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지민 / 포토그래퍼 누비
* 홍시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저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플랜을 여러 개 짜거든요. 플랜 a도 있고, b도 있고, c도 있고, d도 있고 이런 식이에요. 근데 최근에 이 선택지들이 결국 다 연결되는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건 세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거더라고요. 그걸 비즈니스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창업이나 취업을 해서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 되면 되고, 법정에서 해결하고자 한다면 로스쿨을 갈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how의 문제인 거지, why는 똑같은 것 같아요. 이 생각을 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어떤 일을 하든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 해결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완전히 다른 분야의 일들이에요. 프랑스어 공부, 소프트웨어 수업 그리고 오랜지 팀의 활동까지 세 가지 분야인데, 이 분야들이 연결된다고 느낄 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얼마 전 교수님이 수업에서 프로그램을 만들 때 무작정 만드는 게 아니라, 추구해야 되는 기준점을 세워야 좋은 프로그램이 나온다고 말씀하셨어요. 오랜지 팀에서도 새로운 프로토타입 실험할 때 얻고 싶은 게 무엇인지 기준을 정해야 실험이 더 잘되었던 기억이 나면서 짜릿함이 느껴지는 거 있죠.
낙관적으로 살려고 해요. 최대한 스트레스 받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원래 좀 예민하고 민감한 편이에요. 어렸을 땐 지금보다 훨씬 심했는데 나이 들어가며 사람도 많이 만나고 세상에도 부딪히면서 점점 무뎌지고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계획하고 통제하는 성향이 있는데 내려놓으려고 노력해요. 제 계획과 준비가 안 먹히는 환경으로 일부러 가는 거예요. 요즘에 하고 있는 창업에서 예상 밖의 일들이 매일 일어나요. 원래 하던 거, 잘했고 잘하는 거, 이런 거 말고 0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게 좋아요. 연극도, 소프트웨어 복수 전공도 그런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제가 하는 선택들이 다 그런 것 같아요. 그동안 계속 해오던 건 이상하게 안 끌려요. 제가 못하는 거, 안 해본 걸 잘 하는 사람이 멋지다고 느끼나봐요.
재밌고 멋있어 보여서 원어 연극도 시작하게 되었어요. 재미로 시작해서 책임감으로 완성했던 것 같아요.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는 마음으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또 재밌어지고, 그걸 마무리하고 나면 너무 행복하고 그랬어요.
기획이 하는 일은 딱 두 가지예요. 돈 모으고 돈 쓰고, 사람 모으고 사람 쓰고. 그래서 돈 없을 때 힘들고 사람 없을 때 힘들었어요. 처음에 카카오뱅크 모임통장 개설하면 0원에서 시작하는데, 후원금을 어떻게 모을까 고민하게 되는 거죠. 후원금을 못 모으면 무대를 못 올리게 될 수도 있는 거고, 소품과 의상 퀄리티가 낮아질 수도 있는 거고, 팀원들이 사비로 밥을 사먹어야 할 수도 있고요. 그런 상황들을 상상하다 보면 진짜 돈 없어서 밤에 잠이 안 왔던 적도 있어요. 선배님들께 안부 인사 드리며 후원금을 모았던 적도 있고, 대사관 등 프랑스 관련 기관과 연락해서 펀딩을 받은 적도 있어요. 이 모든 걸 처음 해봐서 다 새로웠고 많이 성장했던 것 같아요. 사람을 거치는 것 중 뭐 하나 뚝딱 되는 게 없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고등학생 때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의 기다리며>를 읽었어요. 그냥 실존주의가 되게 마음에 와닿았어요. 아까 세상에 나를 던진다는 말을 했는데, 실존주의에서도 인간은 원래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 얘기하잖아요. 본질 없이 우선 실존부터 하는 존재니까 내가 선택하는 행위들이 그 선택 자체로 가치가 있는 거고, 그러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이게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 제 욕구랑 딱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며 프랑스 철학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어요. 막상 전공 진입하고 나서 그런 걸 배우지는 않았지만... 인간에 대해 배운다는 점이 재밌어요.
문학, 인간, 문화 다 너무 좋아요. 그렇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더라고요. 연극은 너무 아름답고, 비평문을 읽을 때면 황홀해요. 그런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정도로까지 소질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꿈은 꿈으로 남겨두자는 생각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 정보시간에 처음 코딩을 배웠어요. 그런데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저는 간신히 출력하고 있을 때 옆에서 친구들은 앱을 만들어 오고, 성적도 좋지 않았고요. 그래서 이거는 글렀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글렀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냥 내 속도대로 가보자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대학교에 가서 복수전공을 하면 된다, 공부를 하면서도 모든 과목에서 B+만 받자, 그런 생각으로 복수전공도 시작했고 지금 완전 만족해요.
인터뷰어 지민 / 포토그래퍼 누비
2024.03.20 홍시 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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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