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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령 Jan 22. 2024

10년을  지나  5분의  끝

낼모레  오십 시즌1

“이 부츠는 발목 부분 가죽이 딱딱해서 신고 다니면 정강이가 아플 것 같아요.”

   “네, 손님 그건 걱정 마세요. 가죽이라서 신다 보면 늘어나서 편해져요.”

   “예? 죄송하지만, 그럼 이 신발은 안 되겠어요.”

남편의 팔을 잡고 상점을 나온다.

   “영아, 안 사?”

   “응. 신발이 처음부터 편해야지. 신으면서 내 발에 맞게 질을 들이려고 하면 발에 상처 나잖아.”

   “하하, 그렇긴 하지.”

   “오빠, 꽃모양 핑크색  샌들 알지? 그 신발 사서 신고 발등 까여서 한 동안 밴드 붙이고 다녔잖아. 구입할 땐 엄청 편해 보였는데, 막상 신고 오래 걸어보니 발등 피부와 마찰이 생겨서 물집도 생기고 아팠지. 마찰이  있는 거친  가죽 부분이 부드러워지라고 사포로도 밀었었어. 그 후로도 동안은 불편했지만,  피부도  마찰로 단단해지고, 샌들 가죽도 제법 부드러워져서 이젠 그 샌들 편하게 잘 신고 다녀.”

   “대부분 신발은 조금씩 그렇지 않아?”

   “아니, 나는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게 있어.  처음부터 내 발에 최대한 맞는 걸 찾아  구입해.”


   그날, 내게 맞는 부츠는 포기하고 남편의 골프채를 우선적으로 보기로 했다. 형님이 사용하던 걸 받은 골프채는 남편이 집에 가만히 둔 기간만 10년이다. 최근에 골프에 입문한 남편의 골프 실력도 참담하지만, 탄력성이 유독 좋은 채의 재질이 남편과 합이 맞지 않아 남편이 친 골프공은 진짜 정신없이 여기저기로 날아다녔다. 남편에게 맞는 채는 기존의 채에 비해 탄력성이 떨어지고 무게가 더 나가고 각도도 좀 더 작아야 한다는 주변인들의 조언이 있었다. 판매 직원분께서 설명해 주신 대로라면 남자들의 골프채는 채의 종류별로 선택 옵션이 40가지 이상 된다고 한다. 세상에ᆢ 이쯤에서 중고로 무턱대고 세트로 구입한 내 골프채도 궁금했다.

   “제가 쓰고 있는 채는 000 제품인데요. 그건 저에게 맞을 까요?”

   “네. 여성분들은 채 종류별로 선택가능한  옵션이 2개뿐 이어서 손님 체격엔 지금 사용하고 계신 채가 맞습니다.”

   “아, 네. 여성용은 종류가 참 간단하네요.”

남편은 새로 구입한 채를 트렁크에 넣지도 않고 차량 뒷좌석에 곱게 두고 운전했다. 예상보다 골프채  금액이 비샀지만, 남편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다음날부터  남편은 연습장에서 새로 구입 채로 골프 레슨을 받았는데,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다. 공의 방향성이 조금 진정되었다며, 예전에 쓰던 채보다 공치기가 편해졌다며 기뻐했다. 새로 구입한 채에 손가락 피부가 약간 벗겨졌지만, 웃으며 밴드를 며칠 붙이고 다니기도 했다.

   내 부츠는 처음에 사려고 했던 디자인과 소재를 바꿔 구입하게 되었는데, 집으로 배송된 이후에도 반품을 고민했지만, 결론적으로 나에게 가장 알맞은 제품 같아 신기로 했다.


  “나에게 맞다. 나에게 어울린다.”는 건 뭘까?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 일까? 7년을 못 보다 얼마 전 만난 친구가 있다. 새 집으로 이사 한 친구를 위해 가져간 커다란 휴지뭉치를 두 손에 들고 정말 오랜만에 본 친구는 얼굴이  예전에  비해 조금  복스러워지긴 했지만, 따뜻한 목소리도 그대 로고, 환하게 웃는 모습도 여전했다. 우리는 치킨을 시키고 라면을 끓여 호호 불어 먹으면서 어린 시절 학교 앞 분식집에서 먹는 라면처럼 맛있게 먹었다. 자연스러움. 불편하지 않은 시간들.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긴 시간 동안 나의 마음 애씀이 없는 시간이 편안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그와 나누는 대화 속에 나의 마음 다스림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어떻게 저런 말을 나에게 할 수 있지? 내가 만만한가? 분위기상 지금 내가 여기서 화내면 안 될 것 같은데. 다른 사람도 있고. 참자. 참자. 가끔 말은 저렇게 해도 인성이 악한 건 아니잖아.’

마음에 상처를 받아가며 겉으로는 웃고,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관계를 이어 나가는  인연이 있었다. 신발에 까진 피부에 연고와 밴드를 붙이며 아픔을 참아가며 신는 신발처럼 불편한 만남을 이어가는 시간들이  잦았다. 이런  인연도 내가 단단해지고 상대가 부드러워져 어느 날부터는 나의 마음 애씀이 없는 편안한 시간이 가능한 날들도 점점 많아졌다.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지만,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에 좀 더 집중해서 그 인연을 가꾸어 보려고 했던 나의 노력이 무너져 버린 날. ‘친구’라고 생각했던 인연은 ‘아는 사람’이 되고, ‘알았던 사람’이 되어 버렸다. 우정보다는 미움과 원망이 가득하고, 상처 난 내 마음에 함께 남아버린 인연의 허탈감이  가득하다. 지나고 보면 다름이 더 많았던 관계였지만, 서로에게 만족을 주는 부분이 있어, 이어져 있던 시간의 합이 10년. 그 10년을 버리는 대화는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후 문득문득 생각나던 시간들은 인연을 끝장내던 5분 보다 몇 배는 더 긴 시간이었다. 다시 떠오른 기억 속에 지난날의 좋은 시간들도 폄하되어 되새김되던 미운 마음과 화가 나를 휘몰아쳐 스치더니, 이젠 ‘그런 시간들도 있었지.’라는 감정 없는 기억도 가끔이다. '나이가 같아 친구라는 호칭을 너무 빨리 말해 버렸고, 마음도 그 말처럼 가졌던 것이 문제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만나는 인연엔 좀 더 많은 살펴봄이 필요한 것 같다. 끝을  향해  나누던 5분의 대화는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리 서운하지도 않았을 말들과 행동이었을까? ‘친구’와 ‘아는 사람’에 대한 단어의 의미와 무게를 알게 된 나의 중년에 아직 곁에 머문 소중한 친구들을 생각해 본다. 올해 겨울엔 친구들과  날이 아주 추운 까만 밤에 뜨끈뜨끈한 어묵탕과 빨간 떡볶이를 함께 먹으며 편안한 수다가 가득한 밤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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