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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Aug 05. 2022

캠핑장의 가난한 서울쥐

파타고니아 트래킹 EP 4/5 - 칠레노 산장

오래된 시골집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시골집은 둘레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며, 그 일부가 되는 것에 만족한다.... 그늘진 골짜기에 아늑하게 자리잡기를 좋아한다. 나무가 집 가까이에 다정하게 자라고 있으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면 동그랗게 피어오르는 연기만이 그곳에 집이 있음을 알려준다.

헬렌, 스코트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에서 발췌.




넷째 날.

숙소는 산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등급이 수직 낙하한다. 산 초입에 위치한 호텔은 쉐프가 조리하는 레스토랑과 고급 리조트 몇 개 동인데, 산 중턱부터는 단출한 2층 집, 그리고 여기 칠레노 산장은 통나무집이다. (돼지 삼 형제 이야기 같다.)

가파른 절벽에 좁게 난 길을 지나 계곡에 자리 잡은 통나무집이다. 이곳은 작은 골목에 숨은 작고 화기애애한 로컬 바 같아! 나는 낭만주의자여서 혹은 노동계층라서, 이곳이  자리같이 편안하.


W 트랙을 마치는 여행자와 시작하는 여행자가 만나는 이곳엔 먹을 것도, 정보교류도 차고 넘친다. 그들은 지나온 길의 이정표를 몸에 지니고 있다. 코와 손등이 벌겋게 달아 오른 사람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는 중이고, 목 뒤가 까맣게 탄 사람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사람이다. 나는 다행히 후자인데, 콧잔등에 표피가 벗겨진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가 해를 등진 루트를 선택한 걸 다행으로 여겼다.


칠레노 산장의 주방에선 가방의 무게를 덜기 위해 풍족하게 먹는 사람들이 다. 그들은 통조림을 털어 데운 다음 선심껏 퍼주었다. 때론 팩에 담긴 와인도 등장했다. 오랜만의 따뜻한 식사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이곳이 맨 마지막 밤인 여행자들이 많아서인지, 식당에는 '나눔 선반'마다 식료품이 가득 있었다. 안드레아와 나는 어느새 곳간의 쥐처럼 모서리마다 설치된 나눔 선반에서 먹을만한 재료를 챙겼다. 안드레아와 나의 가방은 빈 지 오래고, 그만큼 위장의 무게도 줄어가고 있었. 현금을 다 써버려서, 마을로 나가 ATM을 찾을 때까진 이 비상식량으로 버텨야 한다.




칠레노 캠핑장에서 식사하는 법

1. 식탁에 앉아 있으면 옆에 여행객이 조리를 시작한다.

2. 옆사람과 인사하고 냄새가 좋다고 칭찬한다

3. 한 그릇 받아먹는다

4. 잘 다녀와~ 인사하고 가만히 앉아있는다.


다음 사람이 앉는다.

(반복)


내눈에만 보이는 칠레노산장


산 초입의 고급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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