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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Sep 04. 2020

트레이너, 코로나 위를 걷다 2

2.5단계로 격상하며 강제 휴가 중인 트레이너의 코로나 대처 일기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하며 수도권 내 실내체육시설은 모두 강제 영업 중지 중입니다.

이 일기는 서울의 한 트레이너가 코로나 사태로 허우적거렸던 과정과 생각을 담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1편 : https://brunch.co.kr/@thinkontrainer/15


감소된 출석률, 점진적으로 회복하다


 다행히도 확진자 수가 100명 미만 내려가며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들까지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내/외부적인 노력 덕분에 출석률은 서서히 회복해서 3월 말 60%였던 최저점을 기점으로 지난 7월 말까지는 꾸준히 출석률을 회복세를 보였으며 신규 회원 유입 역시 증가하였다.

 왜일까?

 첫째로 기존 회원님들과 라포가 두텁게 형성되어 있었다. 진솔한 마음으로 지난 6년을 보냈다. 감사하게도 많은 회원님들께서 우리의 노력에 대한 가치를 좋게 봐주셨다. 일상에서의 노력으로 쌓아놓았던 기반 덕분에 우리 공간에서 나와 함께 운동하는 것에 대해서 믿어주고 잘 따라와 주셨다. 책상 맡에 껴있는 중용의 한 구절이 다시 한번 와 닿는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 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난다.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 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퍼스널 트레이닝이기 때문이다. 피트니스 시장에는 다양한 형태의 업종이 있다. 크게 보면 단순 시설 임대를 하냐 교습을 하냐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의 경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헬스장의 형태를 띠고 있고 후자의 경우 요가, 필라테스, 피티 샵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교습을 목적으로 하는 체육시설은 다시 단체 교습과 개인 교습으로 나눌 수 있는데 내가 일하고 있는 피티 샵, 퍼스널 트레이닝 스튜디오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동 시간대에 많은 인원이 사용하는 다른 체육시설과 달리 피티 샵은 일반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회원만 수업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퍼스널 트레이닝 스튜디오 같은 경우 하루 이용 회원님이 20명 남짓한다. 상대적으로 출입 인원의 방역 및 통제가 용이하고 시간당 이용 인원 수가 적은 산업이 퍼스널 트레이닝 산업이다.

 코로나로 인한 개인화의 가속화, 건강에 대한 감수성 증가라는 현상과 맞물리며 퍼스널 트레이닝, 그중에서도 내가 6년 동안 일하고 있는 이 공간에서만큼은 펜데믹 이후 꾸준한 회복 및 성장세를 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이전까지 꾸준히 회복했던 출석률

언택트 시대 그리고 확신


 코로나 이후 시대를 소위 언택트 시대라고들 한다. 산업의 형태가 많이 바뀔 것이라고들 예측하며 실제로 유명 배달대행업체에 다니시는 회원님 말로는 회사의 트래픽이 배로는 생겼다고 한다. 10년 넘게 노래방을 하시던 어머니는 폐업을 준비하고 계신다. 체감할 수 있는 변화들이 주변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렬하고 명확하게 느껴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 '트레이닝 분야의 저변은 분명 확대될 것이다.'라는 점이다. 단기적으로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우리 산업은 멈칫하고 고꾸라질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신체활동은 건강 유지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요소이다. 모든 것은 고이면 썩게 되고 제 본연의 의미가 퇴색되기 시작한다. 우리 몸이 그에 가장 예민한 존재이지 않을까 싶다. 대사가 떨어지면서 생기는 문제는 이미 사회적인 이슈이다. 비만과 그로 인한 성인병으로 부담하고 있는 의료비 지출이 이미 부담스러운 수준까지 올라갔다. 의료비로 지출되는 금액은 매해 증가되고 있으며 공단이나 사보험사들에게 앞으로 이 문제는 큰 문제로 다가섰다. 언택트 시대는 이런 악순환을 가속화시킬 것이고 사회는 선제 예방 차원에서 신체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할 것이고 개인은 건강을 위해 움직이고 싶어 할 것이다.

 신체활동을 나아가 운동에 관심이 생기면 어떠한 형태건 트레이닝 분야에 대한 저변은 확대될 것이다. 저변이 확대되면 더 나은 서비스를 요구하는 저변 역시 확대될 것이고 효율성을 위하여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바운더리 역시 확대 될 것이다. 때문에 전문성을 재고하며 포지셔닝과 브랜딩에 꾸준한 관심과 노력은 앞으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신이 생길수록 가슴이 두근거렸다. 중학생 때 학교 운동회에서 계주로 나서서 바통을 넘겨받기 직전에 비슷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첫 회원을 만나기 전날 밤, 프로그레스 노트를 책상에 올려두고 앉아 있을 때에도 비슷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나'라는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사회'에도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감과 흥분감은 가슴속에서 큰 해일이 되었다.


"나라는 사람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에 무엇이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


 사실 개인이 큰 변화를 가져오기란 쉽지 않다. 나는 위인전에서 보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열등감에 쫓겨 살아왔고 환경에 빨리 적응하고 타협하며 사는데 익숙하다. 회원들 앞에서 똑똑한 척, 있어 보이는 척은 다 하지만 텅 빈 껍데기 안에서 매일 밤 불안해하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런 나에게 의지가 되는 회원님이 한분 계신다. 내가 50대가 된다면 저 회원님처럼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분 역시 완벽하진 않겠지. 하지만 적어도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보여주시는 그 모습은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다. 마음으로 의지하기에 가끔은 내 속내를 비추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인생 선배로서 쉽게 피드백을 주신다. 

 어느 날 수업 중 나의 확신에 대해 이야기해드린 적이 있었다. 막연하게 큰 꿈 앞에 내가 너무 작고 초라하다 말씀드렸다. 거기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선생님, 우리가 하는 스쿼트도 제가 처음부터 50kg을 했나요? 숨쉬기부터 코어운동, 맨몸 운동부터 진행하며 조금씩 해 나아갈 수 있는 범위를 키워나갔습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1000만 원으로 사업을 할 줄 알아야 1억으로 사업을 할 줄 알고, 1억으로 할 줄 알아야 10억, 100억 할 수 있는 역량이 키워나가지는 겁니다. 꿈이라고 다를 것이 있나요?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보세요."

 조급한 나를 다독이며 해주신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고 그날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섰다.

우선 현재 내가 하고 있는 퍼스널 트레이닝을 잘해나가야 한다. 우리 직업은 현장에서 멀어지면 도태되기 쉽다. 잘 알고, 잘하고, 잘 전달해야 한다. 기본을 충실히 하며 가지를 쳐나가야 한다.

 그다음 한 일은 바로 나를 알릴 수 있는 콘텐츠 만들기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생각에 내가 알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와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이건 뭐 맨땅의 헤딩 수준이라 하나하나 찾아가며 허우적거리고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익숙해지겠지!

 하지만 나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때문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트레이닝 시장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에 후진 양성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나도 한참 모자라 누가 누굴 가르치겠냐만은 대학 시절 공부했던 스터디 동아리에 컨택해서 지난 학기 동안 동아리 후배들을 데리고 '트레이닝'에 대해 알려주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코로나가 심해지며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고 있는 이 시국에 오프라인 교육은 바람직하지 않다 판단하고 이 프로젝트는 잠정 중단한 상태이다.

 하고 싶어 진 것이 많아졌고 쉬는 시간을 쪼개어 사용한다. 하지만 즐겁다. 내 삶을 내가 선택해서 사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노력은 속도도 중요하지만 방향이 더 중요하다.


지난 학기 진행했던 재능기부모임, 모임 이름은 'CLEFT'이다.

수도권 대유행으로 들이닥친 사회적 거리두기 2.5 : 강제 백수가 되다.


 한동안 주춤하던 코로나 기세가 8월에 접어들며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확산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맞춰 전체 출석률 역시 감소하기 시작했다. 사태는 종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갔고 나도, 그리고 나와 함께 하는 많은 분들의 마음에 불안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단순 출석률의 문제가 아니었다. 경제, 교육, 의료 등 각 분야에 과부하가 걸려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면 개인이 개인으로써 존재하기가 어려워진다. 

 지난달 중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하며 사회 곳곳의 작은 톱니바퀴들이 멈추기 시작했고 지난 28일, 3단계에 준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발표가 되며 30일 밤 12시부터 발효가 되었다. 


출처 : 보건복지부


 맙소사 8일이나 쉬다니!!

 지금 일하는 곳에 입사 이래 이렇게 쉬어본 적이 없다. 내 시간에서 발하는 가치를 잘 알기에 나보다 나를 보러 오는 회원님들이 우선이었다. 입사한 지 햇수로 벌써 6년이 되었다. 첫 1년은 일요일까지 나와 근무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일요일만큼은 휴식을 취했다. 그래도 1년에 일요일 제외하고 5일 정도는 쉬었을까? 휴식의 정도야 항상 누구와 비교하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평균 이상으로 일에 시간을 할애한 것은 확실하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오다 보니 쉬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내 정신력과 체력이 시간에 비례해서 회복되는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그 감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다 보니 쉬는 와중에도 불안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런 내게 8일(혹은 더 길어질지 모르는)의 방학은 낯선 이방인과 같았다.

 지난 토요일까지  40시간의 수업을 마친 뒤 30여분의 회원님들께 하나하나 전화를 드려 상황을 설명드리고 문자까지 남겨드린 다음 스튜디오 문을 잠그며 불 꺼진 실내를 들여다보았다. 까만 에버롤 위에 노란색 덤벨 거치대, 스쿼트 렉, 스미스 머신, 네 대의 트레드밀과 한 대의 사이클 머신 등 모든 것은 제자리였다. 8일간 사람이 들지 않으면 위에 먼지가 소복이 쌓이겠지, 내 마음속 '트레이너'라는 단어 위에도 얇은 무엇인가가 덮이는 순간이었다.

 첫날은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 보내야 할까? 잠이 오지 않아 새벽엔 키친 타월에 방학 계획표를 끄적여 보며 머릿속으로 쉬고 있는 나를 그려 보았다. 이 방학 잘 지낼 수 있을까?


안내문자와 방학계획표(?)

첫 번째 방학 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당초에 발표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는 9월 6일까지였는데

곧 발표될 정례 브리핑에 따라 연장 여부가 결정되겠네요.

여부에 따라 3편으로 생각했던 코로나 일기가 한 편 더 연재될 수도 있겠습니다. (=백수 생활 연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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