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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 Nov 13. 2023

드라마사랑으로 시작된 소소한 반항

K장녀의 반항

세상에 드라마는 왜 있는 걸까? 이런 말을 하면 수많은 드라마 애호가분들이 싫어하겠지. 그리고 나도 드라마를 싫어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겠지.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렸을 때부터 광적으로 드라마를 좋아했다. 특히 남자 주인공과 혼자 상상 속의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일쑤였다.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법칙이 하나 있었다. 시험 기간에는 꼭 재미있는 드라마가 한다는 것이었다.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 두 눈에 레이저를 뿜 듯이 지켜보고 계시는 어머니가 계시는 한 힘들었다. 그래도 참 재미있는 건 부전자전, 모전여전이라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드라마를 그렇게 좋아했던 게 누구를 닮았을까?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 안 하는지 지켜보고 계시다가 드라마 시간이 되면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당시 우리 집에는 안방과 거실에 모두 TV가 있었다.) 어머니도 그 드라마가 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나와서 얼마나 했는지 체크할 거야. 잘 하고 있어"


신신당부하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이미 내 마음은 콩밭에 가있는 걸. 진즉 방에서는 집중이 잘 안된다고 거실에 나와서 공부하겠다고 하고 거실 TV 앞에서 엎드려서 책을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안방에 들어가시고 드라마가 시작되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도 거실의 TV를 켰다. 간신히 나만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소리로. 그렇게 나도 드라마를 놓치지 않고 보곤 했다. 단, 주의할 점이 있다. 어머니가 언제 나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TV 전원에 반드시 손을 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방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TV를 끄고 엎드려서 책 보는 척을 했다. 들키면 안 되니까 말이다. 100m 달리기가 24초인 내가 그때는 어찌 그리 행동이 재빨랐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고등학교 때 한창 드라마 가을동화가 인기를 끌 때였다. 어쩌다가 본 방송을 놓친 주가 있었다. 재방송을 보고 싶은데 재방송하는 시간은 또 학원 가는 시간이었다. 터덜터덜... 기운 없이 학원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가을동화 OST 음악소리. 학원 가는 길에 있는 만화책 대여점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자주 가는 대여점이었기에 일단 들어갔다.


"언니~ 지금 가을동화 재방송하는 거예요?"
"응~ 왜? 보려고? 보고가~"
"그래도 돼요?"
"그럼~!"


무엇에 홀렸을까? 나는 학원을 빠지는 것에 대한 그 어떤 죄책감도 없이 재방송을 봤다. 어머니가 아시면 그야말로 하루 종일 불호령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었을 텐데 그땐 그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이것을 봐야만 한다는 일념 하나만 있었을 뿐. 다행스러운 건 TV를 보는 동안 아무도 가게에 들어오지 않았고, 더 운이 좋았던 건 학원에서 그날 내가 오지 않았다는 전화를 어머니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때는 그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큰일 나는 거 같았다. 어머니한테 혼나는 거쯤은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이런 식으로 몇 편의 드라마를 보았을까. 셀 수는 없지만 상당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K장녀의 소심한 반항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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