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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준 Jul 25. 2022

우리 모두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개성을 존중하는 유대인

 지문이 어째서 보안시스템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일까? 모두가 고유의 지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문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어느 것도 남과 똑같이 태어나지 않는다. 일란성쌍둥이조차 정반대의 성격과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적용되고 효과적일 수 있는 교육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 교육은 존재할 수 없다. 오스트리아의 유전학자 마르쿠스 헹스트슐레거는 “모든 성공의 비법은 개성에 있으며, 가장 안전해 보이는 평균이 성공을 가로막는 최대 위험 요소”라고 말했다. 유대인들은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일률적인 교육을 시켜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녀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시킨다.


 유대교의 경전 토라에 나오는 십계명은 한 가지의 특징이 있다. 모든 조항이 ‘너는’이라는 2인칭 단수형으로 쓰여 있다는 것이다. 법이란 자고로 한 명의 특정인이 아닌 모두에게 해당되어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십계명이 단수형으로 쓰인 것은 남들이 십계를 어겨도 ‘너’는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대교는 남과 달라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곧 유대 교육의 근간이 되었고, 유대인들은 남과 같아져서는 안 되며 ‘나’ 다운 삶, 차별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은 자녀가 남보다 뛰어나기보단 독창적인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본인만의 개성이 빛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그것의 전문가가 되길 독려한다. 그들에게 ‘억지’라는 단어는 통용되지 않는다. 억지로 하면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즐기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나도 행복할 수 없다. 그래서 자녀가 원하지 않는 이상 명문 학교에 입학하길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녀의 의사를 먼저 물어본다. 자녀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준다. 최선을 다해도 그 길이 아닌 거 같이 느껴지면 단념하고 다른 길을 찾도록 지도한다.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유대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수많은 명작들을 탄생시킨 장본인이지만 학생으로서는 형편없었다. 여차하면 학교 결석에 성적도 부진했다. 더군다나 유대인이라는 꼬리표는 친구들의 놀림거리였다. 그런 그에게도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졌다. 그의 부모님은 그런 아들을 이상한 눈초리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개성을 수용하고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응원했다. 스필버그가 영화에 흥미가 생겼을 때는 그가 찍은 영화에 직접 출현하기도 했다. 스필버그가 모진 환경에서도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이 그를 있는 그대로 포용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히브리인이라고도 불리는데 히브리인의 어원은 ‘강을 건넌 자’다. 한 마디로 남들과 다른 편에 선 자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그들이 남들과 다른 것은 숙명과도 같았다. 그들은 스필버그의 부모님이 그랬듯 자녀가 남들과 다른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과 다른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자녀가 남들과 본인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괜찮은 것임을 알려준다. 아인슈타인은 초등학생 시절 저능아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그에게 “남과 같을 이유는 없다”라며 그를 보듬었다. 만약 어머니가 그를 문제아 취급했다면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은 발휘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의 입시제도가 무조건적으로 틀렸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학습능력이 좋고 남과 경쟁하는 것에 큰 무리가 없는 아이들은 대체로 잘 적응한다. 그러나 그 반대의 아이들은 모두 실패자가 된다는 큰 결점이 존재한다. 한국 교육은 상대평가로 아이들을 판별한다. 상대평가는 아이들의 단점을 부각한다. 단점에 치중하게 되면 장점을 알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유대인들은 자녀의 단점이 아닌 아이에게 내재되어 있는 장점을 본다. 장점을 중점적으로 키워 단점을 보완시킨다. 그래서 그들은 남들과 본인을 비교할 일이 없다. 본인만의 개성과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본인을 남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의 연구진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비교를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집단에겐 고장 난 장난감을, 다른 집단에겐 최신형 장난감을 주었다. 고장 난 장난감을 받은 아이들은 고장 난 것에 개의치 않고 즐겁게 가지고 놀았다. 그러나 유리벽 너머로 최신형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다른 집단의 아이들을 보게 됐다. 이 광경을 목격한 고장 난 장난감을 가진 아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단지 비교 대상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은 본인의 처지에 불만족을 느낀 것이다. 이 실험은 불행이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결점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20세기 미국의 성공한 유대 재정가 버나드 맨스 바루크는 이렇게 말했다. “너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고 누구인지 느껴라. 왜냐하면 네가 누구인지 참견하는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사람들은 그것을 참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그 개성이 빛이 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이유는 7가지의 다른 색깔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도 똑같다. 각자에게 맞는 위치가 있고 그것에는 귀천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귀천을 논하는 사람의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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