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걸까
2천년 전 예수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세상 모든 곳이 사랑을 전파하고자 했다. 그로부터 2천년이 지났다. 지금 이 세상에는 사랑이 넘칠까? TV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즉답하기 힘들다. 너무도 흉흉한 일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편의점을 가는 중이었다. 길 가운데 누워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어쩜 저리 태평하게 뒹굴거리는지... 보는 내가 행복해졌다. 그 녀석은 나의 기척을 알아챈 듯 서둘러 도망갔다. 문득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고양이는 누군가에게 키워지고 싶을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당연히 아닐테지. 그리곤 금세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저 작고 힘없는 생명체에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네를 시끄럽게 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폭력을 가하거나 심하면 꼬리를 자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더 경악스러운 일은 그런 행동을 지지하는 여론이 많다는 것이다. 나에게 피해를 준다고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혹자는 고양이는 동물이지 않느냐 반문한다. 하지만 그것도 폭력을 정당화할 순 없다. 인간이 아닌 생명체가 인간에게 피해를 줄 경우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미국의 어느 정당의 대선후보가 발언한다. 무슬림은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고. 그런데 그의 지지율은 상당하다. 이런 현상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부터 증오와 미움이 자리잡은 것일까? 그리고 이 증오와 미움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된 것일까.
네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 말했다. 허나 작금의 우리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자신을 챙기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서로 사랑해야 한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증오와 미움이라는 벌레가 마음을 갉아 먹을지도 모른다.
마음의 여유는 어디에서 올까. 마음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타인을 통해서 올 수도 있다. 동물과 식물, 아니면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여유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변의 있는 존재를 사랑하자. 이제 곧 추운 겨울이 온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을 나누자. 돈과 다르게 나눌 수록 불어나는 신기한 것이니까.
오늘 하루는 사랑이 가득한 날이 되길.
메리스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