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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여행가 Sep 25. 2022

멋과 낭만이 가득한 파리에서의 1주일 (2)

Day 1-1(공항에서 숙소로 향하다.)

 누구에게나 자신도 모르게 생활 속에 배어 있는 사소한 동작이나 습관이 있을 수 있다. 흔히 '루틴'이라고도 하는데, 간혹 야구경기에서 선수가 타석에 들어설 때 긴장감을 해소하거나 징크스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야구 배트로 홈플레이트를 툭툭 친다던지, 헬멧을 다시 고쳐 쓰는 등의 반복된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 역시 해외로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하나의 루틴이 있다. 착륙하기 전 30분 전부터 항공기 밖에 설치된 카메라가 비추는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이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공항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체감할 수 있었고, 그로부터 오는 설렘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밤 시간에 도착하는 비행 편이라면 깜깜한 암흑뿐이겠지만 이번 여행은 도착 시간이 낮이었기에 그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내가 도착하기 직전에 본 풍경은 파리 근교의 아기자기하고 한적한 마을 모습과 넓은 논밭이 펼쳐진 풍경이었다. 유럽의 대표적인 낙농업 국가답게 초록, 노란 들판이 끝없이 펼쳐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고, 마침대 파리 샤를 드골(CDG) 공항이 모니터에 보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나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파리 시내를 구경해보고 싶은 마음에 얼른 짐을 찾기 위해 입국장으로 향했다.

(왼쪽, 착륙하기 직전 바라본 프랑스의 마을 풍경 / 오른쪽, 샤를드골 공항 착륙 직전 모습)

 파리로 찾아오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인파가 몰려 입국장 앞은 마치 유명 놀이공권에서 볼 법한 대기줄이 길에 늘어서 있었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과 달리, 예전에 익히 들었던 유럽의 정부, 공공기관 특유의 느긋함을 느끼기에는 나의 인내심이 충분하지 못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고작 카운터가 3개밖에 없다고?"

"이 속도라면 2시간은 걸리겠는데... 국제공항인데 이렇게 사람이 없는데 말이 돼?"


 긴 줄 옆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패스트 트랙이 있었는데 EU 국가 시민뿐만 아니라 동양인 승객들도 안내하는 모습을 보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한 번 물어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빳빳한 최신(?) 전자여권을 마치 중요한 사람인 마냥 보여주며 여기에 서도 되는지 물어보자 흔쾌히 괜찮다는 답변을 받았다. 대기 시간 1시간 이상 걸릴 것이라 걱정을 했지만 줄을 바꾸니 입국 심사에 걸린 시간은 단 15분. 역시 인생은 줄을 잘 서야 한다는 격언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운 좋게도 수화물을 찾는 곳에 가보니 눈에 익은 캐리어가 지나가고 있어서 쏜살같이 뛰어가 짐을 챙겼다. 파리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이러한 소소한 행운이 따랐기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짐을 찾고 나서 게이트 밖으로 나오자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보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파씨(Passy) 역 근처에 있는 숙소까지 이동하는 것이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방법은 철도, 버스, 택시 등의 옵션이 있었지만 우리는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는 K사가 운영하는 택시 앱이 있듯이 유럽은 우버(Uber), 볼트(Volt)등의 다양한 택시 앱이 있었다. 사전에 알기로는 우버보다는 볼트가 좀 더 요금이 저렴하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볼트 앱으로 택시를 호출했다. 공항이라 택시는 금방 잡혔고, 중동에서 오신 듯한 과묵한 남자 택시기사분이 차를 몰고 오셨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급하게 익혔던 인사말인 봉주르(bonjour)를 수줍게 우물거리며 택시에 탑승했다.

 당시 파리의 날씨는 햇볕은 따가웠지만 가을로 들어서는 문턱이라 후덥지근한 편은 아니어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만으로도 쾌적함이 느껴졌다. 차를 타고 30분 가까이 달리자 파리의 도심 풍경이 조금씩 가까워졌고, 책에서만 봐왔던 클래식한 대리석 건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글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나로서는 해석이 불가능한 다른 나라의 말이 적혀있는 표지판을 보며 '여기가 프랑스구나. 여기가 파리구나.' 감탄하며 창 밖의 풍경을 감상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핸드폰으로 파파고(번역 앱)를 다운로드하였다.


"이야 숙소(정확히는 입구)에서 에펠탑(정확히는 에펠탑 꼭대기부터 1/4 정도)이 보이네!"

"철골 구조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파리의 숙소는 1박에 20만 원 정도였는데 숙소에 들어서자 내부시설은 우리나라의 모텔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 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특히 냉장고가 없다는 사실에 몹시 놀라웠다. 숙소에 과일이나 치즈 같은 식품을 챙겨두고 밤마다 와인 파티를 벌이려고 했는데 이를 즐기지 못한 것이 참 아쉬웠다. 특히 찬 물만을 고집하는 나에게 미지근한 물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은 슬픈 현실이었다. 또 한 가지 충격을 받은 것은 화장실 벽에 비치된 헤어 드라이기였다. 처음에는 외관을 보고 흡입기 같이 생긴 물건에 굵은 호스가 달려있기에 '무슨 청소기가 화장실에 있지?'하고 생각했는데 호기심에 기기를 들어보니 바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머리를 말리는 용도인 줄 뒤늦게야 알았다.(심지어 바람 세기를 조절하는 기능도 없었다.) 혹시 머리를 말리는 데 오래 걸리는 사람이라면 헤어 드라이기를 챙겨 오는 것도 바람직할 것 같다.

 딱 한 가지 마음에 든 것은 유럽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나는 정원 테라스였다. 자연광이 들어와 밝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테라스는 바쁜 오전 일정으로 인해 아쉽게도 이용하지 못했지만 그 풍경은 지금 이 사진으로만 만족스러웠다. 간혹 내가 묵고 있는 숙소에서 창 밑으로 내려다보면 나이가 지긋한 신사 분들이 테라스에서 신문과 함께 커피 한 잔을 즐기며 담배를 태우시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그 특유의 여유로운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호텔 로비에 위치한 테라스)

"파리의 물가가 비싸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하필 환율은 끝없이 오르고..."

"와인이 저렴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와인 빼고 다 비싼 것 같아... 심지어 에비앙까지도!"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파리 시내 탐험을 나서기 전 나는 잠시 근처에 물을 사기 위해 마켓을 찾아보았다. 유럽에서는 특이하게 다른 나라(특히 아시아 국가들)에서 많이 보던 편의점을 볼 수 없었다. 구글 맵을 통해 지도로 마켓을 검색해보니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트가 나와서 그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뒤늦게 알았지만 이 가게가 파리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모노프리(monoprix)라는 이름의 체인점이라고 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라탄 바구니에 전시된 과일에 본래의 목적을 잠시 잃고 구경을 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과일, 야채 등을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상자에 묶음 포장하여 판매하고 있지만 이곳은 줄기 채로 진열해놓고 본인이 원하는 만큼 또는 신선도에 따라 직접 종이봉투에 골라 담을 수 있게 해 놓은 것이 조금 더 합리적으로 보였다. 과일코너에서 더 들어가자 와인과 치즈 코너가 나타났다. 와인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5천 원부터 시작하여 그 폭이 다양했고, 치즈도 종류별로 브랜드가 다양하였고 물가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물은 이왕 프랑스에 왔기에 한국에서는 생수 브랜드 중 명품(?)이라 할 수 있는 에비앙(evian)을 마셔볼까 했지만 자국에서 파는 가격이 한국과 똑같다는 사실에 미련 없이 내려놓고 그 옆에 한 통(500ml)에 0.5유로 정도 하는 저렴한 브랜드로 골랐다. 해외여행을 항상 아시아 국가로 가던 나에게 유럽의 물가는 아직 적응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물을 구입하는 경우 유럽에서 생산되는 식수는 기본적으로 석회질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묵직하고 살짝 염분이 느껴지는 등 우리나라 식수(가볍고 깔끔한 맛)와는 차이가 크다고 하니 잘 고르길 바란다. 나도 3개 정도의 브랜드를 골라 직접 마셔보고 나서 가장 우리나라의 식수와 비슷한 브랜드를 골랐다.(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병이 분홍색 비닐로 감싸져 있었다. 그리고 저렴했다.)

(MONPRIX 가게 내부에 진열된 과일 코너)

물과 간단한 과자를 고르고 계산대에 섰는데 점원이 친절하게 계산해 줬고, 야심 차게 준비해 간 트래블 월렛(해외여행 간다면 꼭 챙길 것! 충전도 편하고 수수료도 거의 없다!) 카드로 문제없이 결제가 잘 되어서 홀가분하게 돌아왔다. 물건을 많이 산 것은 아니지만 양손에 장 본 것을 들고 거리를 걸어가다 보니 잠시 내가 파리지앵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았다. 글을 쓰다 보니 파리 여행에 대한 내용은 미뤄지는데 나는 이런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까지도 여행이라는 범주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대한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자세히 남겨보고자 하니 이해해주시길. 다음 글에서는 파리 골목을 탐방해본 얘기를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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