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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령 Jul 03. 2024

날마다 변신

낼모레 오십 시즌1

“우아앙~ 쿵, 우아앙~ 쿵.”      

티라노사우르스와 스피노사우루스의 포효를  내지르며,  양 그림이 그려진 실내복을 입은 나의  어린 두 아들이 손톱을 세우고 얼굴을 찡그리며 작은방에서 순서대로 나온다. 거실과 아이들 방 벽지엔 공룡들의  이미지가 가족사진 보다 더 많다.

다행스럽게도 아들만 둘이라 화려하고 아름답게 변신하는 요정들 이름 까진 외우지 않아도  되었다. 남매였다면ᆢ 세상에나!

공룡의 끝에 새로이 등장한 인물은 지구와 우주를 지키는 변신 용사들이었다. 용사들은 늘 쫄쫄이 스판 점프수트를 입는다. (화장실에선? ᆢ  어찌  해결하는지  궁금하네.) 엄청난 능력의 용사들은  싱글과 정예멤버  두 가지  버전으로 나뉜다. 그들은 현실 속 어느 공간에서도 실존하지 않는 허상이지만, 용사들이  휘두르는 무기나, 타고 다니는 것들은 나의 가족이 살고 있는 공간에 실존하여 마트 장난감 코너에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요란한 불빛과 소리까지 텔레비전 속 화면과  똑같았다. 당연히 남편의 지갑도 생방송으로 열리며 카드나 현금이 내 눈앞에서 긁히거나  사라지곤 했다. 용사들은 정말 강력했지만, 곧 한계에 부딪쳤고, 패배를 직면하여 좌절하고  있으면  늘  하늘에선  새로운 무기가 내려오거나, 뜨거운  우정으로 서로 합체해 더욱 크고 강력한 모습의 로봇으로 변신했다. 그럼 우리 집에 모셔둔 용사들도 합체를 해야 한다. 구색 맞춰 새 용사들을 입양해야 했다. 나의  아들들은 작은 용사들을 손에 들고, 월요일은 검은색 용사 화요일은 파란색 용사 수요일은 노란색 용사가 되어 매일 쳐들어 오는 악마나 외계인을 무찌르며 지구들 열심히 지켰다. 전쟁터는 늘 우리 집이었는데, 나는 적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우리 아들들은 정말 혼심의 힘으로 싸웠다. 너무 열심히 지구를 지켜서 에너지가 떨어지면 내가 사놓은 달콤한 간식들과 밥으로 방전된 체력을 보충했다. 내 아들들이 무임금으로 날마다 지켜낸 우리의 지구는 아직도 이름 모를 후배 용사들이 매일 밤 지켜 내고 있을 것이다.


   나도 매일 밤 공주를 꿈꾸던 시기가 있었다. 백설 공주부터 바다에 사는 인어공주까지 동화책 수만큼 공주는 다양했고, 매일매일 멋진 왕자님과 결혼도 했다.

 남편의 변신은 30대에 다시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호랑이가 되는 날도 말이 되는 날도 자동차가 되는 날도 있었다. 영. 유아기(1~7세)까지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모호한 아이들은 이상향을 꿈꾸고, 특별한 노력 없이 늘 자신이 바라는 변신이 가능했고, 주변에서도 불가능을 얘기하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의 유토피아를 세워줄 수 있었다.

그러다 아동기에 접어들고 학교를 입학하면 현실의 문이 열리고 꿈은 문 밖으로 나가고 열등감이라는 것이 들어온다. 부모들의 능력에 차이가 있고 자신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아이들은 더 이상 지구를 지키지 않았고, 인간을 벗어난 변신을 하지 않는다. 남편 또한 두 다리가 네 다리가 되지도 않는다. 그 쯤 엄마인 나의 변신이 시작된다. 온화한 날이 많던 나는 눈썹이 사이가 몰리고, 목소리가 커지며, 아이들의 이름을 조용히 부르는 날보다 험한 목소리로 부르는 날들이 많아진다. 가끔은 이름이 아닌 ‘이 새끼, 저 새끼’라는 말을 써가며 아이들을 부르기도 한다. 내 안에 있던 정신 줄 놓은 여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온다. 수없이 업그레이드되어 변한 그녀는 막강한 사춘기 아들들과 강하게 맞선다.


   아들들과 피 터지는 전쟁 속에서 가끔 지어지는 온화한 미소가 어색 해 질 때쯤, 아이들의 사춘기도 막바지에 이른다. 그 쯤 나와 아이들은 각자의 변화를 위해 사회와 타인 속에서 혼란스럽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잘 잡는다며,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고 하더니, 어느 날은 아침형 인간은 저녁에 눈 뜨고 일하는 저녁형 인간보다 창의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또는 외형적 성격의 사람은 리더형이라고 하더니 오지랖 넓은 인간 일 뿐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귀와 눈이 얇은 나에게 세상살이는 늘 위태로운 외줄 타기 같았다. 내 미래도 도통 방향 지시 화살표를 그릴 수 없는 현실에서 자식의 미래까지 조언해 줄 용기가 없었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의 몫이라고 말하며, 아이들에게 "알아서 잘하자.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라는 말을 하며 혹시나 잘못 권해준 것들로 돌아올  원망과 책임을 회피했다. 우리 집안은 흙 수저니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것을 여러 차례 알렸다. 불편한 마음을 느껴가며 내가 해 줄 수 없는 것들을 분명히 밝혀야 했다. 엄마도 환경을 골라서 태어날 수 있었다면, 지금의 모습은 아닐 거라고 했다.


   늘 후회는 과거에 머물고 미래는 불안함에 걱정스럽다. 어제의 나도 완벽하지 않았고, 오늘의 나도 만족스럽지 않았으며, 내일의 나도 별처럼 반짝이지 않을 것이다. 신도 완벽하지 않은데, 내가 이만한 것도 어쩔 땐 정말 다행이라고 안도한다. 완벽하지 않은 나에게서 태어난 나의 아이들이 방을 쓰레기통처럼 해 놓은 꼬락서니에 혈압이 어디까지 올라와도 저것들이 건강이라도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싶은 날도 있다. 누구나 인생이 바라는 대로 편안하지도 쉼 없이 반짝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어설픈 마음을 달래고 하루하루를 산다. 월요일이라 괴롭다가도 오늘이 금요일이라 기분이 좋은 루틴을 4번 반복하면 한 달이 채워지고, 그런 한 달을 12번 반복하면 무사히 1년을 살아, 12월 마지막 날 또다시 로또 1등 당첨을 바라는 새해 소망을 담아 기도하고 있는 내가 있다. 무엇이든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사실 내가 이룰 수 있는 변신의 폭과 가지 수도 환경과 능력에 따라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다.


   꽃은 꽃밭이 아닌 돌 틈과 도로 옆 작은 맨홀 뚜껑 위, 바다로 흐르는 배수구 구멍 사이도 활짝 핀다. 물론 그곳에서 생명을 이어가기 힘들긴 하겠지만 잠깐이라도 온 정성으로  예뻐 본 시간들이 있었으니 행복하지 않을까? 나와 우리 가족들도 모든 것이 완벽한 환경 속에서 꽃 필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운명이 그리 약속되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으니,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대한 애쓰며 허락된 아름다움으로 활짝 펴봤으면 좋겠다. 펴보려고 노력해 보지도 않고, 시들어간다면 시간이 지난 뒤 후회라는 것을 꼭 하게 될 테니 말이다. 오늘도 내가 바라는 변신을 위해 일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모자람 많고 실수 많은 나는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에 얼마큼 다가갔을까? 한 걸음 나아가기 힘든 날이 있으면 두 걸음 나아가기 편한 날도 있겠지. 세 걸음 나아갔을 때 반보 뒷걸음쳐야 하는 순간에도 숨을 고르고 다시 변신을 꿈꿀 수 있는 용사가 되어가길 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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