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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윤규 Mar 29. 2024

[패스트 라이브즈]

그 애틋함에 관하여

참 아름다운 영화. 그리고 애틋한 영화.

그렇기에 다시 한 번 아름다운 영화.

영화에서는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라는 것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떤 방점을 남기는가에 대한 감독의 관점을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방점은 바로 애틋함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나영과 해성의 결실은 이미 12살 때 이루어졌다. 서로 같은 공간에서 존재할 수 있었던 둘은,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의되지 않은 나이였기에 본능에 가까운 형태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나영이 미국으로 떠나게 되면서 그때부터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나영은 어릴 적부터 동생의 이름을 빼앗고, 누군가를 좋아한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단 한 번의 패배 조차 분해하는 능동적 아이였고,

해성은 그 한 번의 승리 조차 미안함을 갖는, 나영이 떠난다는 것에 서운하다는 감정 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능동적 아이였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감정에 나영은 후회를 남기지 않을 만큼 본인의 감정에 충실했고, 해성은 온갖 미련을 남기며 꾹꾹 눌러담아 흘리게 된다.

그렇기에 24살이 된 해성은 나영이 노라라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동안, 12년 전의 인연 조차 잊지 못한 채 인연의 연장선에 뛰어든다.

우연하게 다시 만나게 된 둘은 아쉬움과 거리감으로 서로의 관계를 이어낸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는 마음에 와…, 어…를 남발하곤 하지만 그 말 저편엔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혀 어느 실부터 풀어내야할 지 고민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라는 물리적 거리 뿐 아니라, 유연한 대화가 아닌 서로에게 어떤 단어로 어떤 마음을 표현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왠지 모를 어색한 대화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어색한 흐름은 둘 사이에 일정 거리감을 만들어 낸다.

그 거리감은 서로가 서로에게 아직 더 다가서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다가서야 한다라는 그 마음은 서로를 더욱 갈망하는 그 애틋함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진다.

내가 너에게 닿지 못했다라는 마음이 애틋함이 되었다.

그렇게 나영과 해성의 애틋함은 현재까지 이어졌다.


감독은 인연이라는 인간적 만남과 그 사이의 애틋함이라는 감정이 누군가를 사랑함에 있어 보편적 가치라는 것을 아서를 통해 확장한다.

그 모습은 셋이 한 자리에 모인 바에서 나타난다.

‘해성’의 시선은 본인이 일평생 도달하지 못한 ’나영‘에게 이어져 있고,

’나영‘의 시선은 다시 돌아가지 못할 과거의 기억과 마음의 구석 어느 한 켠 깊이 자리잡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상징인 ‘해성’에게,

‘아서’의 시선은 본인의 세계에 의미를 더해주는, 하지만 본인이 절대로 다가서지 못할 세계를 갖고 있는 ‘나영’에게 이어져 있다.

그런 모습을 보았을 때, 나영과 해성은 전생에 8000겹을 쌓은 부부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제 그 생을 지나 이번 생에는 쌓아온 겹을 풀어내는 인연으로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



감독은 ‘인연’이라는 단어를 통해 사람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가족, 친구, 스쳐지나가는 행인, 그 형태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영화의 인트로에서 관찰자의 입장에서 세 사람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 또한 어쩌면 그들의 전생에서의 관계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 글을 쓴 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너 또한 그런 인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우연히 만난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우연히 만난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서로 상호작용 하고 있음은 필연임에 틀림이 없다.

너의 이면에 대한 호기심, 너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망, 너를 아직 알지 못한다는 그 아쉬움이 애틋함이 되었고, 그 애틋함은 어쩔 수 없이 너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는 필연임에 틀림이 없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의심이 든다면,

그때 다시 한 번 이 영화로 찾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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