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오 Jan 05. 2023

숨을 참으면 깊은 날숨이 따라온다

어쩌다 어른이 되버린 사람들을 위한 호흡법


#1. 숨을 참는다  


내가 숨을 참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그리 가깝지 않은 때였다. 어릴적에는 가끔 거울을 보고 멍을 때렸고 약 1평 남짓한 화장실 속 주황빛 조명 아래서 그렇게 십여분이 지나면 마치 우주가 다가와 그 장엄한 속에 하얀 먼지가 되곤 했다.

 그러면 난 작디 작은 존재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숨을 참았다. 그건 경이에 대한 나의 두려움 같은 거 였다. 으레 그리해야만 했다. 그렇게 숨을 참다보면 얼마지나지 않아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다. 그대로 나는 죽음에 다다른걸까?


 아니 그건 아니다. 오히려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들이 쉬고 내쉬는 것에 집중하다보면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된것만 같은 나는 내 몸의 전지적 시점의 관찰자가된다. 그때쯤 되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 어떤것의 가치도 도무지 어찌 할 수 없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하얀먼지에서 거인이 되곤 한다. 그때서야 온전히 우주를 느끼게 되어 무력감이 아닌 감사함을 얻곤 한다.

 단순히 숨을 참았을 뿐이지만 그 뒤에는 깊은 날 숨이 따라온다. 모든 잡생각을 날려버린다.

#2. 파고드는 발톱

분명 그때의 나는 진리와 가까움을 깨달았지만 망각하기 까지 오래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시각적인 것들과 현실적인 것들에 정신을 팔리기 일쑤였고, 더군다나 남미에 이민을 가게되면서 이상적인 것 들은 뒤로하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게 된다는 것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한채 그저 정형화 된 삶의 틀이 나에게는 족쇄와 같았고 정해진 대로 흘러가야만 하는게 고통스러웠기에 남미로 이민을 간다는것은 나에게는 탈출을 의미하였고 새로운 세상으로의 확장을 의미했다. 생각이 바뀌는 것은 오래지 않았다.

 나에게 아르헨티나는 첫 외국이였고, 특별했으나 다만 그 당시만 해도 내성적이였던 나를 더욱 더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하였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의 모습은 외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문화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모두 생각할 수 있는 범위내의 것이 었다. 조금의 관용은 이해의 폭을 넓혀 동화 되게 만들어준다.

 사실 가슴으로 이해하는 과정일 뿐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그래도 어쩌나 가면을 쓸 수 밖에.


 그때가 내가 처음 가면을 썼던 적인지 어렴풋이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생존을 위해서 쓴 적은 처음이 아니였을까 싶다. 나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문화보다는 언어였다. 스페인어는 알다시피 한국에서 그리 쉽게 접할 수 있는 언어는 아니다. 나에게는 한달 남짓한 시간동안 중학교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도중 "스페인어 첫걸음의 모든것" 이라는 책을 깔짝되며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는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였다. 내 발음은 그들을 이해시키기에는 역부족했고, 나의 손짓과 발짓은 가락 수가 부족했나보다. 우여곡절 끝에 주문을 마치면 나의 내성적인 성격은 조갑감입(파고드는 발톱)이 된다. 살을 파고 들어 간질간질한 고통속에 나를 우겨넣게 된다.사무치는 고통스러움을 견디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나에게 있어서는 가면을 쓰는 것이였다.


 그렇게 가면을 쓰기를 수백번 이제 가면이 내 일상이 된다. 숨을 참는법을 잊어 버린다.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나에게는 사치고, 호흡을 생각하는 일은 부질 없는 짓으로 치부되게 된다. 나는 그게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통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수백번 가면을 쓰고 그 가면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3. 호흡법  


 매일 보는 것들이 가끔 새로워 보일때가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바뀐것도 아니지만 무엇인가 새롭다. 매일 반복해서 하는 행동들도 가끔 버벅이는 경우가 있다. 몸의 기억은 생각의 하위 분류이기 때문은 아닐까. 매일 똑같은 하루여도 기분은 때로 다른 느낌이다. 감정은 생각보다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똑같은 것 같아도 단조롭지 않은 이유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마취에서 깨어나듯이 계속 집중했던 대상이 지루해지기도 한다.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미워보이기도 하고 잊지 못했던 이별의 대상이 이젠 아무렇지도 않기도 하다. 만약 그 때의 그 감정을 포션으로 저장 할 수 있다면 또 모를까. 똑같은 감정을 어렴풋이 기억은 해도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감정은 고통 스럽지만 망각의 대상이기도 하다. 내가 느꼈던 감정들은 남아 있지 않는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존재할뿐. 복사본 과도 같다. 진짜는 없어지고 가짜만 남는다. 그러니 착각하게 된다. 가면을 쓴 내가 진짜 나인것 처럼. 그게 어른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치만 조용히 숨을 참고 날 숨을 뱉어 보자. 가면을 쓰지 않는 나를 마주해보자. 오롯이 그 순간을 우주라는 광할한 풍경 안에서 느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내가 고집하고 있는 것도 좋아한다고 생각 했던 거도 사라지고 나홀로의 온전한 나를 느껴 보는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비로소 나로 존재하게 된다. 나는 어른이 된 것이 아닌 망각의 가면을 썼을 뿐이다.

숨을 참으면 깊은 날 숨이 따라온다. 모든 잡 생각을 날려버린다. 나는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