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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더라도, 애정이 스치면

인터뷰어 조제 / 포토그래퍼 유민

by 휴스꾸


* 카페 프롬네르 사장과의 인터뷰입니다.






'프롬네르'는 어떤 의미인가요?


프랑스어 '프롬네르'는 한국어로 '산책자'라는 의미예요. “산책자”는 생각을 비워내고 걷다가 흘러가는 생각들을 붙잡고, 그 생각의 출발점을 찾아가요. 그 과정에서 '이 생각, 왜 들지?, 잘못된 생각 아닌가?' '이 생각, 훌륭한데?' 등과 같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마침내, 생각의 원류에 도달해요. 그러한 사유가 시작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생각했고 이름을 프롬네르라 짓게 됐어요. 프롬네르가 산책자들에게 걷다가 잠시 멈춰서 쉬고, 자연스럽게 사유했던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요.






카페의 마스코트 루이는 사장님께 어떤 존재인가요?


가장 먼저, 저에게 루이는 사랑스러운 천사예요. '산책'하면 강아지 산책을 많이 떠올리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루이가 마스코트가 됐어요. 카페에서는 손이 제법 많이 가는 동료예요. 카페로 출근할 때 "가자!" 하면 보통 벌떡 일어나서 앞장서는데 가끔 산책을 많이 해서 피곤할 땐 "가자!"라고 해도 그냥 가만히 있고, 안 가려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휴가를 주지요. 그날은 동료 없이 저 혼자 일하는 날이에요.


루이가 가끔 짖을 때도 있어요. 손님이 오셨을 때 그렇게 반기는 것 같아요. 근데 카페 앞에 다른 강아지가 지나갈 때도 짖어요. 자기는 카페 안에 있으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기세등등해져요. 정작 밖으로 나가면 쭈뼛쭈뼛하면서 말이에요. 아무 때나 짖는 버릇을 고쳐보겠다고 안에 가두곤 깜박하고 간식을 준 적이 있는데 그 후로 이상한 알고리즘이 생겨서 대실패 했어요. 루이 생각에는, '내가 짖는다. 엄마가 날 안에 가둔다. 그리고 먹을 걸 준다..? 자, 짖자.'이런 식으로 돼버린 거예요.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직장 동료죠.(웃음)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을까요?


사실 카페는 비즈니스인데, 어느 순간 손님들에게 “정”이 생기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카페 초기에 왔던 러시아 여학생이에요. 자기 남자친구도 소개해 준 아주 어여쁜 여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편지를 문틈에 끼워두고 떠났더라고요. 이제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다음 여름에 온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오진 않았네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개업 초기라 디저트를 맛있어할까 두근두근할 때였는데 맛있다고 해줘서 고맙고 그랬어요. 언젠가 꼭 와주면 좋겠어요.


유학생이 많이 오는 거 같아요

맞아요. 손님들 중, 특히 유학생들이 손 편지를 많이 써줬어요. 아무래도 타국에서 지내면서 일부러 말을 건네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겠지요. 몇 마디 주고받았을 뿐인데 고마움을 표시하더라고요. 소중하게 하나하나 모아두고 있어요.


손님들과 대화도 자주 나누시나요?

어쩔 때는 제가 손님께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혹은 손님이 먼저 말을 거시기도 해요. 여러 손님과 다양한 주제로, 혹은 주제도 없이 주고받는 대화라 많은 부분 뒤섞이고, 기억 속에서 재구성되거나 잊혀서 기억 속 서랍에서 꺼내 쓸 순 없어요. 그 순간의 느낌만이 잔향처럼 남는 거 같아요.






언어를 좋아하신다고요?


언어를 좋아했어요. 지금도 좋아하고요. 6살 혹은 7살 때, 외할아버지께서 영어로 된 책 한 권을 가져다주셨어요. 그땐 당연하게도 영어를 하나도 몰랐는데, 그 문자 모양을 정말 말 그대로 읽는 방법을 알게 된 게 얼마나 재밌던지. 이후에는 한동안 다른 일을 하다가 카페를 열게 됐어요. 초창기엔 이렇게까지 많은 외국인 손님들을 만나 수다를 떨게 될 줄 몰랐는데... 점점 많은 유학생들이 오면서 중국어, 러시아어, 인도네시아어까지 다양한 언어를 접할 기회가 다시 많아졌죠. 덕분에 언어를 또 공부하고, 더불어 그 나라 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됐네요.



최근에는 어떤 언어들을 접하셨나요?

최근에는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을 보면서 언어의 형식과 내용이 자의적으로 결합된다는 걸 재밌게 확인한 것 같아요. 요즘 읽는 책은 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이에요. 성경을 통해서도 언어와 관련된 탐구를 하곤 해요. 창세기 1장 3절에 최초로 “말하다”라는 단어가 나와요.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고 말씀하시자 빛이 나타났다.” 또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있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구절이 있어요. 태초에 “말”이 있고 말은 의미이고 말은 전달하는 것이고 말은 사람을 살리는 도구여야 한다.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면서 그 근거, 타당성을 다양하게 찾고 탐구하는 것이 저의 취미예요. 결국 사람은 자신이 처음으로 진심을 갖고 좋아했던 것으로 되돌아가게 되나 봐요.






말에 사소한 애정을 담으려 해요. 마주 보며 하는 대화란, 영혼과 영혼의 소통인 것 같아요. 그러니 사소한 말 한마디로도 그 사람의 인생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다듬어진 관심을, 즉 애정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모든 짐과 고난을 전부 나눌 수는 없지만, 사소한 말들이 스치며 조금이나마 마음에 여유와 쉼표를 줄 수 있다면, 그래서 혹시 치우친 방향에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면, 꼭 애정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때때로 일부러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이 동네에는 유학생들이 많잖아요. 주변에 도움을 받을 어른이 없는 학생들은 저에게 사소하지만 의견이 필요한 문제를 의논하기도 해요. 그걸 어떻게 그냥 지나치겠어요.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때로는 엄마처럼 애정을 담아야죠.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내 깊이를 알게 되는 것과 같아요. 알아간다는 건 시간의 흐름을 전제해요.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을 추억하다 보면 지금에야 이해되는 것들이 생겨요. 회고하면서 길고 짧은 이야기가 생기는데, 결코 수정할 수 없지만 맘속에는 수정본들이 생겨요. 글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과거에는 쉽게 지나쳤던 그저 한 줄의 문장이었는데, 지금 다시 읽을 때는 쉽사리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 다음 문장과의 행간이 넓어지고 말아요. 사고와 의문, 추억과 해석 등으로 넓어진 행간은 곧, 나 자신의 깊이를 의미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음, 시간이 흐르고 다시 보면 언제나 그런가 봐요.







인터뷰어 조제 / 포토그래퍼 유민

2025.03.26. 카페 프롬네르 사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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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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