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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도 다리가 8개일 뿐, 모든 걸 잡을 수는 없잖아요

인터뷰어 조아 / 포토그래퍼 조아

by 휴스꾸


* 현택과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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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오래 남는 공연이 있다면?


최근에 비슷한 질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기억에 남는 콘서트를 말할 때는 "멋있다"와 "즐겁다"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하게 돼요. 물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공연도 있긴 해요.


먼저 "멋있다"에 해당하는 공연으로는 'King Gnu(일본의 4인조 남성 록 밴드)' 공연이 떠올라요. 공연장은 올림픽홀이라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어요. 해봐야 4천 석 정도인데, 제가 여태 본 공연 중에서 그곳에서 낼 수 있는 최상의 퀄리티였어요. 4인조 밴드인데 스태프가 30명이나 왔어요. 사진 작가, 영상 작가, 헤어 아티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심지어 전담 마사지사까지 있더라고요. 그렇게 철저히 준비된 공연이라 정말 멋있고 인상 깊었어요.


"멋있다"는 그들의 퍼포먼스 자체나 연출이 주는 감동이고, "즐겁다"는 내가 직접 뛰면서 즐기고 싶은 공연이에요. 가만히 입 벌리고 넋을 잃고 보게 되는 공연과 미친 듯이 뛰면서 보는 공연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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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에 관객이 아닌 봉사자로, 그리고 종사자로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음악 페스티벌 이전에 영화제가 먼저였어요. 2020년에 'BIFAN(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지원했었는데, 그때는 떨어졌어요.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는 꼭 참여하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렇게 첫 단추를 잘 끼운 게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BIFAN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좋은 기억이 있어서 이후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됐어요. 철원에서 시작한 인연이 다른 페스티벌이나 활동으로 계속 이어졌고, 그 사람들과 지금도 종종 함께 일을 하고 있어요.


현재는 음악과 공연, 특히 페스티벌에 관심이 많아요. 공연은 페스티벌 안에 있기도 하고, 페스티벌이 공연의 일부이기도 하죠. 제가 맡고 있는 영역은 운영 쪽이에요. 기술적인 부분은 제가 직접 다루진 않지만, 운영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을 맡고 있어요. 원래는 기획 영역에서 활동하고 싶었어요. 아티스트를 섭외하거나 에이전시와 협업해서 '어떤 아티스트를 모시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하지만 지금은 선배가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저는 운영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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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낭만을 챙기며 사는 것 같은데?


지금, 구체적으로 말하면 2023년부터의 제 삶을 보면 확실히 낭만이 있는 것 같은데, 예전에는 아니었어요. 군 전역 전에는 밴드를 2년 동안 했는데, 그때는 너무 얽매여 살았어요. 감투를 쓰고 있었던 데다 코로나 시국이라 즐겁게 밴드에서 노래를 한다기보다는 심적으로 부담이 많았거든요. 그러다 군입대를 했는데, 사실 군대라는 조직에 대한 회의가 크고 지금도 그래요. 군에서 휴가를 모으려고 했던 행동들이 군 내부에서는 좋게 비춰지지 않았거든요. 군대에서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그 갈망이 낭만에 대한 시작점이었던 것 같아요.


전역하자마자 복학했고, 복학과 동시에 입학식 축하 무대 공연을 선보였어요. 새터 장소로 향하는 버스 옆 자리의 신입생이 다음 회장이 되는 우연도 겹쳤고요. 그 경험이 정말 의미가 컸던 것 같아요. 오디션 때는 ‘우리가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딱 한 팀만 뽑는 자리에서 우리가 됐거든요. 그런 일들이 시작점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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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오현택과 스탭 오현택의 다른 점은?


관객으로 콘서트를 갈 때는 표를 들고 공연 당일을 기다리는 기대감이 크잖아요. 하지만 준비하는 입장은 다르더라고요. 온갖 걱정을 다 하면서 공연 준비를 하고, 마침내 당일에 아무 문제 없이 공연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는 과정이 있어요. 처음에는 이게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역할도 아니었고, 대기실 준비부터 뒷정리까지 모든 게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래도 아티스트가 대기실에 들어오면서 인사를 하고, 공연 후에 서로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그 순간들이 기억에 오래 남아요. 무대 앞에서 관객으로 공연을 보는 것보다 무대를 만들어가며 경험하는 과정들이 훨씬 깊게 남는 것 같아요.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 중 하나는 관객들을 보는 거예요. 관객들이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정말 흥미롭더라고요. King Gnu의 공연 같은 경우에는 무대를 넘어 관객들의 반응 하나하나가 너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요. 관객으로서만 공연을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이 생겼어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무대를 더 다각도로 볼 수 있다는 거예요. 공연을 보면서 조명, 카메라, 무대 설치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도 자연스럽게 눈이 가게 되더라고요. 페스티벌에서는 카메라 팀이 중계를 준비하고 화면 구도를 잡는 모습도 보이는데, 그런 디테일까지 신경 쓰게 되면서 공연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던 아티스트를 남들과는 조금 다른 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특별한 경험이죠. 내가 그들의 팬이라는 걸 티내지 않더라도,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동기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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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직장생활, 대인관계의 균형을 맞추는 본인의 노하우는?


사람들이 보기엔 다양한 걸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아니에요. 눈에 띄게 많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 관심사들을 다루는 것도 맞지만, 그만큼 깊이 있게 파고들진 못했어요. 그래서 스스로는 그걸 잘 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아요. 놓치고 있는 것도 많고요. 요즘은 사진이라는 취미도 거의 못 하고 있고, 이전에 약속했던 작업도 마무리하지 못한 게 많아요. 게임도 예전만큼 하지 못하고 있어요. 출퇴근길에 하려고 스위치 게임도 몇 개 샀는데, 사놓고 거의 못 했어요. 새로운 것을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기존의 것들 중 일부를 놓칠 수밖에 없더라고요.


여러 가지를 동시간대에 해보려고 노력하는데, 결국 한 가지를 잡으면 다른 건 놓치게 돼요. 문어도 다리가 8개일 뿐, 모든 걸 잡을 수는 없잖아요. 그 안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냐고 물으면, 사실 그냥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편이에요. 오늘은 이걸 해볼까, 내일은 저걸 해볼까 하는 식으로요. 인스타그램 팔로잉 목록도 관심사를 반영해 놓은 게 많아서, 거기서 잡다한 정보와 소식을 보며 영감을 얻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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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생활 끝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페스티벌에 비춰지는 조명이 제작자분께도 비춰지는 게 멋있어 보였어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처럼 페스티벌만큼이나 그 페스티벌을 만들어낸 분의 이름도 함께 알려지는 거죠.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인재진 감독님의 인생이 담긴 작품이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의 이름이 페스티벌의 얼굴이 되는 거예요. 마치 영화 감독이나 예능 PD가 자신만의 색깔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처럼요. 나영석 PD의 ‘1박 2일’이나 김태호 PD의 ‘무한도전’ 같은 경우를 보면, 출연진의 케미도 좋지만 결국 그 중심에는 창작자가 있잖아요.


저도 언젠가 제 이름을 걸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요.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페스티벌이요. 단순히 이벤트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제가 만들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예요. 그런 갈망이 제 안에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어 조아 / 포토그래퍼 조아

2025.01.22. 현택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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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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