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굿네이버 Jul 13. 2024

누구나 다 실수는 하잖아!

”어휴, 크리스! 정말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  아침 일찍 출근을 하니, 밤 근무를 한 사회복지사 안젤라가 웃으며 말한다. 사무실에 있던 직업 치료사 (Ocupational Therapist)나 물리 치료사(Physio)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뒤에서 킥킥거리며 웃는다.  “왜 무슨 일인데?” 당황한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네가 맡았던 환자, 그 노숙자 말이야… 정말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켰는지 아니?” 


뉴질랜드는 현재 겨울이라 노숙자들이 매일같이 병원에 찾아온다. 어제도 한 명의 노숙자가 응급실에 찾아왔고, 내가 그 환자를 맡았다. 그 환자의 이력은 좀 특이했다. ’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피해서 호주에서 뉴질랜드로 도망쳐 온 지 3주가 되었다 ‘. 병원 기록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순간 나는 두 눈을 부시고, 다시 읽었다. “남편을 피해 도망을 갔다고?, 뭔가 이상한데….”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아닌데… 분명 남자인데….” 그렇다. 그 환자는 남자였다. 그런데 남편을 피해 도망을 쳐 왔다고 하니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생각해 보니, 호주는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국가가 아닌가? 그러니 별로 이상할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옛날 같으면 동생애자를 상대하는 것이 참으로 어색한 일이었다. 만날 기회도 별로 없었지만, 크리스천인 나는 동성애는 죄라고 못이 박히게 들었다. 그리고 한 때 목회자였던 나에게 동성애는 금기시된 주제와도 같았다. 더욱이 조금이라도 동성애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 엄청난 비난 세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병원 사회복지사가 된 후로는 동성애자를 종종 만난다. 심지어 함께 일하는 동료도 동성애자도 있었다. ‘편견’, 그래서 난 늘 나 스스로 만들어낸 편견과 매일 싸워야 한다.


“안녕하세요, 사회복지사 크리스입니다” (드디어 내 영어 이름을 밝힙니다.) 나는 아무런 편견 없이,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환자와 마주했다. 동성애자든 아니든 사실 우리는 그저 다 똑같은 인간(Human Being) 일뿐이다. 내가 만난 그 환자는 노숙자라고 하기에는 그 모습이 단정했다. 대개 머리는 덥수룩하고, 수염은 지저분하게 나있고, 옷을 너저분해야 정상(?)인데, 생각보다 그 모습이 단정했다. 우연인지 그 환자의 이름도 크리스였다. “어, 나도 크리스입니다”.  영어권에서는 크리스라는 이름은 그저 흔하디 흔한 이름이다. 마치, 한국에서 김 씨, 이 씨. 박 씨가 흔하듯 말이다.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친숙하다는 듯, 반갑게 인사를 한다.


“제가 자초지종은 들었네요, 그래도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사실 제가 간호사였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때는 전염병 전문가로 컨설턴트로 있었습니다” 확실히 그 사람의 말투에서는 배운 티가 났다. 노숙자는 못 배우고, 게으른 사람들일 거라는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고학력자에, 전문직인 사람이 어쩌다 노숙자가 되었나? 정신도 멀쩡하고, 심지어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도 아닌데 말이다. “제가 실은 코로나 백신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해고되고 말았죠 “ ”그러면 지금 다시 간호사를 하면 안 됩니까? “ ”아니요. 이젠 그 일이 싫어졌습니다 “. 참 신기한 일이다. 간호사가 되면 억대 연봉을 받으며 잘 살 수 있는데도 노숙자로 남겠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게 폭력을 휘두른 남편을 피해서 뉴질랜드로 왔네요. 하지만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아무도 없네요. 여기 온 이후로 줄곧 길바닥에서 지냈습니다 “.  노숙도 해 본 사람이 한다고, 전문직종에 있던 사람이 노숙을 하려니 7일도 못 버티고 병원 응급실에 찾아왔던 것이다.  “하루 밤만 지낼 곳이  있으면 돼요. 정말 밖이 너무 춥네요. 죽을 것 같아요. 내일 아침에 일자리 면접이 있어서 정말 딱 하루 밤만 보내면 됩니다”.  긍휼 한 마음이 항상 100% 가득인 나는 쉽게 마음이 약해진다.  “그래요, 그럼 응급실 대기실에 하루 밤 정도 지낼 수 있게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수간호사에게 허락을 받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니 밤 10시에 다시 오세요. 제가 밤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에게 부탁을 해 놓겠습니다. 혹시 뭐 또 필요한 것 없나요?”


“몸 좀 씻었으면 좋겠는데, 어디 샤워할 곳이 없나요?”  “뭐, 여기서 그냥 씻으시면 됩니다”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응급실 곳곳에는 환자들이 씻을 수 있는 샤워 시설이 갖춰져 있으니 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노숙인이 입을 수 있는 속옷 몇 가지를 챙겨주고, 바로 옆에 있는 샤워 시설에서 몸을 씻도록 해 주었다. 문제는 그때가 오후 4시 10분, 퇴근 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다. 그날은 막내 아이를 학교 옆 방과 후 교실에서 픽업해서 집으로 가야 해서 더는 퇴근을 미룰 수 없었다. 급한 마음에 동료에게 마지막 뒷 일을 부탁을 하고 곧바로 퇴근을 했다.


문제는 내가 퇴근한 후에 시작이 되었다. 그 노숙인 크리스는 무려 샤워실에서 45분 동안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뒷 일을 부탁했던 중국인 여자 사회복지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고 한다. “그 사람이 45분 동안 샤워실에서 나오지 않은 것 아니? 혹시라도 목을 매달았으면 어떻게 해? 거기는 아직 개방된 병실이 아니라 아무도 지켜보지 못했다고!” 나를 나무라던 사회 복지사는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내 얼굴은 시뻘게졌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노숙자 크리스는 내가 말한 대로 밤 10시에 다시 응급실을 찾았다. 당당하게 응급실 접수창구에 가서는 큰 소리로 외쳤다. “사회 복지사를 불러 주세요. 오늘 밤 여기 응급실에서 하루 밤 잘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응급실 수간호사는 얼굴이 울그락 불구락 해졌다고 한다. 분명 노숙자 크리스에게 ”제발, 하루 밤 지낼 수 있다는 말을 내가 했다고 말하지 마세요 “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그는 내 말을 깡그리 무시했던 것이었다. 마지막 뒷 일을 부탁했던 동료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꼭 밤 근무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에게 미리 언질을 주라고 했지만, 그것도 제대로 전달이 안 되었다. 졸지에 나는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이자 Rule  되어 버렸던 것이다.


사실 할 말은 참 많았지만, 그냥 꾹 참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억울한 점도 있지만, 이럴 때는 그냥 나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어떻게 보면 큰 실수는 아니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분이 나쁜 일이긴 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 근무를 했던 수간호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과하기 시작했다.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절대로 허락 없이 그런 일을 벌이는 사람이 아닌 거 아시죠? 하지만 어찌 되었든 제 실수입니다”. 그러자 내 사과를 들은 수간호사는 방긋 웃으며 말한다. “괜찮아요. 누구나 다 실수는 합니다”.


나의 평소 성품을 아는 수간호사들은 하나같이 나의 실수를 눈감아 주고, 감싸주었다. 10년 차 사회복지사도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하지만, 그런 실수를 이해해 주고 사과를 받아주는 응급실 문화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사실 오늘날 세상은 실수를 용납하는 하지 않는다. 실수를 질책하고, 지적하는 것이 오히려 익숙한 문화다. 하지만 그런 문화는 결코 사람을 성장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런 문화는 오히려 끝없는 변명을 만들어 내고, 실수를 은폐하고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행동을 양산한다. 만약, 내가 일하는 병원 응급실 문화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였다면 아마 나도 똑같이 변명으로 일관하거나, 아니면 책임을 떠넘기려고 했을 것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참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많이 일어난다. 병원에서도 그런 실수가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정직하게 그런 실수를 인정하고 이야기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문화가 더 큰 의료 사고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른 보고는 발 빠른 대응과 대처를 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문화가 한 사람, 한 사람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게 해 준다.



[오랜만에 글을 다시 쓰네요. 한 동안 상심한 아내를 위로하고, 상속 문제 등의 법적 처리를 아내를 대신해서 하느라 여유가 없었네요. 글 쓰기를 쉬다 보니 막상 다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더군요. 이제 다시 힘을 내어 글을 써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버스표 한 장만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