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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Sep 10. 2020

트레이너, 코로나 위를 걷다. 마지막.

사회를 거리 두며 깨달은 것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하며 수도권 내 실내체육시설은 모두 강제 영업 중지 중입니다.

이 일기는 서울의 한 트레이너가 코로나 사태로 허우적거렸던 과정과 생각을 담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1편 : https://brunch.co.kr/@thinkontrainer/15

2편 : https://brunch.co.kr/@thinkontrainer/17


사회적 거리두기 2.5 : 방학(?)의 시작


 3단계에 준하는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어찌 됐건 시작되었다. 운동의 형태와 상관없이 수도권 내 실내에서 진행하는 모든 체육시설은 일주일 간 휴관하게 되었고 추가로 일주일이 연장되어 13일까지 휴관하게 되었다. 여러 이유로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수업을 하지 않으며 쉬어본 적이 없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급여이다.

 트레이너는 형태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보통 퍼스널 트레이닝을 통해 얻은 수업 당 수업료로 급여가 책정된다. 어떤 곳은 경우에 따라 기본급과 매출에 따른 인센티브가 적용되기도 한다. 수업을 한 만큼 벌 수 있다는 구조는 기회이자 스스로를 옭아매는 올가미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 올가미에 늘 묶여 일주일에 6일을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급여라는 것이 일을 함에 있어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전문성이 재고되고 관계에서 오는 보람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명감 등은 급여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이다. 경험상 돈을 좇아 허덕이면 결과가 좋지 않았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지길 바라며 서비스를 제공할 때 그 가치를 회원님들이 먼저 알아봐 주시고 그 가치를 높게 사주셨다. 가치는 제공하는 사람이 매기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매기는 것이라는 것을 늘 상기하며 퍼스널 트레이닝을 해왔다.

 불행 중 다행히도 나는 나만 책임지면 되는 입장이다. 허리띠를 졸라매면 이주 간의 경제활동 중단은 어찌어찌 잘 넘길 수 있다. 덕분에 생각과 선택에 있어서 그렇지 않은 분들보다 상대적으로 유연할 수 있다. '지금 현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시작했고 내 인생에 있어 경제활동만큼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가족


 당분간 비우게 될 서울 자취방을 말끔히 청소하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건 곳은 아무 거리낌 없이 내려가 쉴 수 있는 곳, 엄마 집이었고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내가 어떻건 아무렴 상관없는 분, 엄마였다.


 "나 백수 됐어~"


 "그래 내려와서 쉬어."


 간단한 전화를 마무리로 '퍼스널 트레이너'로서의 송재영은 잠시 무대를 내려오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송재영이 무대에 올랐다. 깨어있는 시간이 16시간이라면 12시간 정도는 피티 샵에서 '트레이너'로 일을 한다. 회원님들의 신체적 기능 증진을 위해서 힘 쏟으며 열심히 연기한다. 이것이 평상시의 '나'이고 나의 대부분은 '트레이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가끔은 자취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아들' 송재영, '형' 송재영, '남자 친구' 송재영, '그냥' 송재영 등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잠을 청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 생각나는 것은 '일'과 '돈'보다는 '사랑'과 '사람'일 것임을 머릿속으론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대하던 가족과의 시간이 실재했지만 사실 특별할 것이라곤 없었다. 아침부터 요란한 주방 소리에 원치 않는 기상을 하고 동시에 차려진 밥을 먹은 다음,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엄마와도 이야기를 나눈다. 혼자 심심해하다가 낮잠도 자고 노트북으로 영상 편집도 하고 글도 쓰고 친구들이랑 수다도 떨었다. 그런데 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불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매순간을 만족하고 있었다.

 감정의 가짓수가 적어지고 있는 할머니에게도, 10년 넘게 운영하던 노래방을 뒤로하고 나와 함께 백수가 된 엄마에게도, 1km도 가지 못해 나무 그늘 밑에서 주저앉는 반려견 두리에게도, 그리고 백수가 된 트레이너인,이상을 동경하며 괴로움 속에 사는, 나에게도 마지막 순간에 이 순간들은 기억될 것이다. 

 이런 순간들로 삶을 채워 나가며 마지막엔 꼭 후회의 눈물보다 감사함과 아쉬움의 눈물을 더 흘리리라.


일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과 사람




놓치고 있던 주변의 아름다움


 지난주 우리나라 남부를 할퀴고 간 태풍은 북상하며 그 자취를 감추며 언제 그랬냐는 듯 오히려 서울을 간지럽혔다. 말끔해진 하늘이 보였고 뭉게구름이 빠르게 흘러갔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바람은 시원했다. 누군 슬퍼할 때 나는 설렜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챙겨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나갔다. 나는 강제 백수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일과 중인 시간의 한강은 다행히도 한적했다. 20km 남짓한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오갔다. 

한강의 윤슬

 햇볕에 비추는 윤슬이 가장 먼저 반겨주었다.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구름이 해를 가리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비추는 윤슬에 감탄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지나친 능소화가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찰나였지만 어두운 진녹색 풀벽은 밤하늘 같았고 그 안에 덩그러니 놓인 주황빛 능소화 한 송이는 달과 같이 밝았다. 하늘색 바람은 박하사탕같이 시원했고 민물 내음과 풀내음은 일상으로부터 나를 완벽하게 분리해주었다. 나는 여유가 있었고 보이는 모든 것들은 아름다웠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모든 순간을 충만하게 느끼고 담고 싶은 욕심이 났다. 덕분에 1시간이면 될 거리를 곱절이나 걸렸다. 시간에 강박이 있는 나이지만, 계획되지 않은 할증이 이번만큼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생소함이 주는 아름다움과 충만함


 분명 오후의 윤슬과 능소화는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객관적인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럼에도 유난히 감동한 그 이유는 일상적이지 않음에서 오는 생소함이 더해져서이지 않을까? 만약 같은 루트를 매일 같이 훈련을 목적으로 반복한다면 처음 느낀 아름다움과 벅참은 금세 시들어버릴 것이다. 자유에서 파생하는 생소한 아름다움은 관성에서 파생되는 안정으로 인해 옅어진다. 이내 시야는 좁아지고 가야 할 길만 보인다. 그렇다면 안정적인 일상 속에서도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일상을 뒤돌아 보니 역시 내 주변에도 아름다움은 늘 존재했다.

 윤슬만큼 아름다운 근슬(물결에 일렁이는 햇살처럼 운동 중에 일어나는 근육의 경련을 아름답게 표현한 단어), 구슬 같은 땀방울, 수업에 집중해주시는 회원님들의 눈망울, 창가로 보이는 계절, 퇴근길 터널 위에 걸쳐 있는 달, 출근길 맞이하는 서리풀숲 등 생각보다 많은 아름다움이 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관성에 젖어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나였을 뿐.


출근길
윤슬만큼 아름다운 근슬은 신체가 움직일 때 몸 안에서 일렁입니다.




휴가의 의미


 일의 연장선 속에 있던 내게 이 원치 않는 방학은 몇 가지 선물을 주었다. 첫 번째로 일상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알려주었고 그것들은 내 마음에서 비롯한다는 점과 두 번째로 일과 삶, 관성과 자유에서의 적절한 조율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일의 연속에 놓여 있었으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것들을 휴가 덕분에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것이 이번 방학이 내게 주는 의미이다. 

 코로나는 쉽게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언제든지 원치 않는 방학이 찾아올 수 있다. 반복될수록 더욱 씩씩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것이다. 사회를 거리 둘 땐 다른 소중한 것들을 가까이할 것이다. 고민하고 나만의 길을 찾아 확신을 갖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야지. 그렇게 나의 길을 걷다 보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길들도 열릴 것이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땐 조금은 쉬며 생소함으로 환기시키며 주변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아야지. 의미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까!


 일주일이었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이번 주까지 연장되며 이주나 쉬고 있어 코로나 일기를 한편 더 연재할까 하다 더 할 말이 없다고 판단되어 이번 시리즈는 이 편으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아등바등 거리는 모습을 궁금해할 사람도 없을 것 같고요. 함께 고통을 받고 계시는 전국의 트레이너 선생님들을 비롯한 자영업자분들 위해 상황이 나아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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