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서현 / 포토그래퍼 유민, 민경
* 혜민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휴학을 한 혜민의 일상은?
1년간의 중국 교환학생을 끝내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한 학기 간의 휴학을 하고 있어. 대학 입학 후 학기 중에는 처음으로 본가에서 머무르고 있어서 그 덕에 가족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중이야. 교환학생 이후 언어 공부에 취미가 생겨 오전 시간엔 주로 언어 공부를 하고 있어. 언어 공부가 휴학 생활의 목표라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나름대로 학교를 가는 것 같은 루틴을 만들어서 오전에는 무조건 스터디 카페에 가. HSK가 됐든 토익이 됐든 프랑스어가 됐든 무조건 언어 공부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나의 루틴이야.
그 외에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많이 보는 것 같아. 나는 본가가 인천이다 보니까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학기 중에 만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단 말이야. 그래서 요즘에는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좀 재밌는 걸 하는데, 독서 모임이야. 다 같이 집에 갖고 있는 소장용 책을 들고 와서 돌려 읽는 거야. 돌려 읽고, 같이 이야기하고. 요즘은 그렇게 지내.
친구들에게 기분 일기를 써달라고 한다고.
맞아. 요즘 친구들 만날 때마다 기분 일기를 써달라고 해. 내 다이어리 뒤쪽에 줄 노트 섹션이 있는데, 여기에 나랑 함께한 오늘의 일기나 기분을 써달라고 부탁하고 있어. 내 기분 일기를 쓸 때도 있고. 되게 많이 써서 거의 다 채웠는데, 올해 안에 이 섹션을 전부 채우고 싶어.
기분 일기를 쓰는 이유는?
사람들이 우울한 감정을 쓸 때도 있긴 해. 그래도 웬만하면 되게 반갑고 기분 좋은 말들을 많이 써준단 말이야. 그래서 나는 이 다이어리를 진짜 좋아해. 그래서 20살 때부터 이 다이어리를 색깔만 다른 걸로 써왔거든. 그 1년 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을 기록하는 거야. 내년에는 연이 끊기게 될 수도 있고, 언제까지 인연을 함께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1년 안에는 소중한 인연이었을 테니까. 그래서 난 그걸 남기고 싶었어.
제일 기억에 남는 일기는?
일본인 친구한테도 한국에 왔을 때 써달라고 했는데 그 친구가 써준 이 히라가나를 내가 읽지를 못해. 이게 손 글씨라 번역기도 안 되더라고. 이게 좀 웃기기도 하고, 제일 기억에 남네.
그냥 매일매일을 기록하고 싶은 것 같아.
시간은 그냥 흘러가잖아. 사실 우리가 막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흘러가고 심지어 막으려고 노력해도 흘러가는 게 시간이라 어떻게든 그 흔적을 남기는 거지. 내 다이어리는 스케줄 다이어리라 내 기분이나 감정에 대해서 구체화하진 않아. 근데 너무 마음이 심란하거나, 기분이 좋거나 할 때는 나도 뒤에 기분 일기를 쓴단 말이야. 오늘의 기분을 쓰고 연말쯤에 다시 돌아보는 거야. 혹은 내가 너무 힘이 들 때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거지. ‘이렇게 행복한 순간도 있었는데 왜 지금까지 간직하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극복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
1년간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는데 중국을 고른 이유가 있어?
난 되게 현실적인 사람이야. 우선 캠퍼스 아시아라는 프로그램이 용돈을 매달 주셨어. 그것도 좀 컸고, 두 번째는 중국어. 내가 다짐했던 게 ‘평생 나한테 있어서 제2 외국어는 중국어다’였거든. 그래서 중국을 선택했지. 그래서 교환학생 갈 때 내가 설정한 목표는 크게 두 가지인데, 우선 전공 학점을 따오는 거였어. 내가 복수 전공을 하는 공익과 법 연계전공의 과목이 캠퍼스 아시아에서 제공해 주는 과목이랑 완전히 겹쳤단 말이야. 그래서 중국에 가서 법학 공부를 좀 제대로 해야겠다는 게 첫 번째 목표였고, 두 번째는 언어. 중국어 많이 늘어서 와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실제로 중국에 갔을 때 혼자 중국 현지 어학원을 등록해서 학원도 같이 다녔어. 근데 약간 아쉬웠던 건 다른 친구들은 교환학생에서 경험을 많이 해오잖아. 나는 그걸 1학기 때 못했기 때문에 너무 아쉬운 거야. 그래서 한 학기를 더 연장하게 됐지.
교환 학생 때 기억나는 일화가 있어?
안 좋은 거 얘기해도 되나? (웃음). 내가 중국에서 오토바이 전복 사고를 냈어. 중국에서 되게 흔한 전기 이륜차 같은 게 있어. 면허 없이도 탈 수 있고 심지어 고등학생들도 등교할 때 탄단 말이야. 근데 내가 가다가 전복 사고를 내서 응급실에 갔던 적도 있어.
또 현지에서 유학으로 온 한국인 친구들이랑 많이 교류했어. 그 친구들은 한국인이지만 중국에서의 베이스가 훨씬 큰 친구들이잖아. 대학교만 중국에서 다니는 게 아니라 중고등학교도 다 중국에서 나온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아이들이 중국어와 한국어를 완벽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부러웠어. 중국어와 한국어 두 가지 언어가 완벽하게 흡수가 되니까 나보다 볼 수 있는 세상이 넓은 거야. 그런 것들도 약간 기억에 남는 것 같아.
중국에서의 학교생활은 어땠어?
중국에서는 대학원 수업을 들었어. 그래서 학부 수업은 아니었고 대학원 수업 법학원 수업이었는데 그 법학원은 LLM이라고 이미 본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딴 친구들이 중국에서도 변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추가로 듣는 코스거든. 그러니까 그 같은 교실에 앉아 있는 친구들도 중국인이 아니라 다 외국인이었던 거야. 그래서 영어로 모든 수업이 진행됐고 그게 나한테는 한국 수업이랑 가장 큰 차이긴 했지. 근데 결론적으로 나는 그런 학교생활이 더 잘 맞았던 것 같아. 중국에서 법학원에서 영어로 수업했던 그 시간이 훨씬 내 참여도가 높았어. 한국에 있을 때는 그런 거야. 다음 스텝을 밟기 위해서 지금에 최선을 다하자는 느낌이었다면, 중국에서는 그냥 이다음 스텝은 모르겠고 현재에 충실하기만 하면 됐던 거지.
요즘 혜민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요즘 너무 생각이 많아. 사실 우리들이, 지금 우리 나이대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기인 것 같아. 그래서 그냥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약간 현실 도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웃음). 현실적인 고민들에 부담을 느낄 때마다 ‘결국 행복이 삶의 목표라면, 지금 그 자체로도 그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다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건데, 사실 지금도 내가 마음만 바꾸면 행복할 수 있는 거잖아. 그래서 ‘내가 왜 이렇게 고민하고 힘들어해야 하나? 지금 난 지금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생각해. 그리고 행복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지.
혜민에게 만족스러운 삶을 위한 필수 3요소는?
우선은 건강. 건강이 제일 중요한 것 같고, 두 번째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아. 나는 시간의 여유는 없더라도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어떻게든 그 시간을 알차게 잘 쓸 수 있거든. 그리고 그걸 시간의 여유로서 환원할 수도 있단 말이야. 그래서 마음의 여유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 마지막 한 가지는 친구들.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대신 마음의 여유를 가져줄 친지들이 꼭 필요한 것 같아.
공부 말고 다른 길을 선택한다면?
작가. 글을 써보지 않았지만, 글을 읽는 걸 좋아해서. 작가라는 직업은 글 하나로 불특정 다수한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업이잖아. 그래서 나는 그게 꽤 큰 영향력을 가진 직업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야. 그래서 작가라는 직업도 너무 재밌을 거 같아.
좋아하는 책이 있는지?
나는 <삼체>를 진짜 좋아해. 그래서 요즘 중국어 원서를 찾아볼지 진지하게 고민 중이야. 우선 이 저자가 중국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예를 들어서 책에서 문화 대혁명 소재를 다루거든. 주인공의 아버지가 문화대혁명 때 처형을 당해. 그런 역사적 소재들이랑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중국의 역사가 만나면서 그 주인공한테 좀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아. 역사라는 건 개개인이 모여서 만들어냈지만, 또 개인이 거스를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내가 지금 한국에서 2020년대에 살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너무나 큰 우연이고 행운인 거지. 그 여자 주인공은 그런 시대에 태어났고, 그런 나라에 하필 태어나서 불행하게도 그런 일을 겪은 거잖아. 이 우주의 모든 요소가 우연이라면 내 지금의 삶은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생각하게 돼.
혜민의 삶의 목표는?
삶의 목표. 우선 감정적으로는 행복. 그리고 나는 나중에 재단을 만들고 싶어. 아이들을 위한 교육 재단. 지금은 약간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게 오래전부터 큰 꿈이었단 말이야. 세상엔 부모 자격을 갖추지 못한 부모들이 많은데 아이들은 정말 죄가 없잖아. 이것도 삼체 이야기랑 맞물리는 부분인데, 그 아이들이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전부 우연인 거잖아.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 재단을 만드는 게 목표야.
인터뷰어 서현 / 포토그래퍼 유민, 민경
2024.10.30 혜민 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