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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Aug 07. 2024

추억 할머니와 살아가기

인터뷰어 지민 / 포토그래퍼 달래



* 동환 과의 인터뷰입니다.





     코로나 이후에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했는데 이때 운이 좋게도 인간관계에 고파 있던 수많은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어. 코로나 이전에는 다들 과에 대한 애착 없이 각자 놀기 바쁜 분위기였거든. 나 혼자 과방 가서 낮부터 저녁까지 혼자 공부하고 그랬어. 그런데 코로나 끝나니까 학교 생활을 즐기고자 하는 친구들이 많아져서 즐겁게 보냈던 것 같아. 다같이 과방에서 배달시켜먹고, 밤 11시까지 공부하다가 수선관 5층 정원 가서 하늘도 보고 담배도 피우고.


     22년 추워질 무렵에 기말고사 준비할 때 어느 하루는 혼자 수선관 5층 정원에 갔는데 그날 하늘이 기억에 남아.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미세먼지도 없어서 남산타워와 롯데타워까지 다 보이고 별도 같이 빛나고. 감정을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나한테는 그 장면이 대학 시절 하면 생각날 것 같은 한 장면이야. 막 드라마 보면 젊은 학생들이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옥탑방 옥상에 가서 하늘 보며 오묘한 표정 짓잖아. 그 느낌인거지.





5년 전과 현재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있나요?


    약속에 대한 기준이 많이 달라졌어. 20살 땐 약속에 대해서 타협점이 없었거든. 스스로와의 약속과 타인의 약속 모두. 약속을 했으면 어떤 여지 없이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나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혔지. 1학년 때 영어 발표 팀플을 하면서 같은 팀원을 울게 만들어 버린 거야. 같이 점수 잘 받아보겠다고 내가 주도해서 대본 다 외웠는지 확인하고, 주말에 나와서 연습하도록 시켰어. 결과적으로 둘 다 좋은 점수를 받았고, 만족스러웠는데 그 친구가 종강파티 때 그게 너무 힘들었다고 울며 말하는 거야. 그때는 그 친구를 달래주면서도 잘 이해가 안됐거든. 내 주도로 연습해서 성적 잘 받았는데 힘들었다고 울다니?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 입장을 깨닫게 됐어. 어떤 과정을 거쳐 이해하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정말 갑자기 그 마음이 이해가 가더라. 못하는 거 계속 시키면 힘들 수 있지. 하나둘씩 이해 되는 것들이 생기니 예전의 강박적인 태도는 좀 내려놓고 유연함을 얻게 된 것 같아.


     또 술에 대한 태도도 달라진 것 같아. 나는 코로나 전에 새내기 시절을 겪었는데 그땐 술자리도 되게 많았거든. 우리 때가 그런 건지 아니면 모두가 거쳐가는 생애주기의 하나인지 모르겠는데 그땐 술 잘 마시는 걸로 경쟁을 하고 자부심을 느꼈어. 술 맛이나 술로 인한 즐거움 보다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가 중요했지. 지금은 그런 경쟁에 대한 의미 보다 술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을 찾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오래 하려고 술도 조금만 마시게 되더라.





5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요?


    5년 안에 엄청난 부를 쌓는다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거나 그렇지는 않아. 다만 우리 부모님이 내 나이 때 했던 것들을 해보고 싶긴 해. 사실 이게 원대한 꿈일 수도 있겠다.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분가해서 혼자 살아보고 싶고, 또 능력이 된다면 가정을 꾸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안 돼도 상관 없지만 말이야.


    또 다른 점으로는 지금 선택한 진로를 계속해서 즐거워했으면 좋겠어. 이 길이 그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재미 하나 보고 선택한 길이니까 5년은 물론이고 10년, 20년 계속 즐거운 태도를 잃지 않길 바랄 뿐이야. 지난 1년 6개월은 현실과 하고싶은 것,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다들 하고 싶어하는 것들과 나에게 즐거움 자체로 남아있는 것, 내어줄 것과 지킬 것을 정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는 걸 느꼈어. 결정한 이후에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고. 그러니 기왕이면 오랫동안 내가 선택한 것을 즐거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회학 수업에서 합리성의 비합리적 토대에 대한 얘기 많이 하잖아. 합리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계속 예측하고 계산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결국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 없게 되는 거지. 1학년 때 처음 저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해가 안됐어. 합리적인 건 합리적인 거고, 비합리적인 건 비합리적인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불확실성의 세계에 던져지다 보니 저 말이 다르게 느껴지더라. 비합리적으로 어떤 결단의 태도가 필요한 것 같아.





인사이드아웃2를 보셨다고 했는데,
동환 님의 감정 제어판을 다루는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영화에서 라일리의 감정 제어판을 만지는 캐릭터들이 있잖아. 기쁨이나 슬픔이, 불안이 같은 애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는 걔네들 보다는 추억 할머니와 닮은 것 같아. 사람들과 얘기할 때 옛날 이야기를 꺼내며 회상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그 추억들에 감정도 휙휙 바뀌거든. 버럭이 같은 감정이 제어판을 조작하다가도 추억 할머니가 나오면 통제권을 넘기게 되더라.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이를 먹으면 좀 아니다 싶은 관계를 정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그런 순간이 나한테 올 것 같을 때 그 사람과의 추억이나 좋은 기억들이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 같아. ‘좀 짜증나는데?’ 싶다가도 ‘좋은 때도 많았지’ 하며 추억 할머니가 감정을 돌려 놓는 거지.





자기 자랑 해주세요


    솔직한 게 내 장점이야. 나는 내가 어떤 상태인지 얼굴에 바로 드러나는 편이라 거짓말을 진짜 못하거든. 허술해서 몇 번 툭 건들면 무너져. 거짓말을 못해서 솔직해진 건 아니지만, 그 부분이 약하다 보니까 그냥 솔직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 친한 사람 안 친한 사람 구분하지 않고 모두에게 솔직하게 대하니까 사람들이 거기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 주위 사람들이 예측하기 쉬운 사람이지. 이게 내 최고의 장점이지 않나 싶어.






인터뷰어 지민 / 포토그래퍼 달래

2024.07.22 동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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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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