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반항
"오늘도 들렀다 갈 거지?"
친구가 묻는다. 나는 당연히 "응"이라도 대답한다. 어디를 간다고 하는 것일까? 힌트는 어머니가 알면 기함할 곳이라는 것. 바로 만화책방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만화책에 푹 빠져있었다. 그 시절의 만화책은 나에게 오아시스 같은 것이었기에 늘 가방엔 만화책이 들어있었다. 물론, 학교 규칙상 들고 다니면 안 되는 거였다. 그래도 몰래몰래 들고 다니면서 쉬는 시간마다 보곤 했다. 친구들도 빌려주고 말이다. 그리고 하굣길에는 꼭 만화책방에 들러서 신간이 있는지 물어봤다. 언젠가부터 주인 언니는 신간이 나오면 날 제일 먼저 빌려주려고 책을 빼놓고 있었다. 그 덕에 신간은 늘 제일 먼저 볼 수 있었다.
그럼 집에서는 어떻게 봤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중독이다 싶을 정도로 만화책에 집착을 했던 거 같다. 책가방에 만화책을 넣으면 어머니의 가방 검사에 들키니까 교복 치마와 내 뱃살 사이에 껴서 집에 들어가곤 했다. 일단 안 들키고 들어만 가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겨울에는 잠바 속에 넣어서 들어오기도 했다.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데, 신간이 나오면 꼭 봐야만 직성이 풀렸다. 교과서 사이에 껴서 보다가 어머니가 들어오시면 재빠르게 덮고 공부하는 척을 했다. 하지만 종종 걸려서 된통 혼이 나곤 했다.
다들 어머니 모셔와
중학교 때였던 거 같다. 다른 반 아이가 자기 오빠 거라면서 만화책을 하나 가져왔는데 내용이 19금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우리 중학교는 여학생 반이 2개 반, 남학생 반이 5개 반이었다. 그 만화책은 순식간에 전교생의 절반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보았고, 마침내 우리 반이 볼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두둥... 내 앞에서 그 책은 수학선생님의 손으로 들어가 버렸다. 걸려버린 것이다. 수학선생님은 내용을 보시더니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하셨다. 호기심이 가득했던 난 아쉬움만 달래야 했다. 그런데, 아쉬움만 달래는 것이 훨씬 나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화가 나신 선생님은 그 만화책을 본 사람들의 어머니를 모두 모셔오라고 하셨다. 그 상황에서 빠져나온 나와 내 짝꿍은 안도의 한숨만 쉴 뿐이었다.
내 마음의 오아시스
왜 그렇게 만화책에 집착을 했을까? 공부는 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 말은 어머니한테 하지 못했고, 어렸지만 그 스트레스를 풀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곳이 만화책이었다. 또 하나 만화책이 좋았던 이유는 어머니가 싫어하시기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그 당시의 반항은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