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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선호가 Aug 19. 2020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

칼럼카피66 / 동아일보 / 이진구 논설위원/20200815


뉴욕에 살다가 올해 세상을 떠난 고 이춘덕 여사는 생전에 독립운동 유적지와 후손들을 기록하기 위해 찾아온 김동우 사진작가 앞에서 30여 분을 펑펑 울었다. 김 작가가 "독립운동 때문에 왔다."고 하니 나라에서 온 줄 알고 수십 년간 잊현진 채 살았던 설움이 터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여사의 아버지는 북로군정서 분대장으로 청산리 대첩에 참가한 이우석 애국지사다. 이 여사의 딸은 영정 사진으로 김 작가각 찍은 사진을 썼따.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찾아 그 뜻을 기리고 후손들을 돌보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찾거나 돌보기가 쉽지만은 않은데 해외에서 항일운동을 한 경우에는 더 그렇다. 생활고로 유품 등 자료가 남아 있지 않기도 하고, 세대가 지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후손들도 많기 때문이다. 

전남대 김재기 교수팀이 최근 멕시코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25명을 찾아냈다. 1905년 이민 간 후 북미지역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인국민회 멕시코 지방회를 결성해 3.1운동과 광주학생항일운동 후원금 모금, 광복군 지원 등에 나선 분들이라고 한다. 김 교수팀은 코로나19로 현지에 가지 못해 당시 이민자 명단,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기사 등의 사료를 페이스북을 통해 300여 명의 멕시코 한인 후손들과 공유하며 찾았다. 

기막힌 일은 이 중 10명은 이미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는데도 국가보훈처서훈을 전달받지 않아 후손들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독립유공자는 후손들이 직접 신청하거나 보훈처가 각종 사료를 통해 찾아내 추서하는데 후자가 90%에 달한다. 그런데 홈페이지에 명단만 올려놓고 알려주지 않아 추서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 해외에 있는 후손들은 한국말은 물론이고 한국 핏줄이란 걸 모르는 이도 많아 보훈처 홈페이지에 들어갈 일도 거의 없다. 독립유공자 유가족에게는 보상금 등 각종 혜택이 제공되지만 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말 그대로 탁상행정이다. 

김 교수가 해외독립운동가 후손 찾기에 나선 것은 2016년 쿠바에서 겪은 일 때문이라고 한다. 쿠바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 13명의 후손을 만났는데 그중 한 명만 서훈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나라가 안 하면 나라도 하자'는 마음에 이들 13명의 활동을 소개하고 쿠바, 멕시코 지역의 미서훈자 발굴에 나서고 있다. 모두 사비로 하고 있다. 개인도 찾아가서 할 수 있는 일을 왜 나라가 못 하는가. 오늘은 제75주년 광복절이다. 그 빛을 있게 해준 분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하고 부끄럽고 참담하다. 



국가보훈처

https://www.mpva.go.kr/mpva/main.do


공훈 전자사료관

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List.do?goTocode=20001



추서 追敍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귀감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준다.                                                      훈장 추서.


서훈 敍勳

나라를 위하여 세운 공로의 등급에 따라 훈장이나 포장을 줌.




김동우 사진 작가 

출생1978년, 

서울특별시수상2019년 온빛사진상 새로운시선상 (뭉우리돌을 찾아서)

2008년 지식경제부장관 표창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op_hty&fbm=0&ie=utf8&query=%EA%B9%80%EB%8F%99%EC%9A%B0+%EC%82%AC%EC%A7%84%EC%9E%91%EA%B0%80



이우석 애국지사 관련 기사 

https://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229_0013926626&cID=10101&pID=10100


전남대 김재기 교수

http://socsci.jnu.ac.kr/user/indexSub.action?codyMenuSeq=5569&siteId=socsci&dum=dum&command=view&profSeq=689





새로운 일을 결심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실행하기가 3개월을 넘기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 말이 꼭 나를 두고 한 말이지 않나 싶다. 칼럼과 카피를 베껴쓰기 하겠다고 한 것이 엊그제인 것 같은데 지속적으로 꾸준히 하지 못하고 어느 듯 하는 둥 마는 둥이다. 굳이 상황의 탓을 하자면 휴가 준비에 정신이 없었고 휴가를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고 일상에 복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모두다 핑계다. 그저 지속성을 유지하기에 나의 의지가 그만큼 약했던 터일 것이다. 그나마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 습관을 다시 굳혀보고자 함이 다행이구나 싶어 안심이 된다. 

칼럼의 문장 모양새를 보며 다시 한번 내 문구의 초라함에 반성을 하게 된다. 앞으로 더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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