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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May 08. 2024

무모함이 주는 낭만

인터뷰어 아소, 또트 / 포토그래퍼 달래


* 연주 과의 인터뷰입니다.






기억에 남는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있나요?


    정동진으로 혼자 여행을 갔다가 집에 돌아오려던 참이었어요. 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안 오는 거예요. 그때 지나가던 한 행인 분께서 버스가 끊겼다고 알려주셨어요. 기차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때라 너무 초조했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그분께서 타고 있던 오토바이 뒷자리에 저를 태워 주셨어요. 설마 했는데, 그대로 바닷가를 달려서 앞서 가던 버스를 따라잡아 주시는 거예요. 문득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스쳐간 정동진의 바다는 눈부셨고, 이름 모를 행인 분의 호의가 따뜻했고, 비일상적인 상황이 주는 고양감이 신선했거든요. 그때부터 예상치 못한 것들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일 뒤에는 항상 재밌는 추억이 따라와요.






연출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무대의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 연출 전공을 하기 전까지는 무대가 대본과 배우들만으로 이미 완성돼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본과 배우가 같아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느낌의 공연들이 만들어지더라고요. 사람들이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사소한 부분들이 모여 풍부한 무대가 만들어진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연출을 전공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해 본 것 같아요. 배우나 연출 스태프들과 소통할 일이 많아지면서, 그들에게 각각 다른 방법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함께 만드는 무대인 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같은 연출 전공 친구들에게는 서로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조율해서 공연에 녹여낼지, 연기 전공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원활하게 디렉팅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연기 수업도 배우고 있어요. 연출만 배워서는 배우들의 입장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삶에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면.


    중학교 2학년 때요. 그전까지는 소위 말하는 모범생이었어요. 부모님께는 좋은 딸, 선생님들께는 똑똑하고 말 잘 듣는 학생. 그렇게 예쁨 받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러다 집 근처 전시관에서 큐레이터 봉사활동을 모집하는 걸 보게 됐어요. 그 당시 꿈이 전시회 큐레이터였거든요. 무언가가 마음에 날아와 꽂힌다는 기분을 그때 알게 됐어요. 문제는 그게 하루 종일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 참가하려면 학교를 빠질 수밖에 없었어요. 부모님께 여쭤보니 당연히 절대 안 된다고 하셨죠. 그날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도저히 잠이 안 오더라고요. ‘지금 이걸 안 하면 너무 후회할 것 같다.’ 싶어서. 살면서 그렇게 간절하게 뭘 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거든요. 그날 저녁에 부모님께 편지를 썼어요. 제가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그동안 남몰래 노트에 적어왔던 글과 함께요. 진심이 닿았는지 부모님께서 결국 허락해 주셨고, 난생처음으로 학교 대신 전시관으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죠.


    그때는 정말이지. (웃음) 새로운 세상을 맛본 기분? 저를 가두고 있던 틀이 깨지는 느낌이었어요. 그 일을 기점으로 점점 색다른 경험에 도전하기 시작했죠. 중학교 3학년 때는 안동으로 혼자 여행을 가서, 모르는 사람과 한나절을 사진 메이트로 동행한 적도 있어요. 또 같은 해 방학 때는, 재단이나 지자체에서 학생들 대상으로 하는 캠프 있잖아요. 코딩 캠프, 영화 캠프 이런 것들. 그런 캠프 다섯 개를 순회하느라 2주 동안 집에 안 들어간 적도 있었고. 대학생이 된 지금은 관심 있는 공모전이랑 대외활동을 한꺼번에 몇 개씩 지원하기도 하고요. 워낙 많은 일에 흥미를 갖고 진심으로 임하다 보니, 지인들은 가끔 제가 수명 깎아서 살아가는 것 같다고 할 때도 있지만요. (웃음) 그래도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제 세계를 넓히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제 모습을 좋아하게 됐어요.


그렇게 바뀐 연주님의 삶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꼽자면.


    중학교 3학년, 그러니까 막 새로운 사람과 경험을 찾아다니는 데 눈뜬 시점의 일인데요. 방학 때 다양한 활동을 전전하다가, 개학을 해서 학교로 돌아오니까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수업이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오고. 그래서 저처럼 학교 생활이 따분해 보이는 친구들을 열 명 정도 모았어요. ‘예비 자퇴생 모임’이라는 이름으로요. 지루한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해 줄 이상한 짓을 매일매일 찾아다녔죠. 하루는 다 같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등교한 적이 있었어요. 당연히 이목이 확 쏠렸죠. 교실에 도착해서는 구석에 숨어 있었는데 방송이 울리더라고요. ‘오늘 스케이트 타고 온 학생들 교무실로 오세요.’ 하고요. 당연히 혼나겠구나, 생각하면서 교무실로 갔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위험하니까 이런 걸 하고 싶으면 연습하는 증거 영상을 보내라. 안전하게 탈 수 있게 되면 허락해 주겠다.’ 심심해서 그러는 거면 그냥 교무실 올라와서 같이 빙수나 시켜 먹자고도 덧붙이셨죠.


    지금 돌이켜보면 철없어 보이는 일탈도 존중해 주신 좋은 선생님들, 유쾌하게 받아들여준 친구들이 있어서 좋은 추억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 후로도 학교에 토스트기 가져와서 친구들한테 구운 토스트 나눠 주고, 운동장에 돗자리 깔고 과일 먹으면서 피크닉 하고 놀았거든요. 매일 이번엔 뭘 할까 고민하던 그 기억들이 생생하고 또 소중해요.






외로움을 느낄 때는 어떻게 극복하는 편인가요?


    원래는 무조건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무서웠거든요. 근데 그럴 때 있잖아요. 외로움을 느껴서 사람들을 만나는데, 사람들이랑 같이 있으면 다시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상황. 그런 딜레마 속에서도 자꾸 사람을 찾아 일정을 채우려는 제 모습이 요즘 들어 조금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는 혼자라도 괜찮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어요. 개강하고 두 달 정도 폴더폰을 쓰는 중인데요. 카톡도 안 되는 옛날 거라서 MP3 같이 들고 다니면서 노래 듣고, 종이 다이어리로 일정 적고 그래요. SNS나 연락을 줄이니까 확실히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강박이 줄어들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아이디어나 미래에 대해 사색할 시간도 많아져서 좋고. 낭만까지 챙기니 얻는 게 참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여태 늘 그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제 가치관이 있어요. ‘후회 없이 오늘 다 하자.’ 최근에 좋은 직장에 취직한 선배를 만났거든요. 취직하고 보니 학생 때만 할 수 있는 일탈들이 그렇게 그립대요. 친구들과 공부하는 척 모였다가, 대화하고 당구 치느라 밤새 놀던 소소한 추억들. 온전히 자기 의지대로 즐거울 수 있었던 그 순간들이 참 행복했다고. 본인이 앞으로 남은 삶을 살면서, 그때만큼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싶다고요.


    그래서 저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최대한 즐기고 싶어요. 무모함이 주는 낭만이 있잖아요. 나중에 ‘이거 해볼 걸, 저거 해볼 걸’ 하는 후회 없이, 깔끔하게 ‘재밌었다!’ 하고 회고할 수 있도록. 남들 눈에는 터무니없어 보인다고 해도, 결과가 좋지 않아도, 뭔가를 해봤다는 사실과 거기 따라오는 추억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인터뷰어 아소, 또트 / 포토그래퍼 달래

2024.05.01 연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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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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