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잡아도 글씨들이 허공에서 날고
습작노트를 펴도 눈동자는 베란다 창문에 갇혔다
보이는 창문 밖 세상이 전부인 것 같다
더 이상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듯도 싶다
연필을 잡은 손은 멍하니 연필을 바라보고 연필은 황망히 손에 잡혀 흔들린다
글이라는 것이 더 어렵다
내 마음이 어려운 것인지 글이 어려운 것인지
쓰자는 생각이 어려운 것인지
마음이 어지럽고 심란하니 창문 밖 세상만 고요하다
어깨 한번 짚고 돌아서 나가는 그대는 내가
볼 수 없는 저 어느 곳을 걷고 또 걸을 것이다
날 위로해 줄 수 없어서
나를 가둔 세상에서 건져 올 방법을 찾기 위해 걷고 또 걷겠지
그대가 걷는 세상에 나는 없음이 미안하다
나를 조금만 더 이대로 가둬두면 좋으련만
당신의 뒷모습이 나의 애잔함이어서
허공에 날던 글들을 잡아 베란다 속 창문으로 가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