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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Sep 24. 2020

감정 줄다리기 : 운동과 코로나 사이 (상)

슬기롭게 운동하기 : 코로나 시대에 현명한 정신 건강 관리 방법 (상)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운동은 신체를 단련시키는 행위이지만 운동을 하다 보면 기분전환이 되고 뿌듯함과 자존감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종종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정신 건강을 증진시키거나 유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운동이 그들의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시켜줄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운동은 그들의 삶을 너무 팽팽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여기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그 긴장이 요동치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O

 58세 여성인 O는 피티 스튜디오에서 퍼스널 트레이닝을 시작한 지 3년이 다 되어 간다. 운동의 시작은 우울증이었다. 명문대 석사까지 나온 그녀는 자의 반, 타의 반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그녀의 커리어를 깔끔히 접어 던지고 가사와 육아 속에서 새 행복을 찾아 나섰다. 삶은 평탄했고 두 아들 역시 평탄한 삶을 이어 나가며 그녀는 제 할 도리를 다 했다 생각하며 내심 뿌듯해했다. 그러다 3년 전, 막내아들이 취직과 함께 출가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텅 빈 자식들의 방을 보며 뿌듯함과 동시에 복잡스러운 감정이 동요했고, 그 이후부터 밤에 잠을 잘 못 자며 해야 할 일들을 곧잘 까먹기도 하며 평상시와 다름을 느꼈다. '이제 나이가 드는구나'하며 자연스레 넘긴 것이 화근이었는지, 날이 갈수록 불안함과 초조함이 커져만 갔고 무엇 하나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태까지 이르렀다.' 혹시 노인성 치매가 벌써 왔나'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방문한 신경정신과에서는 뜻밖의 진단을 내렸다. 그게 바로 우울증이었다. 진단과 함께 처방된 약을 복용하기 시작함으로써 O는 본인의 상태를 인지하고 언제든지 본인을 덮칠 수 있는 우울증이라는 심해를 마주하여 바로 보기 시작했다. 기분전환과 우울증 치료를 위해 일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운동이다. 그렇게 시작된 퍼스널 트레이닝은 숨쉬기와 걷기부터 시작해서 어느덧 중강도의 유산소 운동과 작은 덤벨을 이용한 근력 운동까지 해낼 수 되었다. 심장과 근육이 요동칠수록 그녀의 심해는 잔잔한 윤슬로 가득 차 평온하게 유지되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규칙적이던 O의 루틴이 깨져버렸다. 확진자가 늘며 심각해지면 나 역시 코로나에 걸리면 어쩌나 싶기도 하면서 외부활동을 망설이게 만들었고 피티 스튜디오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의 심각성에 따라 문을 닫기도 열기도 하며 불안정한 운영을 하게 되었다. 운동하는 것은 좋지만 나이도 나이인지라 부상의 위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수동적으로 운동을 해왔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고 더불어 그녀의 마음속엔 불안이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B

 62세 남성 B는 얼마 전 은퇴했다. 진취적으로 의사결정을 해 나가야 할 자리에 위치한 그가 회사에 있어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되지 않아서이다. 그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예전과 같이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하기 어렵다는 것을 드디어 인정했다. 고혈압과 당뇨는 달고 산지 오래고 '남산 같은 아랫배는 덕의 상징이다'라고 변명하기 지쳤다. 연일 갖는 술자리는 이젠 고역이고 등산을 가면 늘 후미를 지킨다.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이따금 깜빡하는 경우가 잦아지며 그럴 때일수록 주변에 되려 호통치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바탕 한 날에는 잠자리에 누워 알츠하이머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며 불안감에 잠을 청하기도 했다. 많은 고민 끝에 60살을 기점으로 정열적이고 유능한 후배들에게 바통을 넘겨줌과 동시에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남은 인생을 잘 활용하기 위해선 건강을 챙기지 않을 수 없다. 갖고 있는 고혈압과 고지혈증, 그리고 알츠하이머를 예방하기 위한 인지 기능 유지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결정한 에어로빅. 음악과 함께 즐겁게 유산소 효과를 누릴 수 있으며 동작을 하나하나 습득하고 리듬에 맞춰 몸을 조율하는 에어로빅이야 말로 운동을 시작하는 그에게야 말로 최적화된 운동이었다. 당장 주민센터 스포츠교실에 찾아가 앞뒤 보지 않고 에어로빅 클래스를 등록했고 첫날 가보니, 20명의 정원 중 남자는 B를 포함해서 총 4명이었다. 모두 비슷한 이유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가장 뒤 쪽 구석에서 수줍게 수업을 시작한다. 처음 갔을 때 수줍음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래가 교실을 가득 채우면 비트에 따라 심장도 요동치기 시작한다. 보통 에어로빅 음악들은 중강도 운동을 할 때의 심박수와 비슷한 리듬을 갖는다. 동작은 어설퍼도 땀은 비가 오듯 흐르고 숨은 가빠왔다.

 '아, 내 생에 이렇게 살아있음을 느꼈던 순간이 언제였는가!' B는 감탄했고 그렇게 에어로빅은 그의 인생에 있어 변곡점이 되었다. 운동을 한 것이 아까워 식사도 조심하게 되었다. 함께 클래스를 들으며 친해진 동료 아주머니가 DASH(Dietary Approaches to Stop Hypertension) 식단을 추천해주었다. 흰쌀밥을 현미밥으로 바꾸고 저지방 요구르트, 채소와 과일 섭취를 늘리고 포화지방과 염분 섭취를 줄이는 식단이란다. 식사를 바꾸고 일주일에 3회 에어로빅 클래스를 들으며 혈압약도 꾸준히 복용하였다. 그 결과 알츠하이머와 심혈관 질환의 원인 고지혈증과 고혈압 수치가 위험 수준에서 경계 수준까지 좋아졌다. 얼마 전엔 스트레스가 적은 소일거리도 구해 파트타임으로 용돈까지 벌며 자기 만족감이 충만한 60대를 맞이하였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이전까지 말이다.

 올해 초 시작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실내에서 하는 단체 운동이 모두 금지된 상태이다. 1년 여 간 함께 땀 흘리던 동료들과도 강제로 작별을 고하고 활동량도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운동이라는 트리거가 없어지니 식사와 활동량 유지에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기 시작한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더욱 힘없이 늘어지기 시작하는 것만 같다.



S

  S는 18세 여성으로 고등부 소속의 엘리트 육상 선수이다. 엘리트 운동선수도 일반 학생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2학년 때쯤 본인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보통 실업팀이라 불리는 프로 스포츠 선수로 바로 직행하거나 대학부에 소속되어 학업과 운동을 동시에 병행하기도 한다. 상황이 어떻건 간에 진로에 있어 대회 입상 내역과 개인 기록은 일반 학생의 수능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이다. S는 어릴 적부터 운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여 앞으로의 진로를 더욱 다양하게 고민하고 싶어 했다. 미래에 대해 진취적인 그녀는 목표가 확실하였기에 훈련에도 성실히 임하며 자기 관리에 철저하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춘계 육상대회가 전격 취소되었다. 뿐만 아니라 추계 대회 역시 어떻게 될지 미지수이다. 그녀에겐 입시가 2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지금 커리어로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S가 비시즌 동안 이용하던 트레이닝 센터 역시 코로나로 인해 운영상의 문제로 최소 2달간 문을 닫게 되었다. 선수에게 있어 비시즌 트레이닝은 다음 시즌을 잘 수행하기 위해 너무도 중요한 기간이다. 그렇게 트랙과 트레이닝 센터를 떠나게 된 그녀. 18년 동안 잘 짜맞춰오던 그녀의 퍼즐이 순식간에 흐뜨러졌다. 계획적이었던 것 만큼 혼란은 크게 다가오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번화가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다고 그녀는 일기장에 기록했다.



H

 33세 남성 H 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잠에서 깼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종종 꿈에서 그 순간이 생생하게 재생이 된다. H는 6개월 전 업무 중 사고를 당했다. 가스 누출 사고였는데 다행히도 인근 사고 현장에 근처에 있었기에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사고사를 당한 동료 A와 사고 현장을 최초로 목격하였다. 물론 H 역시 사고로 인해 경미한 부상을 당해 치료를 받았는데 H에게 온 부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죽은 A와 H는 돈독한 사이였다. 함께 기숙사를 사용하는 사이였고 타지에서 왔다는 공통점 때문에 서로 의지하며 유독 가깝게 지낸 H였다. H는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책하며 죄책감에 빠졌다. 사고 현장 근처만 가도 그날이 떠오르며 식은땀이 흐르고 호흡이 가빠졌고 몸은 뻣뻣해졌다. 자리를 벗어나고만 싶은 마음이 생겨 도저히 업무를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올무가 되어 버린 현장에서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도무지 무엇을 해야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잠은 오지 않고 A를 향한 죄책감에 우울했다. 달라진 본인의 상태를 부정할수록 H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만 같았다. 증상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병원에 진단을 받아보니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한다. 진단을 받고 난 다음 H는 한 달간 휴직서를 내고 치료와 회복을 병행한 뒤 H가 업무에 복귀한지 어느덧 4개월이다.

 유난히 성실했던 H였기 때문에 회사 측에서도 배려를 많이 해주었으며 함께 일하는 동료들 역시 그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었다. 그중 비슷한 또래인 동료들은 H의 빠른 쾌유를 위해 사내 풋살 동아리를 만들어 업무 후에도 H와 함께 시립 풋살장에 찾아가 함께 땀 흘리며 그의 회복을 바랐다. 사회적 유대감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는 데 있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에 흔쾌히 그의 동료이자 친구들은 그를 위해 시간을 내었다. 동료들과 각자의 역할을 맡아 땀 흘리는 동안은 고통스러운 생각에서 자유로웠고 운동 후 가끔 나누는 대화 속에서 H는 서서히 아픔을 마주하고 넘어설 준비를 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가 악화되며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하며 공공시설에서 운영하는 체육시설들이 모두 잠정 폐쇄를 하게 되었다. 근무하는 일수도 줄어들고 운동을 통해 키워오던 사회적 유대감이 끊어지며 걱정이 많아지는 H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운동을 통해 각자의 정신 건강을 잘 지켜오던 이들, 코로나로 그들의 삶이 위태해졌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 그들이 그들의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시도한 노력들은 (하)편에서 계속 된다.


*(하)편 : https://brunch.co.kr/@thinkontrainer/25


**이 글은 ACSM(Americal College of Sports Medicine)에 게재된 Exercise-related Mental Health Problems and Solution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이라는 논문을 참고하여 각색한 글이며, 등장인물은 모두 실존인물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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