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지은 / 포토그래퍼 누비
* 유희경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사람들이 나선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자주 오는 사람들은 발소리로 구분이 돼요. 이를테면 매니저님도 제 발소리를 알고, 저도 매니저님의 리듬을 알아요. 자주 오는 사람들의 것은 알고 있으니까 ‘누가 왔나 보다’ 기대를 하기도 하고, 종일 혼자 있었던 날에는 시집 좀 한 권 팔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생기고 그래요.
쓰는 건 확실히 내 안의 무언가를 버리는 일이고 비우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래서 나한텐 가능성이에요.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비우는 만큼 채워야 한다는 당위가 되거든요. 그래서 내가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고, 다른 것들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찾아야 하는 거죠. 창작자는 표현해야 되니까. 계속 똑같은 이야기만을 하게 된다면 그게 내가 죽는 일인 거예요.
한 사람은 평생 딱 하나의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커다란 측면에서 봤을 때 하나의 이야기를, 평생에 걸쳐 다른 방식으로 다른 위치에서 하게 되는 거죠. 한 방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가장 불행한 창작자는 인생의 화두를 못 찾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의 화두를 찾지 못한 채로 그걸 찾고 싶어서 창작을 하는 사람들. 나는 내 인생의 화두를 평생에 걸쳐서 시로 쓰고 글로 표현하고 있는 거예요.
인생의 화두를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요?
할 수 없죠. 한 문장으로 할 수가 없으니까 계속 쓰는 거지. 그건 언어화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대신 평론가는 언어화를 하려고 노력하죠. ‘그 사람의 세계는 사실 이거야’, 한 문장으로 말해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평론가인 거고, 우리는 그냥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자기만의 형태로 표현하는 거예요.
시를 몇 퍼센트만큼이나 나라고 생각하세요?
약간 분열적인 것 같아요. 일상을 살아가는 나와, 그다음에 시를 쓰는 나.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만 시를 쓰는 내가 없으면 그 외의 다른 나는 산송장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나한테 시는 너무 중요한 건데, 그게 어떤 가치를 가져서라기보단 생존으로서 중요한 것 같아요. 시가 없어선 안돼, 나는. 에너지 차원이에요. 숨을 쉬는 것처럼 나한테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시는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물론 일상에서의 유희경은 시를 안 써도 돼. 그런데 그걸 시인으로서의 유희경이 받치고 있지 않을까. 예전에는 안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유희경의 시 속 모호함은 어떤 마음을 충족시키나요?
우리가 과연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몇 개나 있을까요? 심지어 ‘안다’고 생각한 것도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결국 우린 모르고 있단 게 드러나요. 소크라테스 문답법적인 접근이긴 한데 나는 ‘무엇이 무엇이다’, ‘안다’,라고 말하는 게 사기라고 생각해요. 나는 제시하고, 그다음 의심하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쌓아 올린 이미지를 내 손으로 해체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실 내 손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도 아니고 내가 해체한다고 해서 해체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치면, 그래서 그것을 무화無化시킨다고 하더라도 거기엔 분명히 무엇인가 남는다는 거예요. 그게 뉘앙스든 성찰이든 뭐 허깨비 유령 같은 것이든, 무엇인가 남는데 그것부터 시작해 보자는 말이죠. 그래서 제 시는 언제나 귀납적인데, 결론으로 가서 무언가를 도출해내려고 해요. 항상 쌓아 올리고, 그다음에 해체시켜버리고, 그리고 거기에 남은 것, 잠깐 보이는 것, 아니면 계속 남아있는 것을 보는 거예요.
디퓨저가 있다고 하면, 디퓨저를 치워버린 후 거기 남는 어떤 것이 디퓨저의 본질에 더 가까운 거죠. 디퓨저가 거기 꽂는 막대이거나, 유리병 안에 들어있거나, 혹은 붙어 있는 라벨지에 쓰여있는 브랜드이거나 하지 않잖아요. 디퓨저는 향기와 관련된 것이고, 그 향기가 가리고 있는 다른 것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그럼 그 디퓨저를 아주 유심히 보게 만든 다음에 치우자는 거야. 그럼 거기에 뭐가 남느냐는 거죠. 그런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쓰는 일의 즐거움이란?
내가 나의 사유를 텍스트로 구체화시킬 때, 그것이 가능해질 때의 기쁨이라는 게 있어요. 쉽게 말하면 이게 언어화된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 내가 보고 생각하고 발견한 것을 언어화시킬 때, 그리고 그걸 독자들이 따라와서 좋음을 느낄 때의 기쁨.
남들이 다 아는 이야기, 모두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어요. 남들과 똑같은 걸 쓸지언정, 내가 모르겠는 것 혹은 내가 알겠는 것을 끄집어내는 거예요. 그것이 공유되어서 사람들이 그 사소한 것을 알아볼 때, 알 것 같을 때, 알쏭달쏭하게 될 때, 알쏭달쏭하게 만들어낸 것에 대한 기쁨. 그 알쏭달쏭은 어마어마한 에너지예요. 예전엔 몰랐던 건데 지금은 알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은 상태로 이동을 시킨 거잖아요. 나의 에너지 원천은 알쏭달쏭으로 데리고 가는 데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내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 거잖아.
쓰는 일의 징그러움이란?
그건 너무 많아요. 뜻대로 되지 않아요. 그리고 못마땅해. 얼마 전에 신간 교정지를 받고 다 뜯어고치기도 했어요. 언어는 정확하지 않아요. 사랑한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을 의미하지 않잖아요. 그런 애매모호함이라는 게 글에는 언제나 상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확해지지 아니함. 그럴 수 없음. 그 모호함이 글이라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걸 알지만, 동시에 그게 너무 명확한 한계이기도 해서 글쓰기의 괴로움에 대해서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입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위트앤시니컬이 어떤 길라잡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취향이 이정도까지 좋아져야겠구나.'하는. 나는 더 좋은 예술과 더 좋지 않은 예술이 있고 결과물 사이에 분명한 우월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더 좋은 시적 취향을 가졌으면 좋겠고 위트앤시니컬이 좋은 영향력을 끼쳤으면 좋겠어요. 독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타 장르의 협업 예술가들한테도 더 좋은 시가 무엇인지 알려줬으면 해요.
인터뷰어 지은 / 포토그래퍼 누비
2024.07.09 유희경 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