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파르 파니히 감독의 작품이다.
자파르 파니히 감독의 국가 체제에 저항하는 작품들로 인해 2010년부터 영화 제작이 금지되었었다. 금지령이 풀리긴 했지만 이번 작품도 국가의 검열을 받는다면 제작이 불가능해질 것이 뻔해 허가 없이 몰래 작품을 촬영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자파르 파니히 감독이 7개월 간 수감 생활을 하며 함께 지내온 수감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그들에게 이 영화를 바치고 싶다고 하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이란의 현 체제를 비판한다는 메세지가 강하게 드러나있다.
바히드는 수감생활 동안 고문을 당해온다. 그가 기억하는 건 고문하는 자인 에크발의 이름과 의족 소리 뿐이었다.
수감 생활 이후 일상을 살아가던 바히드는 우연히 의족 소리를 다시 듣게 된다. 수감 생활 동안 당했던 모든 폭력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며 바하드는 복수의 계획을 세운다.
에크발을 납치해 산 채로 묻으려 하였다. 하지만 바히드는 에크발의 의족 소리만 기억할 뿐 그의 얼굴은 알지 못한다. 납치한 남성이 에크발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던 바하드는 고문을 당하던 다른 수감자들을 만난다. 하지만 에크발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에크발이 맞는지 확인한다.
후각과 촉각 등 감각을 동원하지만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 에크발이 인정하기 전까지는 복수하지 않기로 한고 납치한 남성에게 에크발이 맞는지 직접 확인하기로 한다. 하지만 얼마 후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납치한 남성의 휴대폰으로 딸에게 엄마가 쓰러졌다고 전화가 온 것이다. 바히드와 일행은 딸을 도우러 나섰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목격한다. 이후 함께 동행하던 이들 중 3명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바하드와 함께 남은 한 명은 남성을 나무에 묶어두고 에크발인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수감 생활 당시 에크발에게 당한 고문으로 인한 아픔을 다 토해내니 결국 본인이 에크발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에크발은 자신의 폭력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결국 바하드는 에크발을 죽이지 않고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돕는다. 완전한 복수는 이루어지지 못한 채 바히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영화는 평범하게 사는듯한 바히드가 또 다시 의족 소리를 들으면서 마무리 된다. 트라우마로 인해 의족 소리를 듣게 된건지 정말 에크발이 찾아온 것인지는 나오지 않았다. 이 장면에서는 저절로 몸을 움츠리며 귀를 막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야기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히드와 다른 수감자들은 결국 에크발에게 또 다른 폭력을 가하게 된다. 모두가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특히 완전한 복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는 무한 굴레에 빠지게 될 뿐이다. 우리는 폭력이 아닌 더 인간적인 방법을 선택해야한다. 감독도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에크발이 나무에 묶여 심문(?)을 당하는 장면에서 인상적인 포인트가 있었다.
에크발은 처음에 자신이 에크발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체제에 대한 자신의 굳은 믿음과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들의 탄생에 대한 소식과 본인이 수감자들에게 한 행동과 그로 인한 수감자들의 고통에 대해 들은 후 미안하다고 울부짖으며 꼬리를 내린다.
에크발은 어쩌면 체제에 대한 사회의 강압에 의해 스스로 사고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지 않을까? 감독은 이를 통해 불합리한 체제에서 벗어나 인간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던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