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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령 Jul 09. 2024

외부 유입의  바람

낼모레 시즌2

친구네 부부랑 같이  남해로 여행 온 날.

몇  달 전부터 기대하던  오늘의 여행엔  날씨가  참  대책 없다. 분명 어제 까진 햇빛 짱짱  맑음이었는데, 오늘은 비가  쏟아지고, 가끔씩 강하게 부는 바람에 우산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간다.

기대했던 남해  다랭이 밭에 노란 유채꽃은  보지도  못하고, 근처 식당에서 밥만 먹고, 내리는 비를  피해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화장대 앞에서 거울을  본다. 역시나  가늘고  곱슬머리인 나의  머리카락 지구의  중력을  거슬러  위로  구부정하게 뻗쳐있거나, 옆으로 누워서  이마에 붙어있다.  

나의 외모 평가가  타인의  시선에 집중될 무렵부터, 부스스한 곱슬머리는 대체불가 스트레스였고, 낼모레  50세를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가장 길들여지지 않는  신체 구성 요소 중 하나다.

"미진아, 네 방 화장대에  솔빗 있어? 머리가 엉망이야."

발걸음은  벌써 친구네 방문을 넘어서고  있다.

"나도 솔빗은 없는데,  이거  한 번 써 봐."

친구는 삼각기둥 모양의 코발트 색 벨벳 파우치를  열어

드라이기를 꺼내 준다.

 '드라이기를  이렇게 고급스럽게  들고  다닌다고?'

드라이기에 빗을 꽂아 주는 친구의 손끝으로 시선을 모아보니, 앗! 이것은 ᆢ "다. 이. 슨."이다.

"야, 다이슨 드라이기네? 엄청 비싸던데, 언제 샀어?"

눈이 커진다. 친구는 드라이기 사용설명과 주의사항을 꼼꼼히 알려준다.

"써봐, 내가 다이슨 써 보니 그동안 평범한 드라이기로 어떻게  머리하고 다녔?라는 생각이 들더라. 돈 값  함."

내방으로  돌아와 화장대 거울로 드라이기가 지나간 자리마다 차분히 곧게 펴지는 나의 머리카락들을 본다.

보지 말았어야  했다. (불견)

"미진아, 미진아, 이거 얼마야? 어디서 샀어?"

묻지 말았어야 했다.(불문)

"오빠, 이거 함 봐봐. 내 머리도 봐봐. 미진이는 사서 쓰고 있는데, 좋데."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불언)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두 남자의 시선이 내게로 모인다.

1초, 2, 3초는 넘지 않았다. 

"영아, 사라. 사라."

사나이 체면이 있지. 그 당시  남편은 그런 분위기에 이  대답 말고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친구와  침대에 나란히  붙어 앉아 급 검색 후   결재를  했다.

 "~ 오빠, 6개월  무이자래."


  며칠 후 고가의  다이슨 드라이기는 집으로  배송되었다.

나는  남해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나?  환불할까?

친구는 다이슨이 있다. 나는 없다. <현실 1>

써보니 좋다. <현실 2>

두 가지 현실은 홈쇼핑 쇼호스트의  상품설명과 구매설득력, 초조한 방송마감 카운트다운보다 강력한 유혹의 바람이 되어 내게 불었고, 나의 정신은 바람 따라  거침없이 흔들렸다.  

그리고  며칠 후(금방 왔다) 택배 기사님은 커다란 박스에  구색 맞춰 구비된 다이슨 드라이기를  눈앞으로 가져다주셨다. 갈등은 했지만, 결국 환불기간까지 드라이기를 구매 취소 신청 하지  않았다.  기대보다  오래 유지되지 않는 드라이기의 화려한 웨이브 컬링  효과를 보강하기 위해 컬 유지 크림과 컬스프레이를  추가로  구매한 나. 소비에 소비를 더하기 했다. 나는 앞으로 3년간  머리카락을  파마하지 않기로 했다. 일 년에 한 번하는 펌이 대략 24만 원 정도이니,  3년은  파마하지 않아야 드라이기 가격을 뽑는다. 아직  미숙한 손놀림으로 매번 다이슨  드라이기로 만든 풍성하고  완벽한  웨이브는 한 시간 후엔  처음에 해 놓았던 스타일은 사라지고  없다. 파도에  쓸려나간  모래성처럼 사라져 버리는 아름다운 웨이브의 대가는 아직도 한 달에 한 번 카드 값으로 성실히 납부 중이고, 특히나 요즘은  날이 습하고 더워 웨이브는 고사하고 집게 머리핀으로 올림머리만 하고 다닌다.  고급스러운 드라이기 케이스 뚜껑에 먼지가 앉는다.

그 당시 나는 나를 단정히 가꾸어 부스스하지 않은 머리로 예뻐지고 싶었고,  나  빼고 다 있을 것 같던 드라이기가 가지고  싶었다.


  휴일 오후 남편과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한 손에  커피를 들고 텔레비전  리모컨을  고정하지  못한다.

 채널엔 연예인들이 나와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저 채널은 남자 연예인들끼리 외국여행 중이고, 요 채널은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여행지에서   5성급  호텔에 편안히 머물 수 있다며, 당신의 삶에 가치를 높이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전화번호만  남기라고  한다. 다시없는 기회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유명 연예인들이  나와 여행지를  소개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프로그램은  공산품 제품구입을 목적으로 하는 홈쇼핑 채널과  유사하다. 단지  시간적  여유와  상품 구매처를 정하지 않고, 상품 감상에서 화면이 끝날뿐이다.

홈쇼핑보다  더  매력적인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사전에 시각ㆍ청각적으로 입력된 여행지를 다시 찾아보고 저렴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판매처를  찾는 행위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행지나 음식(맛집)을 능동적으로 찾아 정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홈쇼핑 보다  선택의  시간이 길어  관념적으로 체험하는 소비의 행복이 길어진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유명 셀럽이나  연예인들이 다녀간 곳을 자신도 경험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짐멜은  인간은 차이를 본질로 하는 존재라고 한다. 

<강신주 - 다시 쓰는 상처받지 않을 권리 중에서 발췌>

우리나라에서 즐기는 골프 클럽의 라운딩은 시간적인 여유와 안정적인  고소득이  보장되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없는 취미였다.

자신을 보편적인 타인과 구별하여  나타내기 좋은 취향이다.

그러나 골프  레슨 유튜브 방송과 스크린 골프의 대중화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취미가 되었다.

스크린 골프를 하향 평가하는 골퍼들의 여러 이유  자신들의 독특함을 나타내던 고급 소비 취미저렴한 가격으로 급속하게 대중화되면서 서로의  계층을 구별 짓는 경계가  희미해지는 현상도 이유이지 않을까? 

신여성의  대표적 인물인  코코샤넬도  상류층에서 아래로  흐르는  패션유행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지만,  거리의 패션이 상류층의 명품의류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몹시 불편해했었다고 한다.


  자신의 차별성과 고유성이 뚜렷해지려면 그만큼  많은 자본을 소유해야 한다.

모든 대중매체들과 인터넷, 사회 문화적 흐름은  개인의 고유성(독특함, 개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비하여 신제품으로 변화하라고 한다.

개인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자신의  개성이나 취향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꾸준히 구매해야  한다.

외부에서  끊임없는 유입되는 소비의  바람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이끈다.

자신의 품격과 지식을  나타내는  책.

자신의 신체적 개성을 표현하는 패션.

자신의  취향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음식과 음악.  취향에  맞는  독특한 여행지.

심지어 종교 선택에도 공짜가  없다.

여기저기에서  자신만의 고유성을 표현하고  유지해 보라는데, 그러려면  시간(여유)과 돈, 그리고  자신의  독특함을  바라봐주고  평가해 줄 수는  사회적 관계가  필요하다.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도 돈이 든다.


  여유롭지 못한 노동자살면서 나의 고유성을 표현하고  유지하는 것은  힘들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는 것보다 가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꼭 필요한 단순한 생활을  하는 미니멀 라이프 삶이라도 그 속엔  취향과 개성은  표현된다.

지속적으로 소비욕망을  자극하는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환경 속에서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서(묻지 않고) 소비 충동을  조절해야 한다.

그래서  연예인과 세럽들이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마도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대리 만족할 수 있는  아바타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

현재 자신이 갖출 수 없는 능력과 시간적 여유, 물질적 풍요가 갖추어진  존재. 또한 이상적인 신체적  조건까지 완벽한 자신이 지향하는  고유성이 현실화된 존재를 관심 있게 바라보는 이들이 존재한다.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나는 불견, 불문, 불언하지  못하여, 행복 한 웃음을  내보이며 예쁜  옷을 입고, 여러 개의 맛있는 음식을 주문해 먹으며 이국의 풍경을 소개하는 연예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집중해서 본다. 가끔은 OTT로 찾아보기도 한다.

이것이  이성과  감성의 괴리감 속에 존재하는 멈출 수 없는 나의  삶이다.

나도  '언젠가는  저들처럼ᆢ'이라는  꿈은 가질 있지  않은가?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며 밥솥에서 퍼  담은 하얀  쌀밥을 숟가락 뜬다. 하얀   위에  잘 익은  김장 김치  한 조각을  올려 쌈 싸듯 말아, 입 안  가득 넣어 씹는다.

마늘과 매운 고춧가루, 따뜻한 탄수화물의  절묘한  조화.

이탈리아의  푸른 해변이 아니더라도 프랑스 어느 골목 미슐랭 식당  음식이 아니어도 참말로  맛나다.

나의  취향과 독특함은 쉿! 비밀이라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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