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만들어가며
청소년기가 끝나갈 무렵
끝없는 고독 속에 온몸을 던진 적이 있다.
실낱같은 빛만이 나라는 존재를 비추고
주위에서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던,
아무리 걸어봐도
나라는 사람만이 존재했던 그때
결국 나는 외로움에 못 이겨 내 안에 숨어버렸다.
청소년기를 지나 ‘주관’이라는 것이
슬며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더 깊은 곳의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를 채우던 것들이 너무 많았고
덜어내야 할 것들이 넘쳐났다.
‘이제부터는 나를 비워야 한다.’
하지만 아직 무엇을 버려야 할지,
무엇을 남겨야 할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버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에 새겨진 모든 것을 내치려는 생각이었다.
물건도, 생각도, 마음도 그리고 사람도.
내 주위에 사람은 많았다.
말 그대로 넘쳐났다.
하지만 내 사람은 없었다.
내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저 숲속에 숨어버린 나무와 같았다.
그저 무리 안에 숨어 존재만 할 뿐이었다.
그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작은 열매 하나,
땅과 하늘의 공간 한 쪽 베풀 사람은 없었다.
가장 가까이 붙어있었기에
가장 가까운 존재라 생각했지만
같은 땅에 옴 붙어
내 뿌리를 마르게 하는 하나의 기둥에 불과했고
서로의 공간을 나누고 있다 생각했지만
내 뿌리만 하염없이 갉아먹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도 버렸다.
사람을 버렸기에 그를 향한 마음도 버렸다.
마음도 떠났기에 그가 담겼던 물건도 같이 던졌다.
바라보고, 아파하고,
던지고, 버리고, 비우기를 하염없이 반복했다.
홀로 어둠에 갇혀
이 일의 끝맺음이 존재할까도 생각했지만
그 생각마저 버리기를 반복했다.
밖을 등지고
내 안에 갇혀 버리기를 반복하던 어느 순간,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나는 놀라 뒤를 돌아보았고
눈앞에는 거대한 벽이 세워져 있었다.
그 벽은 눈부셨고,
그 벽이 만들어낸 그림자마저 광명처럼 다가왔다.
도대체 어디서 만들어진 벽인가 들여다보았다.
내 안에서 버리고, 내치고, 던져낸 모든 것들이
쌓이고 또 쌓여 단단한 기둥이 되고,
벽이 된 것이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내가 무엇보다 증오했던 것들이
내 안의 바운더리가 되었고, 울타리가 되었다.
그들이 내 ‘주관’이 되었고, ‘기준’이 되었다.
버려낸 모든 것이 벽이 되었고,
벽이 세워지면서 공간이 만들어졌고,
공간이 만들어지며
‘나의 것’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외로움이라는,
고독이라는 시간은
그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어둠 속에 홀로 갇혀있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길이다.
하지만 더욱이 분명한 것은
그런 시간은 자아를 찾아감에 있어
무엇보다 분명히 겪어야 하는 고행길이라는 것이다.
주관이 생기고 개성이 생겨나며
자신의 것들이 생겨나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책임감을 갖춰 나가는 길이다.
나를 비우고,
비워낸 것들이 새로운 벽을 채우고,
채워진 벽으로 새로운 보이드를 만들어내는,
그 길을 누구나 걸어내야 한다.
공간을 만들어내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