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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May 15. 2024

그냥 나 하나 구하자고

인터뷰어 지은, 현수 / 포토그래퍼 조아


* 유리 과의 인터뷰입니다.





    

그동안 휴스꾸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어?


    원래 인터뷰를 엄청 좋아했어. 인터뷰집도 많이 읽었지. 그런데 학내 인터뷰 동아리가 있다는 거야. 원래 좋아하는 거는 좋아하는 걸로 둬야 된다고 하잖아. 근데 내가 밥벌이로 인터뷰를 한 게 아니라서 그런지, 휴스꾸는 나의 시간과 품을 들이는 일인데도 좋았어. 좋아하는 걸 실제로 하면 더 좋다는 걸 느끼는 시간이었지. 인터뷰 편집하는 게 품이 많이 드는 일인데도 정말로 힘들진 않았어. 

    난 늘 사람을 궁금해했어. 지하철을 기다리며 앉아 있어도 옆에 있는 사람이 궁금하고 말 걸고 싶은 거야. "어디서 오셨어요?", "어디로 가세요?" 이런 걸 막연히 소설처럼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 해볼 수 없지만. 그런데 휴스꾸에서도 궁금한 마음이 있다고 해서 이것저것 다 물어볼 수는 없잖아. 인터뷰에도 정해진 시간이 있고, 인터뷰이를 고려해야 되기도 하고. 내 궁금한 마음은 유지하되 여기서 좋은 질문을 만들고 골라내는 시간을 휴스꾸에서 보낸 것 같아. 


    인터뷰이에게 필요한 질문을 하고 싶었어. 인터뷰이의 마음을 한 움큼 떠낼 수 있는 질문. 그럼 인터뷰이에게도 이 시간이 좋게 귀하게 느껴질 것 같았어.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현장에서 그 사람과의 호흡을 엄청 신경 써야 돼. 모르는 사람이랑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언제 오겠어.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어. 



    휴스꾸의 모토가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잖아. 인터뷰를 준비하고 실행하고 편집하는 모든 과정에서 그게 느껴졌어. 한 사람은 각자 하나의 역사라는 게 크게 느껴져서 절대 섣불리 누군가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도 배웠어. 그러니까 우린 대화를 멈추지 말아야 된다는 것도. 휴스꾸를 하면서 내가 지치지 않고 물어볼 수 있는, 궁금해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 그러려면 내가 지치지 않고 되게 건강해야 돼. 







    고등학생 때까지는 내가 의도하는 내 모습을 연기할 수 있었어. 성격 좋은 나, 모두와 잘 어울리는 나, 이런 게 됐어. 머릿속에서 큐 하면 나를 멀리서 보는 것처럼 볼 수 있었어. 그리고 남들도 내가 예상한 바랑 거의 비슷하게 나에게 반응을 했어. 그런데 대학교에 와서는 그게 연기가 안 되기 시작하는 거야. 

    ‘이게 안 되네’ 싶다가, '모르겠다!' 하고 연기 없이 살았는데 그렇게 내 모습을 보여도 친구들은 생기잖아. 그래서 '연기하고 살지 말아야겠다'가 아니라 안 되니까 못하다 보니 남들 눈에 ‘내가 이렇게 비쳐야겠다’는 생각을 딱히 안 하기 시작한 것 같아. 그냥 자연스럽게 없어졌어. 못 하니까. (웃음)


    그러니까, 생각보다 너무 멋대로 살고 있나 봐. 나이가 들수록 결국엔 내 고집대로 하게 돼. 예전에는 주위에, 상황에 휩쓸려서 마음에 안 드는 선택을 많이 했어. 그런데 지금은 누가 뭐라고 하면 “그렇게 해봐야겠다” 말만 하고 그냥 뒤에서 내 것 해.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냥 해. 막 “나 열심히 살 거야” 하는 마음으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나도 모르는 새 내가 그러고 있어. 남들의 말을 듣고 나를 꾸며낼 체력도 없는 것 같아. 내 체력으로 할 수 있는 건 내 고집까지가 다야.





  꿈 이야기는 두 개로 갈리는 것 같아.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걸로 두고, 돈은 다른 일로 벌어라”, 아니면 “좋아하는 걸 일로 삼으면 돈이나 명예는 몰라도 너 하나는 구할 수 있다”. 이성은 전자인데 내 마음이나 감각은 다 후자로 가. 나는 그냥 나 하나를 구하고 싶은 것 같아. 남의 시선에 못 미치더라도 좋아하는 걸 해야 숨 쉬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어서 원하지 않는 길로 갔다가 실패하게 되면 내가 너무 쪼그라들 것 같았어. 그 어느 때도 내가 떳떳하려면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갖고 있는 게 남의 생각인지 내 생각인지를 구분하는 게 진짜 쉽지 않아.



    다음 스텝을 잘 밟고 싶어.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남들의 시선에 잘 휩쓸리거든. 남들 말에 갑자기 조급해져서 이상한 선택을 하기도 해. 그런 횟수가 너무 많아서 이제는 잘못될 것 같은 그 느낌을 경험치로 알아. 어차피 자기 인생은 자기밖에 책임을 못 지잖아.

    취직처럼 거창한  아니더라도 내가 만족할 만한 나의 선택을 하고 싶은데이게 분간하기가 되게 어려워이게 진짜  선택인지 아니면 상황에 휩쓸린 건지. ‘나를 속이려는 나’와 ‘맑고 또렷한 나’를 잘 알아봐야 해. 정신 똑바로 차려야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야. 그래서 지금은 이것저것 가려내는 시간 중에 있어이제는 진짜 나의 생각과 감정을 따라서 조금씩 뭔가를 해보려고 







    지금은 예전부터 너무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해보고 있어. 아마 주위에서 들으면 “그래서 네가 뭐가 될 건데? 그게 직업이 될 수 있어?” 그럴 거야. 그런데 여기서 졸아서 안 했다간 또 남 탓만 할 것 같았어. 나도 이럴 때가 아닌 것 같고, 대책 없다는 생각은 해. 그래도 내 가장 진실한 목소리는 지금의 즐거움이 가장 크다고 말하니까.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배워보고 있어. 

항상 불안하긴 했지만, 안 불안할 수는 없는 것 같아. 정해진 길로 가도 불안할 거야. 





    뭐든 조그마한 비석 같은 게 마음속에 서 있다고 생각해. 작더라도 단단하게 어떤 마음의 지표를 가지고 있어야 돼. 근데 걔가 막 수풀에 가려지고 안개에 덮이고 그러거든. 잘 찾아서 봐야 해. 뭔가 이리저리 휩쓸릴 때마다 그래도 마음속에 비석이 단단하게 서있다고 생각하면 좀 괜찮아져. 

    사실 걱정이지. 찾은 걸로 그다음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냥 찾기만 해. 애써 찾고 나면 지쳐서 뭘 못 하고, 그러는 동안 다시 비석이 사라져. 그럼 다시 찾아야 하잖아. 이제는 찾은 다음의 스텝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아. 







   내 대학 생활은 내 아픈 곳을 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먼저 아프게 헤집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누가 날 떠밀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머리를 잡고 물가에 집어넣으면서 고통을 자초했었어. 이제 그런 건강하지 않은 방식이랑은 안녕하고 싶어. 차라리 힘들 때는 초콜릿을 먹는 게 좋겠다. 초콜릿을 더 많이 먹는 방식으로.




 

  계절을 제대로 본 게 올해가 처음이었거든. 특히 학교 다닐 때 봄이라는 계절은 항상 학기의 시작이거나 중간고사니까 제대로 즐긴 적이 없단 말이야. 사람 많은 걸 안 좋아해서 꽃놀이도 안 즐겼고. 그런데 이제 학기 걱정 없이 봄이 오니까 벚꽃이 너무 예쁜 거야. 벚꽃이 이렇게 많이 있고, 그걸 즐기는 사람도 엄청 많다는 걸 알게 됐어. 그래서 이런 계절을 좀 더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꽃이 피고, 초록이 돋아나는 걸 모르던 시절이랑은 안녕하고 싶어. 






인터뷰어 지은, 현수 / 포토그래퍼 조아

2024.05.06 유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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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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