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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욱 Oct 04. 2022

브라질 파벨라(할렘가)의 추억

제2부: 세계여행(브라질)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는 세계적 관광도시지만 매년 범죄 조직과 경찰 간의 총격적으로 몇천 명이 숨지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이 도시에서 인생 처음으로 카우치 서핑을 시도하기로 했다. 카우치 서핑이란 현지인의 집에 남는 Couch(소파)에서 낯선 여행자들을 재워주는 서비스인데, 여행객은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고, 집주인은 세계의 다양한 친구를 사귈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 많이 이용된다.


카우치서핑 앱을 통해, 아르헨티나에서부터 나의 여행 계획과 자기소개를 보고 어느 한 친구에게 리우에 도착하면 자기 집으로 오라고 연락이 왔다. 순조롭게 연락을 이어가던 중, 아르헨티나에서 유명한 과자와 밀크 잼을 사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연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뜸 요구부터 하는 모습이 ‘싸’하긴 했지만 원래 서퍼들은 숙박비 대신 자기 나라의 음식을 해주거나, 작은 선물을 해주는 것이 관례이기에 알겠다고 선뜻 대답했다.


아르헨티나에서부터 브라질까지 총 30시간이 걸리는 버스를 타고, 브라질 상파울루를 거쳐 밤늦게 리우 데 자네이루에 도착했다. 남미에서 1년간 생활했던 경험 데이터 덕분일까, 누군가에게 듣지 않아도, 육감적으로 이 도시는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리우 터미널로 마중 나오겠다는 카우치서핑 친구가 꼭 제시간에 마중 나와 있기를 빌면서 버스에서 내렸다.


하지만 싸한 기분은 왜 언제나 잘 들어맞는 걸까. 나를 반기는 브라질 친구는 어디에도 보이지가 않았다. 국경을 넘어오느라 유심칩도 없었고, 밤늦게 도착해 구매할 수 도 없었기에 터미널을 돌아다니며 핸드폰을 들고 공짜 와이파이를 찾아 돌아다녔다. 친구가 조금 늦는 거뿐이라고, 우리가 엇갈린 것뿐이라고 일말의 기대를 하며 한 시간의 고군분투 끝에, 약하게 터지는 공짜 와이파이에 힘겹게 연결했다.


‘띵’하고 울리는 핸드폰 알람엔‘오늘 못 재워주게 됐어 미안’라며 짧은 문자만이  와있었다.


 그대로멘붕이었다.  친구 덕분에 핸드폰도 안되고 포르투갈어도 못하는 동양인인 나는, 범죄율이 높기로 소문난 도시에 덩그러니 놓여 버린 것이다. 여행 처음으로 긴장이 되자,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질적인 이방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리우 터미널의 노숙자들 눈길 사이로 일단 침착하게 짐을 내려놓고 주위를 살폈다. 와이파이가 언제  끊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손은 치켜들고 라이온 킹의 제사장 원숭이 마냥 핸드폰을 심바처럼 소중히 들어 제일 싸고, 당장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검색했다.


끊어졌다, 연결됐다 하는 와이파이 덕분에 시간이 걸렸지만 1박에 만원도 안 하는 저렴한 숙소로 예약을 하고 우버(택시) 예약을 최대한 빠르게 끝냈다. 우버 드라이버한테는 내가 와이파이가 안 되니, 거북이 마냥 여행가방을 메고 있는 나를 제발 알아봐 달라고 말을 한 뒤, 드라이버가 거의 도착할 때쯤 껌껌한 리우 길거리로 나갔다.


다행히 나를 알아본 드라이버 덕분에 차에 바로 올라탈 수 있었다. 한 시름 놓인 상황에 긴장이 조금 풀릴 때쯤 택시가 잘 가다가 오르막길에서 멈춰 섰다.


여기부터는 파벨라야!(할렘가), 길도 험하고 위험해서 못 들어가!

첩첩산중이었다. 거리만 보고 가까운 게스트 하우스로 급하게 예약한 곳이 하필 파벨라(갱스터) 구역 안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였고, 나는 가격이 싼 이유를 그제야 알아차렸다. 드라이버는 차에서 내려, 파벨라 안에 있는 가게에서 키 큰 흑인 친구를 데리고 와서, 이 친구가 길을 안내해 줄 것이니 따라가라고 나를 소개해 줬다.


친구와 어색한 인사를 나눈 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체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까만 피부색의 친구들은 동양인이 어색한지 나를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쳐다보았다. 파벨라 안으로 깊게 들어설 때쯤 골목 어귀에 있는 AK-47로 무장된 사람들과 내 팔뚝만 해 보이는 무전기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자 그제야 뭔가 단단히 잘 못 됐음을 느꼈다.


다행히 어찌저찌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고, 나는 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반겨주는 종업원과 짧은 인사를 나눈 후 나는 대뜸 내가 목격한 것들에 대해 물어봤다.


“밖에 친구들이 골목마다 무전기와 총을 들고 있어. 여기 안전한 거 맞아?
나를 쏘면 어떡해?”


“하하, 아마도 총알이 아까워서 너를 쏘지는 않을 거야”


“?”


물론 종업원은 웃자고 한 농담이었겠지만, 난 하나도 웃기지가 않았다.


“농담이고, 여기는 파벨라 담당 갱스터가 보호를 해주고 있어,
관광객들이 술과 마약을 구매하고, 숙소에 묵고 가기 때문에 파벨라 경제활동에 도움이 되거든, 그들도 그 사실을 알아”


그 말을 들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어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30시간 넘게 제대로 된 밥을 못 먹었기 때문에 허기가 져서 용기를 내서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멀리 골목 어귀에서 소총을 들고 있는 친구들이 방긋 웃어주고 있었다. 친구들은 호의였겠지만 그 모습에 하루 이틀은 굶어도 되지 싶어 그대로 다시 들어와 잠을 청했다.

날이 밝고 나와보니 바뀐 건 별로 없지만 무섭기만 한 동네이기보다 애기들도 돌아다니는 영락없는 달동네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오기 전에 어젯밤에 나를 챙겨준 친구가 생각이 나서, 원래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 주려고 했던 아르헨티나 과자들을 챙겨 나왔다. 일찍이 장사를 하고 있는 가게 안에 어젯밤에 보았던 친구가 있었다. 말은 안 통하지만 어제 너무 고마웠다고, 이거 선물이라고 과자들을 건네며 엄지를 들어줬다. 친구도 반갑게 웃으며 너무 고맙다고 똑같이 엄지를 들어줬다.


그렇게 4일 동안 파벨라의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나는 완전히 적응을 했다. 저녁 늦게 숙소에 들어와도 이젠 골목에 있는 건 낯선 흑인들이 아닌,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파벨라에서의 마지막 날, 마음에 여유가 생긴 탓에 게스트하우스 옥상에 올라가 맥주를 마시면서 파벨라의 구석구석을 뜯어보았다. 빨래를 걷고 있는 사람들, 파벨라를 보호하는 무장한 무리들, 옥상에서 놀고 있는 무리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뜨였던 건, 빈 건물에서 늦게까지 음악단 연습을 하고 있는 무리였다. 가르치는 사람들은 나이가 있는 어른들인데,  악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해봐야 중학생도 안되어 보이는 앳된 아이들이었다.


아마 저 친구들이 횡단보도 신호가 빨간불일 때마다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친구들일 것이다. 횡단보도 신호가 긴 교차로에서 짧은 공연을 하고 팁을 걷는 문화는 중남미에서 많이 발달해 있다. 칠레에 지내면서 이미 숱하게 겪었기 때문에 놀랍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공연 장면이 아닌 연습장면을 목격하는 건 처음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어른들이 총을 차고 경찰들과 대척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는 어린이와,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고 악기를 들고 돈을 벌어와야 하는 아이들의 연습 모습을 맥주를 마시며 여유롭게 보고 있자니 뭔지 모르는 죄책감이 일었다.


물론 그들은 나를 못 봤겠지만, 들려오는 연주 소리에 나는 서둘러 맥주를 다 마시고, 침대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다음날 짐을 싸고 퇴실을 마쳤다. 그간 사겼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첫날 친구에게 안내를 받으며 힘겹게 올라온 거리를 혼자서 내려가다 길거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마주쳤다.


“How was Favela!”

환하게 웃어주며 잘 가라고 인사하는 그들의 얼굴에 복잡했던 생각은 뒤로 하고, 나도 누구보다 힘차게 “Fantastic!”이라며 엄지를 들어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다양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 잊을 수 없는 파벨라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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