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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령 Jun 04. 2024

7300일의  나

낼모레 오십 시즌1

   “조금 늦어요. 먼저 식사하고 계세요. 식구들 밥 챙겨주고 바로 나갈게요.”

10년을 유지한 계모임 단체 채팅 방에 자주 올라오는 문장이다. 모두가 이해하는 정당성을 가진 문구.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의 일상은 아이를 먹이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쓴다.  육체적 노동과 정성이 가득한 시간을 쏟아 아이의 반찬과  남편의  반찬을 따로 준비한다. 나의  결혼 생활은 1년 2년 3년 … 어느덧 20년에 도달했다.

 "365일 × 20년 = 7300일."

 7300일 동안 매일 3끼의 식사를 하루도  빠짐없이 준비하진 않았으니,  식사 후 후식 준비와 명절기제사가 있는 날에 반복적으로 차린 상차림을 추가로 계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략 21,900번의 식사준비가 계산된다. 시간으로 다시 계산해 보면 얼마나 될까? 장을 보고 음식 재료를 다듬어 조리하고, 식사를 마친 후 설거지를 하고 주방을 정리한다. 틈틈이  불규칙적으로 한 설거지 횟수는 식사준비의 횟수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거참, 막상 계산해 보니 진짜 엄청나네!' 

식물처럼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아들들과 남편을 위해 나는 매일 똑같은 고민을 했다.

‘오늘은 뭐 먹지? 냉장고에 남은 재료가 뭐가 있더라? 가족들이 고양이들처럼 매일 똑같은 걸 먹을 순 없을까?’

요리책도 4권이나 싱크대 위에 놓아두고 이것저것 따라 해 보기도 했다.  심히 하는 것만큼 꼭 성과가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서 음식  맛이 별로인 날도 있었다. 눈치 없는 아들들이 내가 한 음식에 대해 불평을 입 밖으로 조금씩 쏟아내기 시작한다. 자식들보다 나를  조금 더 아는 남편이 서둘러 순발력 있게 말한다.

   “야, 야, 아빠도 아무 말 안 하고 먹는다. 엄마가 해 주셨는데, 잘 먹겠습니다. 하고 그냥 먹어라.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말고.”

눈치 빠른 남편은 자신의 아들들을  살리고, 덤으로 식사 후 소파와 혼연일체 된 자신의 휴식도 보장받는다.


    지구에 거주하는 평범한 기혼 여성이라면 피할 수 없고 포기할 수도 없는  식사준비는 나 홀로 힘들다는 유별함을 가질 수도 없고,  특기도 되지  못했다. 늘 ‘밥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뭘 해야 하지?’하는 고민이 20년 동안  머릿속에서 둥둥 떠 다녔다.

그런  시간들을 하루하루 보내며  라면  물도  못 맞추던  내가 만들어 내는 국과 닭ㆍ돼지ㆍ소고기  요리들이 지금은 몇 가지나 된다.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아들은 군에 입대하고, 유난히 입맛이 까다롭던 작은 아들의 키가 180센티미터를 찍었다. 키가 작아 늘 걱정이었던 둘째  아들의 완성도 넘치는 키를 보니  ‘ 이제 나 밥 그만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결혼 후 혼인서약처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밥 하기를 1년 전부터 서서히  폐업하기 시작했다.  잘하지 못하던  음식솜씨는 성장을 멈췄다.  내겐 음식을 더 잘하고 싶다는 목표도 없었다.   냉장고에 뽀얀 곰국과 수타 짜장면, 짬뽕, 다채로운  포장지의 볶음밥류, 등심 돈가스, 치즈 돈가스, 꼬마 돈가스, 삼겸살 목살, 양념 소불고기까지 냉동식품들로 칸칸이 쌓이기 시작했다. 현관문  앞에  배송된 냉동식품들은 나의 시간에  여유를 제공했고, 생활  패턴에  변화를 가져왔다.  출근하기 전 운동을 하고 무료  도서관 수업을 듣고, 퇴근 후 글을 쓰고 주말엔 짧은 여행과 드라마 정주행도 하는 신여성의 삶이 시작되었다.


   주변 환경이 바뀌면 새로운 인간관계도 옵션으로 따라온다. 운동을 하는 곳에선 코로나 이후 척박하기만 한  불경기에도  샘물 같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 보였. 그들의 시간과 공간은 나와는 결이 확실히 달랐다. 세상이 온통 불공정해 보이고 많은 것을 가진 그들에 대한 부러움은 상대적 박탈감과 짜증, 우울감을 한 바가지 달고 내 마음에 묵직하게 닻을 내렸다. 가지지 못한 자의 슬픔이 녹아있는 잿빛 닻을 마음속에서 힘겹게 밀어내고, 우울감을 벗고 공중에 사방팔방 흩어지려는 나의 정신을 붙잡는다.  이어지는 치유성 짙은 일방통행 같은 독백의 외침.

   ‘많은 사람들의  편리함과  우아함은  인정.  그렇지만 나도 불행하진 않잖아. 돈이 행복의 유일한 기준도 아니고, 여러 조건 중 하나일 뿐이잖아. 나 요즘 밥 안 해서 편하고 너무 좋. 식구들도 모두 무탈하고. 돈이 많아도 가족들 중에 한 명이라도 아프면 내가 행복할 수  있겠어?’

불안과 우울한 마음은  민들레 홀씨처럼  서로에게 이어져 일정한 공간을 만든다. 

그러나, 그 공간도 틈많아서 털어 내려한다면 볼이 볼록 해 지도록 깊게  들어마신   숨을  시원스래 내뱉으면 후욱하고 사방으로 먼지처럼 날아가 버린다.

돈이  있으면 딱 좋겠다.  걸려라 로또야! 터져라 대박운세! 하면서도 신께 올리는 소원 성취 종이 위에 또박또박 쓴 소망은 가족들의 건강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은 나의 변치 않는 소망이다. 나는 이미 그 속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자꾸 다른 곳을 곁눈질한다.  돈이 더 넉넉하다면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해보는 화려한 공상들을 접고 좀 더 구체적인  만의 목표를 세워 보기로 했다.

 능력으로 넘을 수 있는 것은 전생에 나라를 구해 현생에 돈이 넘쳐나 그들이 아니고, 어제의 나다. 어제 보다 좀 더 나아진 오늘의 나, 오늘의 나보다 조금은 더 나아질 내일의 나. 나의 이 70세라고 가정한다면 아직 20년 정도가 남았다.

 365일 × 20년 = 7300일.

7300일 동안 조금씩 나아질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넘어서고 싶은 나를 지나 완성하고 싶은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매일 조금씩 걸어본다. 마지막 7300일의 나를 만나기 위해 한걸음 두 걸음 하루에 조금씩  어제의 나를 지나, 오늘의 나를 만나고 내일의 나를 향해 또박또박 걷는다. 오늘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내일도 웃으며 한 걸음 걷기.

씩씩하게  아자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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