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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령 May 22. 2024

엘리와  별이

낼모레  오십  시즌 1

   청소기 투명 플라스틱 거름망 솜사탕기계   설탕  실타래 같이 푸실푸실  길게  이어져  엉켜 돌아가는 짙은 회색 털 뭉치가 보인다.  먼지통에 털과 섞여 들어가 있는  고양이 모래는  짜르륵 짜르륵  소리를 내며  휑휑 돌고 있다. 웅웅~윙윙~  청소기 소리에 두 눈과 귀를 집중해 쳐다보고 있던 두 마리 고양이는 순서대로 하품을 하며 소파와  캣타워 위에서 잠들기 좋은 자세를 찾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편안한 곳을 찾아 자세는 잡았지만,  청소기 소리가  신경이 쓰이는 듯 눈으로는 청소기의 움직임을 쫓는다. 소파 위에 있던 녀석은 청소기의  스틱이  자신과  가까워 지자 가볍게 폴짝 뛰어내려온다. 패브릭소파 위로 고양이들의 회색 털이  가득하다. 가족들의 머리카락이 이렇게 소복이 소파 위로 떨어져 있다면 분명 화가 어디까지 솟았을 테지만, 고양이들의 털은 언제나 무죄. 공기 속에 존재하는 산소같이 의식되지  않는다. 텔레비전 밑에 놓인 글라스형 까만 장식장 위와 침대 위  이불 위에도 고양이 털이 가득이다. 지저분한 걸 참기 힘들어하는 나의 눈에도 거슬리지 않는 녀석들의 털. 치운다고 치워도 치워지지 않고, 식탁 위나 싱크대 위에 수시로 뛰어 올라와 편안하게 한 쪽 다리를  들어 올려  턱밑과 귀 밑을 방정스럽게  탈탈탈  털어 된다. 우수수  폴폴폴 떨어지는 털의  양은 차라리  보지 않는 게  현명하다.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한 마리는  싱크대 위에서 한  마리는  내 종아리 옆에서  밥과 간식을 내놓으라고 울어 댄다. 분명 2시간 전에 준 점심 사료를 기억하는데, 안 먹은 척 코 위에 고양이 주름을  내천자로  만들고  이빨을 보이며 야옹 거리며 보채기 한 판이 들어온다. 양손에 분홍색  고무장갑을  끼고 하얀 세제거품을  내며 그릇을  씻으면서 싱크대  위에서 야옹 거리는 동그란 별이와  눈을  마주한다.

   "안 돼. 엄마한테 이러는 거 아니야. 많이  먹으면  또  병원 가야  돼."

하고 눈에  살짝  힘을 주며 말을 건다. 분위기가  싸하다는 걸 느낌 녀석은 싱크대 밑으로 폴짝 뛰어내려와 내 다리에 머리를 툭툭 치며 비벼 댔다. 헤드번팅은 녀석들이 아쉬울 때 엄청 해 댄다.  그러고 난  후 두 눈을 위로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면 나도 녀석을 향해 웃으며 기어이  끼고  있던  고무장갑을 벗어  별이를 안아  올린다. 내 속으로  낳은  내  아들보다  내가 더  많이  웃어주는 사랑스러운  반려묘들.  어떤 모습이라도 나를 웃음 짓게 하는 녀석들의 몸짓이 사랑스럽다. 엘리와 별이는 회색 바탕에 검은색 굵은 무늬가 있는 아메리칸 숏헤어 실버색 품종의 아이들이다. 어미인 암컷 엘리가 낳은 수컷 별이는 아들 고양이다. 엘리가 낳은 새끼냥이들은 모두 친정과 가까운 지인에게 분양되어 행복히 지내는 모습을 지금도 가끔 본다.


   6년 전 새벽 산통을 느낀 엘리가 침대에서 자고 있는 이불속으로 들어와 잠이 깬 나는 남편이 미리 준비해  종이 박스 산실로 엘리를 데리고 갔었다. 조심스레 커다란 상자 안으로 들어간 엘리는 새끼냥이를 낳았고, 나는 엘리를 도와 갓 태어난 어린 냥이의  얼굴과 몸을 물티슈로 닦아 주었다. 이어서 또 한 마리가 나오려  했고 첫 째를 낳은 뒤 바로 분만하기 힘들어하는  어미 엘리를 도와 반쯤  몸이  밖으로 나와  있는  새끼 냥이를 내가 직접 손으로 살짝  잡아당겨  빼냈다. 막을 찢고 탯줄을 가위로 잘랐는데, 초보 산파였던 나는 탯줄을 실로 미리 감아 놓아야  한다는 걸  깜빡 잊은 채 가위로 탯줄을  잘랐더니  빨간 피가 쏟아졌다. 당황해서 정신없이 허둥거리며 실로 탯줄을 묶었던 기억이 난다.  큰일을 치른 후 누워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엘리를 잠시  쳐다보다가 냉장고에 미리 보관해둔  닭 가슴살을 냄비에 삶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끓여  하얗게 익힌 닭가슴살을 꺼내 비닐장갑을  끼고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고기를 가늘게 찢었다.  뽀얀 닭 육수와 찢어놓은  고기를 섞어 그릇에 담아  엘리에게  주었다. 세상 맛있게 먹던 엘리의 모습은  첫아기를 낳고 병원에서 진하게 끓여  내어 준 미역국을 진심으로 맛있게 먹었던 오래전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수고했어. 엘리야. 네 새끼들 너무 예쁘다.” 하며  닭육수를 먹고 있는 엘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엘리가 새끼들을 낳은 그날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기가 막힌 날이다.’라고 생각했었다.  

엘리를 닮은 새끼 냥들은 부지런히 커서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캣타워를 기어오르고, 아들들의 품이나 내 품에서 잠이 들기도 했다. 아들들의 책상 위나 의자 위, 이불, 베개, 교과서 위에서 잠들기도 했다.  집 안 가득 행복과 웃음을 만들어 내던 새끼냥들은 이제 모두 어른 냥이가 되어 멀리 떨러 져 각자의 주인들과 함께 집안을 성큼성큼 걸어 다닌다. 친정집으로 간 새끼들이 가장 뚱뚱한 고양이들이 되었다. 남편이 친정에 갈 때마다 돼지 냥이라며 안아 보는데, 첫눈에도 정말 크고 무거워  보인다. 부모님께 사료를 조금씩만 먹여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들은 먹을 거 달라고 자꾸 우는데 어떻게 안주냐고  하셨고 조금씩 자주 먹이다 보니 비만 고양이들이 되었다. 그래도 건강하다고 하니 더 이상 잔소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몇 년 전 별이가 아파 이것저것 검사하고 치료했더니, 200만 원에  가까운 비용이 나왔다. 검사 결과 단순 장염이었는데, 치료비보다 검사비가 엄청났던 기억이 난다. 너무 아파하는 별이를 보며 몇 시간을 울면서 이 병원 저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치료를 했다. 별이가 다 낫고 나니 엄청난  비용이 적힌 계산서를 보고  마음을 진정시키는데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남편은 차마 그 당시 말은 못 했지만, 돈이 부담스러워 죽을 판국이었다고 했다. 서민인 우리 형편엔 분명 엄청난 지출이었다. 다행히 그 후로 별이와 엘리 모두 크게 아프지 않았지금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남편은,

   “고양이 치료비로 큰돈 지출은 곤란하다며, 다음엔 안 될 것 같다.”라고 말했고, 나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 당시 고양이를  키우고 있던 지인이,

   “너무 비싸지 않아? 감당이 돼?”하고 물었다.

나는,

   “내가 만든 생명이라서ᆢ 책임과 무게가 있으니까요.”라고 말했었다.

지금까지 우리 집 냥이들이 나와  식구들에게 준 행복은 200만 원보다 가치로웠고 지금도 반짝거린다. 언제나 퇴근 후 문을 열면  문 앞에서 나를 반기는 별이를 그때 잃지 않아 다행이다. 매일 아침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내게로 초록색 두 눈을 마주치며 걸어와  폴짝 뛰어 식탁 위에서 나와  눈 마주침 하는 너를 오늘도 안아 올린다. 너의 얼굴을 내 얼굴로 비비고 부드러운 너의 작은 발을 내 손에 넣고 살짝 움켜쥐어본다.

   “별아, 잘 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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