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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우 Sep 29. 2016

천하제일 출근대회

관악 블루스

1.

 집에서 나와 동쪽으로 약 100미터를 걷는다. 그리고 관악구청에 도착하면 다시 북쪽으로 200미터를 걷는다. 그렇게 약 5분 넘게 걸어 도착한 곳은 경기장이다. 수많은 참가자들과 함께 계단을 따라 입장한다. 입장료는 1,250원, 저렴하다. '이거 완전 거져먹네'라는 생각과 함께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2.

 경기의 룰은 단순하다. 거주지에서 가고 싶은 목적지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 된다. 내가 사는 곳은 '2호선 서울대입구역', <난이도-상上>의 경기장이다. 이곳의 특징은 강서지역에서 강남지역을 연결하는 2호선의 중간지점으로, 내리는 사람은 적고 타는 사람은 많은 곳이다. 난 오늘도 앞 4번째 순서로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목적지는 역삼역, '사당-방배-서초-교대-강남'이라는 지옥을 겪어야 나타나는 나의 원더랜드이다.


3.

 첫번째 열차가 도착했다. 재빠른 눈치로 훑어보니, 이미 만석에다가 타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몹시 일그러져있음을 발견했다. 그래, 앞에 3명을 보내고, 2분 뒤에 오는 다음 열차에 1등으로 탑승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스크린 도어가 열리자 그 3명은 뒤로 살짝 움직였다. '뭐야, 타지 않을건가...?'라는 생각도 잠시, 그들은 형광등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처럼 열차로 몸을 던졌다. 그렇다. 그들이 뒤로 움직인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4.

 다음 열차가 도착했다. 이 열차를 타지 않는다면 제 시간에 원더랜드에 갈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한 이가 나뿐이겠는가. 첫번째로 열차에 탑승한 것도 잠시, 뒤에 서있던 아주머니가 1차로 등을 밀며 들어온다. 그 뒤에 있던 청년은 아주머니의 등을 밀며 들어온다. 3차, 4차, 5차 충돌이 일어나고, 열차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불가피하게 몸을 섞는다. 의자에 앉아있는 이들 빼고.


5.

 이쑤시개가 빈틈없이 꽃혀있는 통처럼 빼곡히 찬 열차는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사당역에서 6명이 내렸다. 그리고 10명이 탑승했다. 열차 내에 밀도는 더욱 상승했고, 사람냄새가 아닌 땀 냄새로 가득찼다. 교대역에서 12명이 내렸고, 다시 12명이 탑승했다. 강남역에서 20명이 내렸고 , 5명이 탑승했다. 공간은 금세 쾌적해졌고, 좌우로 2발자국씩 이동할 공간이 생겼다. 그러나 상쾌함을 느낄 틈도 없이...고작 2분 뒤, 나는 원더랜드에 도착했다.


6.

 오늘도 한 차례 천하제일 출근대회를 치룬 나는, '강남에 있는 회사들이 다 부셔졌으면.'하고 생각했다. 내년 대선에 <수도권 인구 분산 정책>을 들고 나오는 후보가 있다면, 내 한 표를 기꺼이 드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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