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스꾸 Jul 10. 2024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인터뷰어 오늘 / 포토그래퍼 또트



* 영상학과 문성환 교수과의 인터뷰입니다.






요즘 일상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작년 8월부터 작업했던 드라마가 지난 3월에 끝나고, 그 후 두 달 동안 AFI* 선배 에디터께서 작업하는 미국 드라마 작업을 도왔습니다. 그게 끝난 게 5월 중순 경이었으니 그 후에 한 달 정도는 강의만 하면서 다소 여유 있게 보냈습니다. 이젠 학교도 방학이니 강의도 없네요.


*AFI: 미국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쉬는 것도 잘 쉴 줄 알아야 한다고 그러잖아요. 나는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쉴 때는 보통 집에 있거나, 카페에 가서 앉아 있거나, 안 만나던 사람들을 만나거나 해요. 혼자 여행을 가거나 하는 특별한 일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전 별로 재미없게 사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퇴근 후에 딱히 달리 하는 게 없거든요. 남들은 힐링 타임이라며 자기를 위한 시간을 갖거나 하는데 전 잘 모르겠어요.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들과 함께 있게 되는데, 제가 마루에 누워있으면 초3인 둘째가 제 위에 올라와 뒹굴뒹굴하고, 중2인 첫째가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릴 때가 간혹 있습니다. 이때가 가장 행복하고, 이게 아마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힐링 타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애들이 잠들고 나면 넷플릭스 등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한두 편 보곤 합니다. 아, EPL* 시즌 기간엔 주말이면 밤에 축구를 봅니다. 알라딘에 들어가서 읽고 싶은 책을 일단 장바구니에 잔뜩 담아놓는 것도 즐거워요.


*EPL: 프리미어 리그(English Premier League)






법학과를 나오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편집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법대를 2년 다니다가 그만뒀어요. 학교 성적으로만 대학을 가던 시절이라서 뭘 공부하겠다, 대학에 가서 뭘 전공하겠다, 전공한 다음에는 뭐가 되겠다, 그런 게 별로 없었어요. 내가 문과였는데 마침 성적이 돼서 법대를 갔죠. 그런데 이렇게 학교를 갔으니, 재미가 있었겠어요? (재미가) 없어서 2년 동안 법대 공부는 별로 안 하고 검도부 동아리 활동만 열심히 했어요. 제대하면서 원래 영화를 보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영화 쪽으로 간 거죠.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어요. 한국에서는 영화나 관련된 것을 배운 게 전혀 없죠. 영어로 공부하는 것에는 자신이 없어서 실습을 하는 실기 위주의 조그마한 예술대를 갔어요. 처음에는 대부분 많은 영화 쪽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감독이 되겠다, 연출이 되겠다 했죠. 그런데 감독이나 연출은 뭔가 새로운 것, 없는 것을 만들어내고 그 새로운 아이디어의 최초 발상자가 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안 되는 것 같아서 연출은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실습을 하다 보니까 편집할 때 제일 재밌었어요. 그리고 현장에 있는 것보다 방에 앉아서 하는 게 성향상 더 맞아서 편집을 했죠.


 한국에서 기대했던 것과 미국에서의 현실은 어땠나요?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별로 기대라는 게 없었어요. 그냥 간 거죠, 일단. 학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에 와서 일을 하다가, 그다음에 다시 미국에 갈 때는 기대라기보다 ‘이거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데,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있었죠. 한국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예고편 쪽 일을 했었는데 미국은 그 일과 전혀 다른 분야로, 드라마/영화 본편 편집 일로 갔어요. 분야도 다르고 나라도 다르니까 당연히 경력으로 안 쳐줬죠. 한국에서는 10년의 경력이 쌓여서 위쪽, 에디터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에 와서는 다시 어시스턴트로 시작했죠. 그래서 처음에 막막한 건 있었어요. 아는 사람도 없고,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이게 과연 몇 년이 걸릴까? 하고요. 






삶의 터닝포인트가 있으신가요?


    ‘터닝포인트’라는 게 나중에 내가 돌아봤을 때 그 시점을 기준으로 앞뒤가 많이 바뀌었다는 건데, 그게 아닌 게 어디 있어요. 아닌 게 없으니까 (터닝포인트를)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모든 결정이 그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뒤돌아보면 그 전과 후를 바꾼 것들이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어떤 결정을 하고 나면 거기에 일부러 의미를 안 두려고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가 중요하죠.


결정하신 것에 대해 잘 흘려보내시는 것 같아요. 


    장단점은 있는 것 같아요. 하나에 관해서 결정하면 이미 (결정을) 했으니까 쭉 가는 편이지만, 그렇게 하다 보니 스스로 느낀 문제점이 있어요. 일이 잘 안 됐을 경우에 왜 안 됐는지 생각해 보고, 이 결정을 왜 했는지 복기를 해볼 필요가 있는데, 내가 그걸 잘 안 하는 것 같긴 해요. 이게 단점일 수는 있을 것 같지만 고쳐지지는 않네요. (웃음) 좋게 말하면 ‘한 번 결정하고 그 후회는 없다.’고 이렇게 멋지게 포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편집에는 항상 끝이 있는데, 후회가 남으신 적은 없으신가요?


    작품을 하고 나면 끝나고 처음 하루 이틀은 ‘이거 대박인데, 명작인데?’ 하다가도 3일째 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다니!’ 한단 말이죠. 한 번도 마지막까지 마음에 쏙 들 정도로 잘 됐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힘들게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결국 어느 순간에는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거니까, 그때까지만 열심히 하면 끝이 보인다는 건 편한 것 같아요.






다양한 플랫폼에 글을 쓰시고 책도 출판하셨어요.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글 쓰는 게 재밌어요. 사람들이 딱 꽂히는 게 있잖아요. 재미있어서 당시 일을 끄적이다가, 블로그에 그런 글을 올리고 책까지 쓰게 된 거죠. 법대를 그만두고 처음에는 사실 영화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당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걸 좋아했던 것이 이어진 것 같기도 하네요.


    어떤 식으로든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책으로 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계속 글을 모은 거죠. 첫 번째 책은 중간에 에세이도 있긴 하지만 워크플로우나 일 적인 것이 많아요. 우리 첫째 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빠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재미가 없는 거야.”라네요. (웃음) 그래서 두 번째 책은 재미있는 걸 써보고 싶어요. 조금 더 가벼운 책. 편집이라는 거, 편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직자로 일하시는 동시에 교수도 하고 계세요.
교수님께 가르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고등학교 때 공부해 보면 자기가 아는 걸 옆에 친구한테 가르쳐주면 정리가 더 잘 되고, 그런다잖아요. 똑같은 부분이에요. 가르치는 일을 해보고 싶었던 이유 중 첫 번째는 내가 모르는 게 있어서 창피하지 않기 위해서든지, 여러 가지 이유로 가르치기 위해 준비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나 스스로도 정리가 되는 게 있어서죠.


    두 번째는 선생님보다는 선배로서 다시 나누고 싶다는 게 더 커요. 가르치는 건 부담스럽고, 우리나라에서 교단에 서서 다 이렇게 보고 있는 그런 방식의 가르침보다는 둥글게 앉아서 조금 더 평등한 느낌, 같이 얘기하는 그런 방식이죠.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것은 가르침보다는 나누고 같이 이야기하는 것, 그것 때문에 수업 때 토론도 한 거죠. 






몇 년 후를 상상해 보셨을 때 어떨 것 같나요?
하고 싶으신 게 있으신가요?


    내 희망은 한 75세까지는 편집을 하는 건데, 대신 그때는 내가 딱 좋아하는 한두 작품 정도. 그렇게 좀 여유 있게 살고 싶어요. 은퇴해서 일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있는 것도 지겨울 것 같아요. 나이 들어서도 그때그때 좋아하는 걸 하면서 조금 더 여유 있게 살았으면 좋겠고. 아니면 외국 작품을 할 수도 있겠네요. 쉬는 건 생각을 안 해봤어요. 내가 원한다고 해서 그게 되지는 않겠지만 희망 사항이죠. 꿈은 꿀 수 있는 거니까. 


    앞으로 책을 더 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편집 일을 계속하고 싶고, 지금 하는 거를 지금보다 조금 더 잘하고 싶어요. 수준이 높아져야죠. 예를 들어서 지금 내가 일로 어떤 분야에서의 b등급에 있다고 하면 a등급으로 올라가는 거죠. 더 인정받고 잘하고 싶어요.






삶이 어떤 장르면 좋을 것 같나요?


    일단 공포만 아니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액션이나 어드벤처 말고, 따뜻하고 밝은 드라마였으면 좋겠어요. 극장에서 흥행은 별로 안 하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영화는 액션, 스릴러가 좋죠. 

근데 내 인생은 밝은 드라마였으면 좋겠어.






인터뷰어 오늘 / 포토그래퍼 또트

2024.06.28 문성환 교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휴스꾸 인스타그램

-휴스꾸 페이스북 페이지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꿈을 묻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