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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Oct 09. 2024

관계 속에 있는 체험

인터뷰어 현수, 또트 / 포토그래퍼 민경



* 필재 과의 인터뷰입니다.






    7월 초에 한창 프로젝트 하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지, 어떻게 공부해야지,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지 이런 생각을 정말 단 하나도 안 하고 기계적으로 연구만 하는 체험을 했어.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도 전혀 안 하고 일어나면 어제 어디까지 했는지 생각하면서 연구실 가서 마저 하고. 또 잘 안되면 씩씩거리다가 운동하러 가서 계속 고민하고, 운동 끝나고 집 가자마자 컴퓨터 바로 켜서 고치고 또 시뮬레이션 돌리고. 그렇게 하니까 잡념이 사라진 체험을 해서 좋긴 하더라고. 물론 그만큼 시야가 짧아지는 거니까 그에 따른 안 좋은 점도 있기는 하겠지만.(웃음)






최근 필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어떤 관계 속에 있다는 체험. 원래는 연구가 너무 재밌어서 ‘공부하고 논문 쓰는 행위’ 자체가 내 삶을 아름답게 해준다고 생각했는데, 특정 행위가 삶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행위로 말미암아 타자와 관계 맺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

    

    수학적 언어로 기술되는 연구도 결국에는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거야. 왜냐하면 교수님과 동료들이랑 소통하면서 하니까. 나는 그런 논리적 사고 과정을 따라가려는 것 자체가 타자와 대면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거든. 논리적 사고 과정이라는 것 자체가 어딘가에 객관적인 규칙으로 둥둥 떠다니고 그걸 학습하는 게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맺음 속에서 그런 것들을 익혀 나가게 되는 것 같아.

    

    그러니까 관계에서 벗어난 규칙 같은 거는 없다. 설령 아무리 논리적인 규칙이어도 결국에는 그 규칙의 사용이나 의미는 맥락 속에서 정해지는 거고, 맥락이 있다는 거는 당연히 관계가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내가 교수님이랑 소통하는 것도, 이 수학적 기호들을 따라서 뭔가 익히는 행위조차도 타자를 만나는 거라고 조금 거창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거지.
 





    사실 ‘수학도 관계다’ 이런 건 매우 추상적이잖아. 그런데 ‘무엇 하나 나 혼자 이룬 게 없다’는 그렇게 추상적인 얘기는 아닌 거지. 내가 마음 편하게 연구하고 운동하고 이런 거 다 살 만하니까 그럴 수 있는 거고. 이제 못 그러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내가 그런 것들을 즐길 수 있게 해준 거는 부모님의 노력도 있을 거고, 내가 모르는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있겠지.

    옛날에 운동 많이 했을 때는 ‘이 좋은 걸 왜 안 하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 그런데 이제는 내가 당연하게 즐기는 것도 못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좀 하는 거지.






필재에게 휴스꾸란?

    맞지 않는 인간관계로 인해 고통받을 때 나를 구원해 줬지. 활동이 끝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꽤 많은 사람과 연락하고 지내고, 휴스꾸로부터 파생되는 새로운 관계 맺음도 있었어. 또 사진이라는 좋은 취미도 가지게 됐고.


휴스꾸에는 어쩌다가 들어가게 됐어?


    친구 만들려고. 그리고 원래 휴스꾸 하기 한참 전에 취미를 좀 찾으려고 했거든. 그때 후보에 그림도 있었고 사진도 있었는데 그림은 내가 이미 방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잖아. 그림도 혼자 앉아서 그리는 활동이니까 별로 안 좋을 것 같더라.

    사진은 찍으려면 일단 나가니까 사진을 (취미로) 하려고 했는데 그때 내 영상학과 동기가 자기 카메라를 빌려줬어. 그게 좀 좋은 카메라였어. 그래서 그걸로 막 찍었거든. 좋더라고. 그래서 (카메라를) 돌려주고 내가 돈 모은 걸로 사서 그거 들고 휴스꾸 지원한 거지.
 
 




예술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뭐야?

    글로 표현하기에는 잘 안되는 것들이 있다고 해야 하나? 극단적인 슬픔이 될 수도 있겠고, 극단적인 기쁨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일기 형식으로 무슨 일이 있었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다고 기술하기에는 전달이 잘 안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그런 것들을 잘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예를 들어서 나는 바흐 음악을 들을 때 이상한 감정을 느낀단 말이지. 내가 시공간을 뛰어넘으면서 세계와 연결된다는 느낌이 들어.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는 걸로는 부족해. 당연히 전달이 안 되겠지. 그래서 내가 그에 준하는 어떤 표현을 예술로 하고 싶은 거지. 그러면 내가 바흐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나의 예술을 보고 조금 더 와닿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나도 예술을 해야겠다 싶었어.

 
 




    엄청나게 전문적이고 기술적으로 보이는 수학 연구 같은 것도 결국에는 어떤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거라면,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여러가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사실상 나는 딱히 형식적인 예술을 하지 않아도 예술적으로 살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시나 사진을 하는 게 엄청나게 결정적이지 않을 수 있어. 오히려 매일 하는 체험들을 예술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지. 형식이 예술적인 거를 실제로 하는 건 모르겠어. 그건 계속 오락가락하는 것 같아.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고 그냥 내 인생이 예술이네 이렇게 표현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 그런데 형식적인 예술을 하면서 그거를 좋아하는 사람 혹은 그런 걸 하는 사람들이랑 교류하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해.






인터뷰어 현수, 또트 / 포토그래퍼 민경

2024.07.28 필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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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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