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첫 시작은 파리 16구 파씨로 정했다. 에펠탑과 가까우면서 상대적으로 치안이 안정된 곳이라는 여행 후기를 보면서 소매치기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겠지?라는 기대를 했다. 그리고 파씨의 거리를 걸으며 왜 다른 여행자들의 평이 그러하였는지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통행량도 적당하고 동네가 아기자기하면서도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많은 파리지앵의 일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부촌은 분위기가 다르다.
파리에서 첫 목적지는 에펠탑이 잘 보이는 샤요 궁이었다. 가는 길에 건물 사이사이로 웅장한 에펠탑의 모습이 보였는데 볼수록 왜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그 옆 건물을 보면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에펠탑을 정말 지겹도록 볼 수 있겠구나'라는 부러움과 동시에 '월세는 얼마일까?' 하는 현실적인 궁금증이 떠올랐다.(지나가면서 부동산에 적힌 시세를 확인해 보았는데 12평가량되는 방이 원화 환산 월 210만 원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파리와 부촌이라는 조건지만 너무 비싸다..)
그리고 10분 정도 걷자 샤요궁이 나왔고 궁에 있는 광장에 들어서자 우뚝 서있는 온전한 에펠탑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책이나 유튜브에서만 보던 그 에펠탑이 이렇게 크구나' 하는 느낌과 에펠탑을 싫어했던 옛 파리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에도 꿋꿋하게 완공을 마친 귀스타프 에펠에 경외심이 들었다.
그 아래 보이는 트로카광장에서는 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사람들은 저마다 작은 돗자리를 하나씩을 풀밭에 깔고 간식을 먹으면 행복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드디어 파리에 오긴 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은 '학생 때 와서 여유롭게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만큼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나에게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에펠탑에 점점 다가가니 관광객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가족끼리 온 사람들, 커플들, 수학여행으로 온 듯한 무리도 있었다. 저마다 다른 그룹으로 왔지만 그 순간은 모두의 인생에서 특별한 순간일 것이라 감히 짐작해 본다.
이에나 다리를 건너 에펠탑을 지나쳐 쭉 들어가면 마르스 공원이 나온다. 아마도 대부분의 파리 인증샷을 여기에서 찍는 듯싶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파리에서 조깅을 하거나 애완견과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파리지앵들의 모습도 보였다. 얼마나 여유로운 모습인가. 초록초록한 정원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의 모습이 참 멋스러웠다. 파리에서 살고 있는 현지인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집에 에어컨 설치도 힘들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오들오들 떨면서 생활한다고 한다. 심지어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보면 난 분명히 그들의 생활을 부러워하는 듯하다.
길을 걷다가 출출해진 나는 미리 알아봤던 식당으로 향했다.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는 비스트로였다. 내가 고른 것은 송아지 안심 스테이크와 감자 그라탕이었고, 일행이 고른 것은 오리다리 콩피였다. 그리고 양파수프도 추가로 주문했다. 누군가 한국에서는 감기에 걸렸을 때 꿀배를 먹고, 미국인은 닭고기 수프, 그리고 유럽은 양파 수프를 먹는다고 했다. 양파수프는 치즈가 정말 많이 들어가 있어서 고소하면서도 양파가 푹 잘 익었고, 카라멜라이징 된 국물의 달고 깊은 맛이 인상적이었다. 송아지 고기는 처음 먹어보는데 기존에 먹던 고기보다는 확실히 부드러웠지만 육향이 약했다. 그리고 오리 콩피는 많이 짜서 일행은 잘 먹지 못했는데 비싼 값을 내고 먹는 것이었기에 내가 다 마무리했다. 첫 프랑스 음식의 시도는 아리송했지만 나름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다만 구글 리뷰에는 후기가 갈리는 부분도 있기에 참고하길 바란다.
밥을 먹고 나오니 하늘에 점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지금 봐서 너무 낭만적인 하늘이었다. 그리고 점점 어두워지자 에펠탑에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낮보다 더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풀밭에 누워 사색에 잠긴 사람도 있었고, 기타를 치는 무리도 있었다. 역시 파리는 낭만 그 자체였다. 많은 신혼부부들이 파리 앞에서 열심히 포즈를 취하고, 그 앞에는 누구보다 열정 가득한 사진사들이 그들의 행복을 사진기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센강의 유람선은 관광객들을 싣고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었다. 강물에 비친 가로등 불빛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화가인 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도 생각이 났다.(물결에 흔들리는 불빛의 모습을 유화 특유의 두께감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인데 다행히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자 나는 다시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파리의 정취에 취해 발이 힘들어하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다닌 파리의 첫날이었다. 다행스럽게 날씨가 좋아 내가 생각한 파리의 풍경 이상을 보았기에 후회 없는 하루였다. 왜 파리가 예술인들이 모인 성지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명백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단 하루였지만 책에서 본 내용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많은 것을 느낀 하루였다.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가슴은 꽉 찬 하루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정이 더 기대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