나는 어느새 곳간의 쥐처럼 모서리마다 설치된 나눔 선반에서 먹을만한 재료를 챙겼다. 안드레아와 나의 가방은 빈 지 오래고, 그만큼 위장의 무게도 줄어가고 있었다.현금을 다 써버려서, 마을로 나가 ATM을 찾을 때까진 이 비상식량으로 버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