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오늘 / 포토그래퍼 또트
* 영상학과 문성환 교수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요즘 일상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작년 8월부터 작업했던 드라마가 지난 3월에 끝나고, 그 후 두 달 동안 AFI* 선배 에디터께서 작업하는 미국 드라마 작업을 도왔습니다. 그게 끝난 게 5월 중순 경이었으니 그 후에 한 달 정도는 강의만 하면서 다소 여유 있게 보냈습니다. 이젠 학교도 방학이니 강의도 없네요.
*AFI: 미국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쉬는 것도 잘 쉴 줄 알아야 한다고 그러잖아요. 나는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쉴 때는 보통 집에 있거나, 카페에 가서 앉아 있거나, 안 만나던 사람들을 만나거나 해요. 혼자 여행을 가거나 하는 특별한 일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전 별로 재미없게 사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퇴근 후에 딱히 달리 하는 게 없거든요. 남들은 힐링 타임이라며 자기를 위한 시간을 갖거나 하는데 전 잘 모르겠어요.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들과 함께 있게 되는데, 제가 마루에 누워있으면 초3인 둘째가 제 위에 올라와 뒹굴뒹굴하고, 중2인 첫째가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릴 때가 간혹 있습니다. 이때가 가장 행복하고, 이게 아마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힐링 타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애들이 잠들고 나면 넷플릭스 등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한두 편 보곤 합니다. 아, EPL* 시즌 기간엔 주말이면 밤에 축구를 봅니다. 알라딘에 들어가서 읽고 싶은 책을 일단 장바구니에 잔뜩 담아놓는 것도 즐거워요.
*EPL: 프리미어 리그(English Premier League)
법학과를 나오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편집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법대를 2년 다니다가 그만뒀어요. 학교 성적으로만 대학을 가던 시절이라서 뭘 공부하겠다, 대학에 가서 뭘 전공하겠다, 전공한 다음에는 뭐가 되겠다, 그런 게 별로 없었어요. 내가 문과였는데 마침 성적이 돼서 법대를 갔죠. 그런데 이렇게 학교를 갔으니, 재미가 있었겠어요? (재미가) 없어서 2년 동안 법대 공부는 별로 안 하고 검도부 동아리 활동만 열심히 했어요. 제대하면서 원래 영화를 보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영화 쪽으로 간 거죠.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어요. 한국에서는 영화나 관련된 것을 배운 게 전혀 없죠. 영어로 공부하는 것에는 자신이 없어서 실습을 하는 실기 위주의 조그마한 예술대를 갔어요. 처음에는 대부분 많은 영화 쪽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감독이 되겠다, 연출이 되겠다 했죠. 그런데 감독이나 연출은 뭔가 새로운 것, 없는 것을 만들어내고 그 새로운 아이디어의 최초 발상자가 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안 되는 것 같아서 연출은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실습을 하다 보니까 편집할 때 제일 재밌었어요. 그리고 현장에 있는 것보다 방에 앉아서 하는 게 성향상 더 맞아서 편집을 했죠.
한국에서 기대했던 것과 미국에서의 현실은 어땠나요?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별로 기대라는 게 없었어요. 그냥 간 거죠, 일단. 학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에 와서 일을 하다가, 그다음에 다시 미국에 갈 때는 기대라기보다 ‘이거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데,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있었죠. 한국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예고편 쪽 일을 했었는데 미국은 그 일과 전혀 다른 분야로, 드라마/영화 본편 편집 일로 갔어요. 분야도 다르고 나라도 다르니까 당연히 경력으로 안 쳐줬죠. 한국에서는 10년의 경력이 쌓여서 위쪽, 에디터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에 와서는 다시 어시스턴트로 시작했죠. 그래서 처음에 막막한 건 있었어요. 아는 사람도 없고,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이게 과연 몇 년이 걸릴까? 하고요.
삶의 터닝포인트가 있으신가요?
‘터닝포인트’라는 게 나중에 내가 돌아봤을 때 그 시점을 기준으로 앞뒤가 많이 바뀌었다는 건데, 그게 아닌 게 어디 있어요. 아닌 게 없으니까 (터닝포인트를)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모든 결정이 그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뒤돌아보면 그 전과 후를 바꾼 것들이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어떤 결정을 하고 나면 거기에 일부러 의미를 안 두려고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가 중요하죠.
결정하신 것에 대해 잘 흘려보내시는 것 같아요.
장단점은 있는 것 같아요. 하나에 관해서 결정하면 이미 (결정을) 했으니까 쭉 가는 편이지만, 그렇게 하다 보니 스스로 느낀 문제점이 있어요. 일이 잘 안 됐을 경우에 왜 안 됐는지 생각해 보고, 이 결정을 왜 했는지 복기를 해볼 필요가 있는데, 내가 그걸 잘 안 하는 것 같긴 해요. 이게 단점일 수는 있을 것 같지만 고쳐지지는 않네요. (웃음) 좋게 말하면 ‘한 번 결정하고 그 후회는 없다.’고 이렇게 멋지게 포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편집에는 항상 끝이 있는데, 후회가 남으신 적은 없으신가요?
작품을 하고 나면 끝나고 처음 하루 이틀은 ‘이거 대박인데, 명작인데?’ 하다가도 3일째 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다니!’ 한단 말이죠. 한 번도 마지막까지 마음에 쏙 들 정도로 잘 됐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힘들게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결국 어느 순간에는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거니까, 그때까지만 열심히 하면 끝이 보인다는 건 편한 것 같아요.
다양한 플랫폼에 글을 쓰시고 책도 출판하셨어요.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글 쓰는 게 재밌어요. 사람들이 딱 꽂히는 게 있잖아요. 재미있어서 당시 일을 끄적이다가, 블로그에 그런 글을 올리고 책까지 쓰게 된 거죠. 법대를 그만두고 처음에는 사실 영화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당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걸 좋아했던 것이 이어진 것 같기도 하네요.
어떤 식으로든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책으로 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계속 글을 모은 거죠. 첫 번째 책은 중간에 에세이도 있긴 하지만 워크플로우나 일 적인 것이 많아요. 우리 첫째 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빠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재미가 없는 거야.”라네요. (웃음) 그래서 두 번째 책은 재미있는 걸 써보고 싶어요. 조금 더 가벼운 책. 편집이라는 거, 편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직자로 일하시는 동시에 교수도 하고 계세요.
교수님께 가르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고등학교 때 공부해 보면 자기가 아는 걸 옆에 친구한테 가르쳐주면 정리가 더 잘 되고, 그런다잖아요. 똑같은 부분이에요. 가르치는 일을 해보고 싶었던 이유 중 첫 번째는 내가 모르는 게 있어서 창피하지 않기 위해서든지, 여러 가지 이유로 가르치기 위해 준비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나 스스로도 정리가 되는 게 있어서죠.
두 번째는 선생님보다는 선배로서 다시 나누고 싶다는 게 더 커요. 가르치는 건 부담스럽고, 우리나라에서 교단에 서서 다 이렇게 보고 있는 그런 방식의 가르침보다는 둥글게 앉아서 조금 더 평등한 느낌, 같이 얘기하는 그런 방식이죠.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것은 가르침보다는 나누고 같이 이야기하는 것, 그것 때문에 수업 때 토론도 한 거죠.
몇 년 후를 상상해 보셨을 때 어떨 것 같나요?
하고 싶으신 게 있으신가요?
내 희망은 한 75세까지는 편집을 하는 건데, 대신 그때는 내가 딱 좋아하는 한두 작품 정도. 그렇게 좀 여유 있게 살고 싶어요. 은퇴해서 일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있는 것도 지겨울 것 같아요. 나이 들어서도 그때그때 좋아하는 걸 하면서 조금 더 여유 있게 살았으면 좋겠고. 아니면 외국 작품을 할 수도 있겠네요. 쉬는 건 생각을 안 해봤어요. 내가 원한다고 해서 그게 되지는 않겠지만 희망 사항이죠. 꿈은 꿀 수 있는 거니까.
앞으로 책을 더 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편집 일을 계속하고 싶고, 지금 하는 거를 지금보다 조금 더 잘하고 싶어요. 수준이 높아져야죠. 예를 들어서 지금 내가 일로 어떤 분야에서의 b등급에 있다고 하면 a등급으로 올라가는 거죠. 더 인정받고 잘하고 싶어요.
삶이 어떤 장르면 좋을 것 같나요?
일단 공포만 아니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액션이나 어드벤처 말고, 따뜻하고 밝은 드라마였으면 좋겠어요. 극장에서 흥행은 별로 안 하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영화는 액션, 스릴러가 좋죠.
근데 내 인생은 밝은 드라마였으면 좋겠어.
인터뷰어 오늘 / 포토그래퍼 또트
2024.06.28 문성환 교수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